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0억명이 투표소로 향한다…한국 경제 흔들 ‘폴리코노미'
선거는 경제 행위다. 누가 나를 더 잘 살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뽑는 일이라서다. 2024년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경제 행위가 벌어지는 ‘선거의 해’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입장에선 4월 국회의원 선거뿐 아니라 글로벌 각국의 선거까지 경제 변수로 떠올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1월 “2024년에 사상 최초로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40억명 이상이 투표소로 향한다”며 신년 세계 경제 전망의 핵심 변수로 선거를 꼽았다. 실제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3월 러시아·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4월 한국 총선, 6월 유럽연합(EU) 의회 선거, 9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등 일정이 이어진다.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무역을 휩쓰는 상황에서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이 극심하다”며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폴리코노미(Policonomyㆍpolitics+economy)’ 현상이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폴리코노미는 정치의 영향이 커져 경제를 휘두르는 현상을 뜻한다. 선거 승리에만 초점을 맞춘 정당이 선심성 공약을 내걸어 재정을 지출하면서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고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등 문제가 발생하는 점을 지적하는 용어다. 표심을 겨냥한 보호무역주의도 폴리코노미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UN무역개발회의에 따르면 보호무역주의 여파로 지난해 세계 무역 규모가 1년 전보다 4.65% 뒷걸음쳤다.
4월 총선을 앞둔 한국도 극심한 폴리코노미 현상을 겪고 있다. 국회가 올해 656조9000억원 규모 예산을 지각 처리하는 과정에서 삭감한 새만금 예산을 복원하고, 지역구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증액하고, ‘이재명표’ 지역화폐 발행 예산을 신설한 게 대표적이다. 정부·여당은 지난해 공매도 전면 금지, 대주주 양도소득세 완화를 추진하는 등 ‘개미’ 투자자 표심을 노린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다. 김형준 배재대 정치학과 석좌교수는 “총선이 다가올수록 여야 정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건전 재정’을 위협하는 정치권의 돈 풀기 압박이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로 눈을 돌려도 폴리코노미 위협이 첩첩산중이다. 당장 1월에 치르는 대만 총통 선거부터 그렇다. 대만 선거는 ‘미·중 패권경쟁’의 대리전 성격을 띤다. 대만은 TSMC가 상징하는 반도체 강국이다. 반중(反中) 성향 민진당이 집권할 경우 중국-대만 간 양안(兩岸) 갈등이 고조할 수 있다. 3월 치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대선은 전쟁 장기화와 맞물려 식료품·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핵심 변수다. 6월 유럽의회 의원 선거도 폴리코노미의 발화점이 될 수 있다. 27개 EU 회원국을 대표하는 의원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할 경우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강화할 수 있어서다.
하이라이트는 11월 미국 대선이다. 반도체법(칩스법)·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상징하는 미국판 보호무역주의의 향배를 가를 분수령이라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바이든 표 IRA를 폐기할 가능성이 있다. 청정에너지 투자가 줄면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생산 시설에 투자한 한국 기업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트럼프는 “모든 외국산 제품에 대한 기본 관세를 10%포인트 추가로 부과하겠다”고도 언급했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경제논설위원은 지난해 11월 중앙포럼에서 “트럼프가 재선할 경우 모든 전망이 불투명해질 것(everything would be up in the air)”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1%다(2022년 기준). 대외 의존도가 높은 만큼 각국의 선거 전쟁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클 수 밖에 없다. 올해는 반도체·조선 정도를 제외한 수출 전망이 '흐림'이다. 아시아·북미·유럽 수출 비중이 90%에 육박할 정도로 편중한 만큼 수출국 다변화가 폴리코노미에 맞설 1순위 과제로 꼽는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국내에선 규제부터 풀어 기업의 뒷다리를 놓아주고,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을 표로 견제해야 한다”며 “해외에선 경제와 외교가 뭉친 경제안보 ‘원팀’으로 가야 폴리코노미 파고를 헤쳐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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