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때 시작한 연말정산을 아직도 하는 이유[송승섭의 금융라이트]

세종=송승섭 2024. 1. 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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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 계기는 1974년 12월 제도개편
조세저항 최소화와 효율적인 징수가 목적
회사가 공제했던 세금이 실제보다 많다면?
한번에 계산해 돌려주는 작업이 연말정산
13월의 보너스는 착각…무리한 소비가 독

연말정산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전국의 직장인들이 절세를 위해 본인의 소비를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죠. 쉬운 일은 아니다 보니 가끔은 귀찮기도 합니다. 불필요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돈을 토해내야 하면 억울하기도 하죠. 하지만 연말정산은 한국의 세무행정이 가진 강점 중 하나입니다. 꼭 필요한 제도이기도 하고요. 연말정산은 언제부터 왜 하기 시작한 걸까요?

1974년 12월 17일 진행된 국무회의 자료. 회의록 수신인이 대통령(박정희)으로 돼 있다. 당시 회의는 11대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소득세법 개정법률 공포안 등이 통과됐다. 다음해인 1975년부터 한국에서는 연말정산이 시작됐다. 자료=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1974년 12월 17일 진행된 국무회의 자료. 회의록 수신인이 대통령(박정희)으로 돼 있다. 당시 회의는 11대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소득세법 개정법률 공포안 등이 통과됐다. 다음해인 1975년부터 한국에서는 연말정산이 시작됐다. 자료=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연말정산의 역사는 약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하고 있던 때죠. 1974년 12월 소득세제 개편으로 연말정산 제도가 처음 법적으로 도입됐고, 바로 다음 해인 1975년부터 연말정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물론 연말정산과 같은 선진적인 제도의 시행은 선제적인 세무개혁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1970년에는 국세청이 전산실을 신설하는 등 조세행정 전산화 작업이 추진됐습니다. 1974년과 1976년에는 신뢰를 높이기 위해 국세청이 비리 세무공무원 373명을 대대적으로 자체 면직해버렸고요. 1974년 제정된 국세기본법도 세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납세자의 권익을 증진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만 현재의 연말정산과 비교하면 내용과 방식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항목이 훨씬 적었고 방식도 간소했습니다. 특별소득공제나 세액공제도 없었죠. 현재 국세청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미리보기나 간소화 서비스는 꿈도 꿀 수 없었고요. 만약 연말정산에서 헷갈리거나 모르는 게 생기면 국세청장 앞으로 직접 질의서를 써 제출한 뒤 서면으로 답변을 받아야 했죠,

1975년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에 관한 민원인의 질의서와 국세청이 보낸 답변서. 자료=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1975년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에 관한 민원인의 질의서와 국세청이 보낸 답변서. 자료=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그런데 연말정산은 대체 왜 하기 시작한 걸까요? 사정을 이해하려면 세법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세법은 아주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전문가도 쩔쩔맬 정도지요. 부양가족, 소득, 직장 규모, 부동산 등 갖가지 요인에 따라 받는 세제 혜택과 세율이 달라집니다. 그러니 국가가 매달 모든 국민들의 세금을 계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행정력을 낭비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은 원천징수라는 제도를 이용합니다. 여러분의 월급 명세서를 한번 보세요. 이미 여러분이 내야 할 세금이 징수된 게 보입니다. 즉 원천징수란 근로자가 세금을 뺀 돈을 월급으로 받는 제도입니다. 원칙적으로 세금은 스스로 내는 게 맞습니다만, 회사가 근로자 대신에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거죠.

이 방식은 국가와 납세자 모두에게 편리합니다. 국가는 조세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회사가 세금을 내니 근로자들은 세금 내는 느낌을 받지 못하거든요. 근로자들도 제삼자가 알아서 세금을 납부해주니 편하고요. 만약 원천징수가 없었다면 세금을 내는 날 각 세무서에는 엄청난 민원인들이 몰렸을 겁니다. 세무 공무원들은 1년 내내 야근에 시달리고, 여러분들은 매달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세금을 내야 했겠죠.

그런데 원천징수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회사는 여러분의 경제적 상황을 모릅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맞벌이로 얼마나 버는지, 자녀가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비싼 집에 사는지 모릅니다. 단지 소속 근로자의 소득을 추정해서 일괄적으로 세금을 대납할 뿐이죠. 그러다 보니 내가 최종적으로 내야 하는 세금과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걸 ‘결정세액’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11월 2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대전, 소프트웨이브 2023'에서 참관객이 HR기능 및 연말정산이 가능한 애플리케이션 설명을 듣고 있다.
달라진 연말정산. 간소화자료 일괄제공과 미리보기 등을 이용해 연말정산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사진=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 캡처.

그래서 연말정산이 필요합니다. 연말정산은 회사가 원천징수로 대신 냈던 세금과 실제 내야 하는 결정세액의 차이를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원천징수로 1000만원의 세금을 냈는데, 원래 내야 하는 결정세액이 900만원이었다면? 국가가 세금을 100만원이나 더 거둬간 거죠. 따라서 연말정산을 통해 100만원을 돌려받습니다. 반면 원천징수로 900만원의 세금을 냈는데 결정세액이 1000만원이라면, 연말정산에서 100만원을 추가로 납부해야 합니다.

그러니 연말정산에서 돈을 더 받았다고 기뻐하거나, 더 냈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편의상 ‘13월의 보너스’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연초에 많게는 수백만원을 환급받으면 공짜로 돈이 생긴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가 더 냈던 세금을 돌려받은 것뿐입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돈을 토해냈다’고 불평하지만, 실제로는 월급을 받을 때 내지 않았던 세금을 몰아서 낸 것이고요.

또 하나. 연말정산은 원천징수 된 세금에서 결정세액을 뺀 값입니다. 아무리 많이 돌려받아도 원천징수된 세금보다 많을 수 없죠. 어느 정도 돈을 번다면 결정세액을 0원으로 만들 수도 없고요. 그러니 연말정산 환급을 많이 받으려고 소비나 저축을 무리하게 늘릴 필요는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연말정산은 보너스가 아니라, 내야 할 세금과 냈던 세금을 정리하는 과정일 뿐이니까요. 다양한 세제 혜택을 꼼꼼히 확인해 본인에게 해당하는 혜택을 100% 받으려는 태도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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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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