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發 리스크’ 커진다…정부, 채안펀드 20→30조원 증액 만지작

김남준 2024. 1. 1. 17: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태영건설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신청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금융사들이 부동산 PF 관련 자금조달을 꺼리면서, 자본력이 약한 건설사의 추가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채권단 400개, 보증 포함 채무 10조원 달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지난달 28일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했다. 뉴스1

1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태영건설 금융채권단에 보낸 ‘제1차 금융채권자협의회 소집 통보 문건’에 따르면 태영건설이 직접 차입한 돈은 금융사 80곳, 1조3007억2000만원이다. 여기에는 회사채·담보대출·기업어음·PF 대출 등이 포함돼 있다. 태영건설이 직접 빌린 돈이 아니라 PF 사업장 등을 보증한 대출 규모는 9조1816억원에 달했다. 산업은행이 태영건설 직접 대출과 PF 보증채무를 합해 소집 통보를 보낸 채권단 규모는 400곳이 넘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절차가 본격화됐지만, 채권단 구성부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태영건설이 부동산 PF 관련 채무보증이 많다 보니, 채권단 수가 다른 기업보다 많고 권리관계가 복잡해서다


자금줄 마르는 PF, PF-ABCP 거래 급감


금융당국이 아직 착공하지 않거나, 분양 전인 사업장을 적극적으로 정리하는 이른바 ‘옥석 가리기’를 예고한 만큼 태영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부동산 PF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수 있다.

실제 시장은 ‘태영건설 리스크’가 부동산 PF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며 벌써 돈줄 죄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1일 신한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넷째 주 PF-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거래량은 최고 신용등급인 A1은 2조1600억원, 그다음 신용등급인 A2는 34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11월 넷째 주 A1(6조1600억원)·A2(6500억원)의 거래량과 비교하면 각각 65%·47% 급감한 수치다. 태영발(發) 리스크가 시장에 본격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다.

박경민 기자


PF-ABCP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설이 나온 지난해 12월 둘째 주부터 거래량이 줄기 시작했다. 통상 만기가 3개월로 짧은 PF-ABCP의 거래량이 줄면 그만큼 차환 가능성이 떨어진다. 이럴 경우 자금력이 약한 건설사를 중심으로 위기가 또 올 수 있다. 실제 올해 갚아야 하는 PF-ABCP는 20조3000억원인데 이 중 16조7000억원이 1분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미래 부동산 개발 수익을 근거로 사업을 시작하는 부동산 PF는 대출채권 등을 담보로 한 기업어음인 PF-ABCP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이 과정에서 증권사 등 금융사들이 PF-ABCP 발행을 위해 신용보강을 해준다. 하지만 금융사들이 PF 사업 부진을 우려해 신용보강을 꺼리면 PF-ABCP 발행량이 줄면서 자금조달도 곤란을 겪게 된다. 레고랜드 사태 때는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PF-ABCP의 미상환 가능성이 커지면서 채권시장에 위기가 왔었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신용 경계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정부의 PF 사업장에 대한 기조가 ‘재구조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면서 “건설 부문에서 전방위적으로 투자 자금이 유출되고, 신규 자금조달에 차질이 생기는 악순환 구조를 형성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했다.


채안펀드 20→30조 증액 검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금융 수장들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 금융현안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간담회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은 금융사가 부동산 PF 시장에서의 과도한 자금 회수가 나타나는지 상시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권이 ‘비 올 때 우산 뺏기’ 식으로 대응할 경우 상황을 더 악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1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F(Finance)4’로 불리는 금융 관계기관 수장들은 비공식 회의를 가지고, PF 부동산 시장 불안을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특히 레고랜드 때 채권시장 불안의 소방수 역할을 했던 채권안정펀드의 운용 규모를 20→30조원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관련 시장 동향을 점검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건설사 발행 회사채·CP 매입과 PF-ABCP 차환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PF-ABCP를 장기 대출로 전환하는 보증 프로그램도 증액하기로 했는데, 이에 더해 추가 대책까지 살펴본 것이다.

지난달 28일에도 회의를 주재한 최 부총리는 “시장안정 조치는 레고랜드 사태에 따라 순차적으로 추가돼 현재 85조원 수준”이라며 “필요하면 추가 확대해 시장 변동성의 확대 가능성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겠다”고 했다.

이 총재도 별도로 발표한 신년사에서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일부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며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정리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에도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증권·캐피탈 약한 고리…“위기 전이 안될 것”


금융권으로의 위기 전이 가능성은 일단 작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다만 제2금융권은 등 일부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충당금이 증가하는 등 부담은 늘어날 예정이다.
박경민 기자

1일 한국신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증권사 경우 태영건설 익스포져(고위험 상태에 있는 투자 자산)가 1조1422억원 수준으로 다른 제2금융권과 비교해 가장 규모가 컸다. 하지만 한신평은 “익스포져 보유 증권사는 대형 증권사로 자기자본 대비 부담은 2~5% 내외로 미미한 편”이라고 했다. 증권사 다음으로 태영건설 익스포져가 높은 업권은 캐피탈사(7292억원)였는데, 한신평 집계에 따르면 이마저도 자기자본 대비 평균 3.1% 수준으로 높지 않은 편이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