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직장 옛말, 원하는 만큼 일한다”… 뜨는 ‘긱워커’
<2회> 급변하는 ‘일’의 의미
노동시장이 급변하면서 노동시간의 변화도 뚜렷해지고 있다. 초단기 일자리로 생계를 꾸리는 ‘긱워커(gig worker)’가 국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산업 성장에 힘입어 기존 비정규직보다 더 유연한 노동계약으로 맺어지는 초단기 일자리가 ‘뉴노멀’로 부상한 모습이다. 하지만 현재 노동 관련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긱워커를 보호할 제도적 기반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불안한 노동환경은 더 악화할 전망이다.
긱워커는 정해진 시간에 일해야 하는 아르바이트보다 자율성이 더 강화된 노동 형태다. 근로자가 스스로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택해 일한다. 실제 노동시간이 하루 1시간 정도로 짧은 경우도 많다. 국내에서는 배달플랫폼 종사자나 차량공유 서비스 운전자가 대표적인 긱워커다. 코로나19 확산기를 거치면서 긱워커는 급증했다. 최근에는 개인의 전문성을 살린 웹그래픽 디자이너, IT 개발자 등으로 긱워커 분야가 확장되는 추세다.
긱워커 맞춤형 일자리 플랫폼도 등장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은 프리랜서 일자리를 연결하는 ‘사람인 긱’을 운영 중이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도 긱워커를 위한 재능거래 앱 ‘긱몬’을 도입했다. 긱워커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이미 하나의 노동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긱워커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하는 추세다. 긱워커 플랫폼 ‘뉴워커’가 인크루트 회원 815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긱워커 증가에 대한 인식은 ‘매우 긍정’(11.9%) ‘대체로 긍정’(47.2%) 등으로 긍정 답변이 절반을 넘었다. 긱워커 증가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로는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46.1%)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평생직장에 얽매이지 않는 MZ세대 직업관이 긱워커 확산이라는 노동 형태 변화에 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노동시간은 청년층 직무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학술지 ‘노동정책연구’에 따르면 34세 이하 대졸 청년 임금 노동자들은 주당 노동시간이 길수록 직무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당 노동시간 15시간 미만과 15~40시간인 경우 직무만족도에 대해 ‘매우 불만족’ 또는 ‘불만족’이라고 응답한 청년 비율은 각각 7.4%로 나타났다. 반면 주당 41~52시간과 52시간 초과에 대해선 각각 13.9%, 17.0%로 조사됐다.
문제는 긱워커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도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플랫폼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인정하고, 고용노동부에서 특수형태 근로종사자를 위한 표준계약서를 제정하는 등 ‘긱워커 제도화’ 움직임이 나타났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긱워커의 모호한 지위를 둘러싼 사회적 혼란도 불거졌다.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를 운행한 드라이버 A씨는 자신이 쏘카 측의 노동자라는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수년간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A씨는 2019년 5월 쏘카의 100% 자회사인 타다 운영사 VCNC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고, 이후 두 달 뒤 인원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VCNC로부터 해고됐다. 이 과정에서 쏘카 측은 중개플랫폼을 제공했을 뿐 A씨의 실질적인 고용주는 용역업체라며 A씨를 자사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1심 법원도 쏘카 측의 주장대로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1일 2심 재판부는 “쏘카가 A씨의 실질적 사용자로 봐야 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쏘카 측은 상고장을 제출해 대법원 판단까지 받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수년간 법정 다툼을 겪으면서도 긱워커 지위는 명확하게 판가름나지 않을 만큼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본은 일찌감치 긱워커에 대한 법률 제정에 들어갔다. 2021년 3월 일본 정부는 ‘프리랜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긱워커의 노동자 지위를 강화했다. 프리랜서의 근로자성을 사업조직 편입 여부, 보수의 노무 대가성 여부, 노무제공 시간 및 장소의 구속 여부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긱워커 수를 우선 파악하는 등 실태 파악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긱워커를 어떤 성격의 노동자로 볼지, 현행 임금 체계의 적합성 등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한 뒤 이들에게 적용할 노동법규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1일 “긱워커는 노동법, 노동관계법 등 사회안전망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긱워커가 얼마나 있는지, 어떻게 근무하는지에 대한 실태 파악조차 되지 않은 터라 노동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성필 조민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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