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軍에 "무력충돌 기정사실화하라" 더 거칠어졌다

정영교 2024. 1. 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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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마지막 날 북한군 주요 지휘관들을 만나 격려했다고 노동신문이 1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군 지휘관들에게 '막중한 책임과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마지막 날인 지난해 12월31일 북한군 주요 지휘관을 소집해 "무력충돌을 기정사실화하라"며 완벽한 군사 대비태세를 주문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노동당 주요 간부들을 초청해 만찬을 갖고 신년 경축 공연을 관람하면서 노고를 치하했다.

지난해 연말 전원회의에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영토를 평정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직후 군에 사실상 후속 조치를 지시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면서 한 해를 마무리한 것이다. 이로 인해 2022년 초 북한의 모라토리엄(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유예) 파기로 본격화한 남북 간 강대강 대결은 올해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노동신문은 1일 김정은이 전날 북한군 대연합부대장들을 비롯한 주요 지휘관들을 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만나 "(현)정세는 우리 국가의 안전과 평화수호를 위한 보검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고 군대의 경상적인 군사적 대비태세를 완벽하게 갖추어나가야 할 절박성을 시사해주고 있다"며 군을 격려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2월 31일 노동당 총비서 명의로 마련한 만찬 이후에 당 주요 간부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은 또 "적들의 무모한 도발 책동으로 언제든지 무력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당 전원회의가 우리 혁명무력 앞에 제시한 전투적 과업들을 철저히 집행ㆍ관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에 맞선 한·미의 확장억제 강화 조치를 '무모한 도발 책동'으로 규정하고, 물리적 대응도 피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강대강', '정면승부'라는 대미·대적(대남) 투쟁 원칙도 재차 강조했다. 김정은은 "우리 혁명이 줄기차게 전진할수록 이를 막아보려는 미제와 대한민국 족속들의 단말마적인 책동은 더욱더 가증될 것"이라면서 "우리 군대는 견결한 대적의식과 투철한 주적관을 지니고 적들의 그 어떤 형태의 도발도 가차 없이 짓부숴버려야 하며, 만약 놈들이 반공화국(반북)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고 불집을 일으킨다면 순간의 주저도 없이 초강력적인 모든 수단과 잠재력을 총동원하여 섬멸적 타격을 가하고 철저히 괴멸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1일 노동당 주요 간부들을 초청해 개최한 만찬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이 군 주요 지휘관들에게 군사 대비태세 강화를 강조한 것은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교전국가 관계"로 재규정한 것에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김정은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부문에 투쟁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시도 내렸다. 여기엔 대남·해외 공작 업무를 총괄하는 인민무력부 소속 정찰총국을 비롯한 군 조직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별개로 최선희 외무상은 1일 이선권 통전부장 등 '대남관계 부문 일군'들이 참가한 가운데 협의회를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정은의 지시가 나오기 무섭게 군과 외교 라인에서 이를 뒷받침할 '대남 도발 과업'을 논의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은 군 수뇌부와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유사시 핵사용을 포함하는 구체적인 영토완정(한반도 적화통일) 방안을 논의했을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조성해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기조이기 때문에 한·미를 압도할 수 있는 군사행동까지 논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앞서 국정원도 김정은이 지난달 18일 고체연료 방식의 신형 ICBM '화성-18형' 발사에 성공한 뒤 측근에게 올 초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첩보를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 주애, 아내 이설주와 '2024년 신년경축대공연'이 열린 평양 5월1일 경기장 주석단에 올라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은 이날 당 주요 간부들을 초청해 격려 만찬을 열었다. 그는 축하연설에서 "우리는 2023년을 혁명의 전진 도상에서 새로운 변환적 국면을 여는 의의 깊은 사변들로 가득 채워놓았다"고 자평했다. 또 "인민의 기대에 늘 보답 못 하는 우리들의 불민함을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며 항상 자각하고 명심하며 계속 고심하고 노력하여 2024년을 위대한 우리 국가와 인민을 위하여 더 분발하는 해로 되게 하자"고 독려했다.

만찬 이후에는 딸 주애, 아내 이설주와 함께 평양 '5월 1일 경기장'에서 열린 신년 경축 대공연을 관람하며 2023년 마지막 날의 숨 가쁜 행보를 마쳤다.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사진에는 딸 주애가 김정은의 바로 오른편에 자리했고, 이설주는 약간 떨어져 선 모습이 담겼다. 사진 상으로는 주애가 더 높은 서열인 듯 연출한 셈이다.

북한군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2월 8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행사장에 딸 김주애와 함께 들어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인 이설주가 이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와 비슷한 장면은 북한군 창건 75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2월 열린 열병식에서도 포착됐다. 당시 김정은은 열병식이 진행된 김일성 광장에 들어설 때부터 주애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걸었고 이설주는 오른쪽 뒤편에서 거리를 두고 걸었다. 어머니보다 딸을 앞세워 김씨 일가를 지칭하는 '백두혈통'의 위상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한편 김정은은 이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올해 북·중 수교 75주년을 기념하는 축전을 교환하며 양국 간 친선과 밀착을 과시했다. 김정은과 시 주석은 양국 간 정치기념일과 같은 주요 계기마다 축전을 차례로 주고받았지만, 신년을 기해 동시에 교환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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