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길 사양한 아재들의 야구 [김선걸 칼럼]
한동안 관심 끊었던 야구를 요즘 다시 본다.
29년 만에 우승한 LG트윈스의 얘기냐고?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 주인공인 ‘몬스터즈’ 얘기다. 우연히 OTT에서 접했던 최강야구는 충암고 야구팀과의 경기였다. 몬스터즈 멤버들은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이승엽(감독), 이대호, 박용택, 정근우, 유희관, 정성훈…. ‘어 저 선수 은퇴 안 했나’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상대는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조카뻘의 15~18세 고교생들이다.
처음 든 생각은 “쟁쟁한 스타들이 아이들하고 장난하나”였다. 현역 때보다 뱃살이 좀 나왔지만 한 명 한명 명불허전의 스타들 아닌가.
한두 경기 더 찾아보게 됐다. 대학리그, 청소년 국가대표와도 경기를 하고 비록 2군이지만 두산베어스, KT위즈 등 프로팀과도 붙었다.
시청할수록 처음 생각은 달라졌다. ‘나이 먹고 정말 애쓴다’는 동병상련의 생각이 많아진 거다. 이 팀의 얇은 선수층도 안쓰럽다. 나이 먹고 운동하니 부상자가 속출하는데 예비 선수는 없다 보니 이승엽 감독이 대타는 물론 대주자로 나가서 뛰다가 삐끗하기도 한다. 내야수인 정성훈이 투수로, 프로에선 야수만 했던 이택근이 포수를 맡기도 했다. 방송 해설을 하며 나이 든 동료들을 잘근잘근 씹던 46세의 김선우가 투수로 나서서 3이닝을 던지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휘문고 시절 청룡기 우승을 이끌고 고려대 2학년 때 미국 메이저리그로 스카우트돼 쿠어스 필드에서 완봉승을 거두던 전성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헛웃음 나오는 수준이다. 그러나 투구한 지 3076일 만이라는 중년 아재가 끙끙거리며 몸을 만들어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선 모습만으로 뭉클했다.
생각해보면 이들은 이미 꿈을 이룬 사람들이다. 야구 선수 평생의 꿈인 메이저리그, 혹은 프로야구 엔트리, 올림픽 금메달을 딴 국가대표 등의 화려한 꿈을 이미 달성한 이들이 뭐가 부족해 망가진 모습으로 나올까. 아니 그보다 ‘야신’ ‘국민 타자’ ‘조선의 4번’ 같은 전설을 그냥 첫사랑의 추억처럼 젊고 멋진 모습 그대로 남기고 싶지 않았을까. 야구 선수가 보통 30대에 은퇴하는 걸 감안하면 이들은 일반인으로는 60대 이상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이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스타일을 구기고, 심지어 굴욕과 창피를 당한다. 100승 스타 투수가 난타당하고, 고교팀에 콜드게임 패까지 당한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들의 야구가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됐다. “다시 야구장에 설 수 있어 행복하다” “현역 때보다 더 이기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예능이지만 휴먼 드라마 같기도 한 건 이들이 이 악물고 경기하기 때문이다. 승률을 지키지 못하면 팀을 해산하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유희관이 실투한 후 “팀에 미안해요”라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시대를 풍미한 슈퍼스타들이 조카뻘 되는 꼬맹이들과 겨루는 건 노욕이거나 유치한 걸까.
아니라고 본다. 이들은 필자처럼 야구에 관심 끊었던 팬들을 불러들이고,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노년까지 팬들의 지평을 넓혀 젊은 선수들의 경기까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스타들이 ‘전설로 남기를 포기하고 다시 링 위로 오를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도전에 찬사를 보내게 됐다.
끝난 줄 알았던,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의 재기에는 초월적인 감동이 있다. 예수의 부활부터 오디세우스의 귀환까지 인류 수천 년간 감동 모티브였다.
중년 아재들의 땀과 눈물이 나비의 날갯짓 같은 파동을 일으키는 이유다. 그들의 메시지는 우리가 바쁜 일상에 쫓기지만 가끔씩 꺼내봐야 하는 얘기다.
“나이는 상관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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