[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1961년에 개봉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영화가 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 24세의 풋풋한 청년 시몽은 폴라라는 연상의 여인을 음악회로 초대하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 이때 폴라는 시몽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바로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다. 폴라는 시몽이 자기에게 갖는 애정이 순수하게 이성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연상의 여인에게 느끼는 모성애적 관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 영화에는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이 배경으로 깔린다. 브람스 교향곡 중에서도 멜로디가 아름답고 로맨틱하기로 유명한 악장인데, 멜로디가 너무 달콤하고 몽환적이어서 얼핏 들으면 브람스 작품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동안 아카데믹하고 선이 굵고 진지한 음악만 써 왔던 브람스에게 이런 사탕발림 같은 달달한 감성이 있었나 놀라울 정도다. 여하튼 그 덕분에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의 주제 선율은 대중음악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멜로디를 로맨틱 버전, 에로틱 버전 등 다양한 스타일로 편곡해 연주하기도 하는데, 영화에서도 다양한 버전의 3악장이 나온다.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브람스의 멜로디는 로맨틱하지만 현실은 결코 로맨틱하지 않다. 폴라는 시몽의 사랑이 비현실적인 로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의 관심이 싫지는 않지만 그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결국 폴라는 시몽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폴라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고에 상처를 받은 시몽이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그때 폴라가 울면서 이렇게 외친다.
“나는 너무 늙었어. 늙었다고.”
영화에서 시시때때로 울려 퍼지는 브람스의 멜로디는 로맨틱한 환상이다. 그러나 환상은 환상으로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폴라는 그걸 깨달은 것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로켓은커녕 취해서 잔다” 佛회사 뒤집은 한국인 낮술 | 중앙일보
- 박민영, 전 남친 논란에 사과 "내내 후회…정신과 검사도" | 중앙일보
- 막내딸만 남은 날 떠난 노모…임종 보는 자식은 따로 있다 | 중앙일보
- 끼니는 미숫가루·알파미…백두대간 종주, 700km 직접 걷습니다 [호모 트레커스] | 중앙일보
- 한동훈 효과 까먹는 尹정부 vs 정부심판론 까먹는 이재명 | 중앙일보
- 큰병원서도 가래 뽑다 사망사고…그걸 간병인 시킨 요양병원 | 중앙일보
- 김정은 볼에 '대왕 뾰루지'…4년전부터 계속 크는데 왜 그냥 두나 (사진 7장) | 중앙일보
- 하와이서 30대 남성 돌연 사망…해마다 5명 숨지게 한 '이것' | 중앙일보
- 이선균 협박범 알고보니…업소 실장과 틀어지자 마약 제보했다 | 중앙일보
- 호랑이 부부 '육아 은퇴'시켰는데…에버랜드 "금슬 좋아 걱정" 왜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