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지은 구례 한옥스테이, 아들은 또 꿈을 꿉니다
[정동묵 기자]
▲ 심한 갱년기 우울증을 앓았던 아버지에게 아들은 더 없는 친구가 돼 주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제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의 벗이 되어주려 한다. |
ⓒ 하지권 |
"갱년기인가 본데...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어요. 남들은 쉽게 지나가기도 한다던데."
식구들의 걱정스러운 눈길, 그것조차 성에 차지 않았다. 사다주는 약을 먹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온몸에 한가득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다. 가족들을 생각해서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가도 금세 원위치.
꿈을 꾼다. 혼자만 있는 꿈. 깊은 산속에 오두막을 짓고 고요히 혼자 사는 꿈. 아궁이에 불 지피고 볕 좋은 툇마루에 나와 앉아 앞산의 나무와 새들을 바라본다면. 혹은 좌고우면 않고 전국을 무념무상으로 캠핑카를 타고 다녀보는 꿈. 가다가 배고프면 밥 지어 먹고 졸리면 차 세우고 그 자리에서 자보는 일. 강이나 바닷가에 낚시 드리우고 코발트 빛 수면을 한없이 바라보는 상상.
"혼자 있는 걸 좋아했어요. 성격인가 봐. 술자리가 있어도 조용히 밥만 먹고 빠져나와서 집에 들어오는 게 좋지, 사람들하고 어울려 떠드는 게 나는 별로더라고. 안 맞아. 지금 생각하면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았어야 스트레스도 덜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긴 들지만서도."
큰 수술을 세 번이나 한 것도 이 탓이 컸지 싶다. 대신 집에서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무엇을 이리저리 가꾸는 일이 좋았다. 나무를 옮겨서 마당 바깥으로 심어보기도 하고 돌담을 가지런하게 다시 쌓아보기도 하고. 다행히 손재주가 있어 그가 만드는 것은 대부분 '작품'이 됐다.
▲ '친구 같은 아버지'. 말이 쉽지 아들로부터 이런 별칭을 얻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크게 아프고 나서야 '가장 최인복'이 아니라 '인간 최인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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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일궈가는 삶
그 길로 부자는 '기와' 살리기에 나섰다. 아들은 인테리어, 아버지는 익스테리어. 아들은 빠르게 국내외의 사이트를 뒤지고 뒤져 한옥에 어울릴 만한 그러나 글로벌 아이템에 뒤처지지 않는 소품들을 하나하나 들여왔고, 아버지는 비파며 모과나무들을 마당에 심고, 뒤꼍의 대나무들을 보기 좋게 다듬었다. 그리고는 집을 빙 둘러 현무암 돌담을 아리땁게 쌓았다.
"아버지 실력은 알아줘야 해요. 포클레인 다루는 솜씨가 정말 남다르시거든요."
"허허. 내가 뭘 그렇게나... 아, 그럼 평생 이 일만 했는데 그 정도도 못 하능가?"
그랬다. 포클레인은 아버지와 평생 같이 살아온 동무였다. 용방초, 구례북중학교를 나온 뒤 그는 곧장 광주로 나갔다. 남들은 공부하러 나갈 때 그는 돈 벌기 위해 나갔다. 갚아야 할 산더미 같은 집안 빚.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그 때 돈으로 딱 2억 원이었다.
▲ 아버지 최인복 님과 그의 가족을 지금까지 먹여살린 건 포클레인이었다. 친구들 고등학교 어엿하게 다닐 때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포클레인 기사의 보조를 맡으며 어렵사리 기술을 익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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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최인복님의 사형제는 딱 4등분해 5천만 원씩 걸머지고 아버지가 남기고 간 빚을 갚기로 했다. "그 어린놈이 그때 배울 게 뭐가 있겄어요? 그래도 기계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4년여 기사 따라다니면서 고생 고생했지."
그렇다고 누구 하나 포클레인을 정식으로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동을 걸어놓을 때나 혹은 저녁 일 마치고 뒷정리할 때, 그 자투리 시간을 집중해 그는 조금씩 기술을 배웠다.
"결국 그 빚을 다 갚았어요. 빚 갚다 청춘이 간 셈이지만, 그래도 지금 사형제가 모여서는 아주 잘한 일이라고 그래. 그 빚 안 갚았으면 지금 손가락질 받을 거 아니냐고, 그래서 지금 맘 편히 살고 있는 갑다고 위안 삼죠."
▲ 아들이 근무하는 구례 문척초등학교 운동장을 아버지와 아들이 걷고 있다. 옛 추억을 소화하며 이야기 나누는 부자지간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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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서 배운 따사로움
문척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최석우님의 요즘 나날은 몸이 세 개라도 힘들어 보인다.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그는 그 일들을 아주 또 즐겁게 치른다. 요즘 집중하는 일은 광의면 연파리에 마련하고 있는 청년 공유 공간 '연우의 집'. 오래된 옛집을 청년 세 명이 대출을 받아 사들여 구례 청년들의 새로운 취향 공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중이다.
"제가 서른인데, 제 또래의 청년들은 이제 어디에서 평생을 살지 정해야 하는 시기예요. 고향에 마음을 두고 있는 토박이 청년들이 속속 지금 구례로 들어오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누구의 힘을 빌지 않고 저희 스스로 해보자는 겁니다."
▲ 단 두 명뿐인 구례 문척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교실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추억을 소환하며 즐거운 포즈를 잡아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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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아들의 근무지인 문척초등학교에 처음 와본다고 했다. 아버지의 학창시절과 확 바뀐 교실 모습을 구례 청년 아들인 최석우님이 즐겁게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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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척초교 학부모들과 같이 일궈가는 '문척성시마을학교', 자신의 학교 아이들과 씨 뿌리기부터 밀가루 제품 판매까지 6차 산업의 전 과정을 함께 하는 '구례 우리밀 수업',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구례에서 펼치자는 '심다 프로젝트'. 이 세 가지의 공통 키워드는, 바로 '구례'와 '함께'다.
"부모님한테서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강요는 절대들 안 하셨어요. 항상 제 의견부터 물어보셨죠." 친구 같은 아버지. 말은 쉬운데 행동은 쉽지 않은, 자식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그렇게 자라면서 아들은 아버지 따라 주체의식을 갖게 됐고, 어머니에게서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을 배울 수 있었다.
▲ 아버지 최인복님과 아들 최석우 샘이 광의면 방광마을 '노고마주 기와'의 툇마루에 나와 한가로이 겨울햇살을 즐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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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남도 구례군청에서 발행하는 문화잡지 계간 <구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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