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가는 곳 아닌, 제가 선택한 해맞이 장소는 여기입니다

박향숙 2024. 1. 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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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군산 새해 첫날 풍경스케치... 새해 첫 새벽에 떠오르는 새 마음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향숙 기자]

▲ 2024 일출 광경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근처 바닷가에서 오전 7시 55분에 찍은 사진.
ⓒ 박향숙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순간에 새해라고 말하려니 여간 쑥스럽지 않더군요. 지인들의 새해 안부인사에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람 역시 정신없이 울리고요. 잠시 눈을 붙였는데 저절로 새해 꼭두새벽을 맞이했습니다.

전북 군산에서도 탁류길·선유도 등에서 해맞이 행사를 준비하며 떡국을 나누고 풍물을 울리는 등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닷가인 선창가로 향했답니다. 책방을 하며 지난 2년간 산꼭대기 정자 위에서 일출 바라봤는데, 고층빌딩에 가려져 이미 그 멋이 상실됐음을 기억했기 때문이지요.

뜻밖에 사진전문가들이 장비를 갖추고 일찍부터 나왔더군요.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 건네며 서로 복주머니를 나눴습니다. 처음 본 사람들인데도, 어느 방향에서 사진을 찍어야 아름다운 일출을 담는지 자세히 가르쳐줬습니다. 또 다른 유명 지역에서는 구름에 가려서 사진 찍는 재미가 없을 거라며, 군산의 바닷가 일출은 정말 아름다운 명소 중의 하나라고 칭찬하더군요.

해를 기다리면서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서쪽 하늘을 한바퀴 돌아보다 귀한 손님을 만났습니다. 이동하는 기러기떼와 달이었습니다. 갑자기 일월오봉도 그림이 연상되더군요. 물론 그런 순간을 사진에 담는 행운은 없었지만, 충분히 상상만으로도 해와 달을 새해 첫 하늘에 그려넣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 7시 50분, "와 나온다. 저기 저기. 와 빨갛다. 신가하다." 어느새 저를 찾아온 조카 3명의 소리가 들려서 바라보니, 정말 붉은 앵두처럼 작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길어봤자, 약 30초 정도면 이쁜 모습 사라져요. 사진 찍어보세요"라는 전문 사진가의 조언도 들려왔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조카들이 일제히 부두가 난간 앞에 서서 소망을 비는 듯한 자세로 붉은 해를 맞이하는 모습이었지요. 무슨 소망을 빌었을까요.
 
▲ 새해 일출을 보는 조카들 '와, 신기하다'를 연발하며 소원을 빈다고 줄줄이 서 있는 조카들.
ⓒ 박향숙
 
물론 저도 역시 두손을 모았습니다. 가까이는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의 평안과 건강을. 멀리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의 어린이들과 생명에게 축복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지요. 제 기도가 분명 그들에게 다가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답니다.

사실 이틀 전에는 광주 5.18 기록관을 비롯한 몇몇 역사의 현장에 다녀왔지요. 얼마전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꼭 한번 광주를 다시 둘러봐야겠다 생각했었거든요. 하루종일 내리는 비 덕분에 광주의 지나간 역사현장이 다시금 생생하게 나타나는 듯해서 더욱더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결국 망월동 묘지는 날이 어두워져서 가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광주 여행기를 쓰려했던 저의 마음이 이내 가라앉았습니다. 새해를 맞는 마음 속에 자꾸 광주의 모습과 영화 일부분이 떠올라 못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갈대와 같은지, 막상 새해 첫 새벽이 되자 새 마음이 생기는 걸 어찌합니까.

청룡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해라고, 지인들이 보내는 신년카드에 용들의 잔치가 열렸습니다. 답장으로 고요한 아침바다에서 건져올린 작고 붉은 해를 담은 사진을 보냈습니다. 더 마음이 끌리는 사진 한 장을 낚시하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해가 떴다고 다 떠나가고 빈 자리에 서 있는 남편. 정박한 배들과 서해포구 시작인 금강의 물결을 비춰주며 점점 위로 올라가는 햇빛으로 인해 주변 광경이 그라데이션으로 채색됐습니다. 정말 하늘에서 내려준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 일출이 내어준 천상의 그림 일출의 열기가 사라진 후 선창가의 모습이 마치 한폭의 그림 같다.
ⓒ 박향숙
 
새해 첫날, 어부의 딸로서 낚시 한 번 걸판지게 했다고 자화자찬 했습니다. 역시 나는 '어부의 딸'이야 라며 바다와 강물에게도 감사드렸습니다. 매일 쓰고 있는 '시가 있는 아침편지'에 오늘의 시로 박인걸 시인의 '1월'을 보내드렸는데요. 시인의 말대로 '삼백 육십 오리의 출발선에서' 긴 호흡으로 장전하며 저도 역시 출발했습니다.
결코 멈출 수 없는 출발이지만 서두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답니다. 때론, 달리기, 때론, 빠르게 걷는 경보, 또 어느 날엔 거북이 걸음으로 가겠습니다. 장전된 호흡이 올 2024년 끝나는 날까지 부드럽게 울려지도록 조절하면서요. <오마이뉴스> 구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큰절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만드시길.
 
1월
 
삼백 육십 오리의 출발선에서
이미 호각은 울렸다.
힘차게 달리는 사람과
천천히 걷는 사람과
이제 첫 걸음을 떼는 틈에서
나도 이미 뛰고 있다.
출발이 빠르다고
먼저 도착하는 것도 아니고
걸음이 더디다고
꼴찌를 하는 것도 아니다
먼저 핀 꽃이 일찍 시들고,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기도 하다.
(하략)
 
- 박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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