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았지만 천국이었다” 이 부부가 로스팅 한 ‘커피 같은 삶’
“뇌종양 진단 후 마음 졸인 시기조차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고백
회전목마, 새옹지마, 물레방아 등 인생을 표현하는 은유에는 여러 가지 키워드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커피를 벗 삼아 삶을 향유하고, 커피의 다채로움을 생의 우여곡절에 빗대어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고백하는 이들이 있다. 연기자 가수 커피 마스터 교수 사업가 공연기획자 유튜버 등 커피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수식어로 살아가는 배우 김정화 유은성 전도사 부부다.
최근 인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생두가 230도의 열기와 만나 800가지 넘는 향미의 원두로 태어나는 로스팅 과정처럼 매 순간 각기 다른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특히 결혼 11년차를 맞은 2023년에 대해 “지옥을 떠올릴 만큼 큰 아픔으로 시작해 천국을 마주한 듯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며 마무리한 시간”이라고 입을 모았다.
배우와 CCM가수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 있던 두 사람이 대중에게 함께 각인된 건 10년 전,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처럼 결혼 소식이 발표되면서다. 이 과정엔 결정적 역할을 해준 인물이 있다. 바로 우간다에서 인연을 맺은 김정화의 딸 아그네스다. 김정화가 에세이집 ‘안녕, 아그네스’를 출간하면서 녹음하게 된 동명의 싱글 앨범에 유 전도사가 작곡가로 참여하면서 사랑을 키운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다시금 대중을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유 전도사의 뇌종양 진단 소식과 감사의 기도 제목을 알린 것이다. 수술을 받게 되면 장애 확률 90%, 사망 확률 50%라는 절망적 현실 가운데서도 부부를 둘러싸고 있는 가정의 울타리는 견고했다. 그 울타리의 중심축인 ‘사랑’과 ‘계획하심에 대한 신뢰’가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SBS), 다니엘기도회(운영위원장 김은호 목사) 등을 통해 알려지며 수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다.
“때로는 에스프레소처럼 쓰고 짙은 아픔도, 캐러멜 마키아토에 얹힌 우유 거품처럼 포근하고 달콤한 순간도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인생의 난관들이 피해가진 않죠.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어떻게 극복해나가는지 진솔하게 보여줄 수 있어서 더 감사했던 한 해였습니다.”(유 전도사)
실제로 방송 후엔 ‘공중파 보면서 은혜받긴 처음이네’ ‘개독교 싫어하는데 이 사람은 안 죽었으면 좋겠다’ ‘인생의 비전을 찾았어요. 이 부부처럼 살고 싶어요’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처럼 느껴졌던 첫 만남부터 연애, 결혼, 육아, 뇌종양 진단과 투병 생활까지 지나온 순간들을 ‘교환 일기’ 쓰듯 기록한 에세이집 ‘커피 마실래요? 결혼할래요?’(도서출판 꿈미)를 최근 출간했다.
바리스타 인스트럭터 자격을 취득한 전문가이자 커피 전문점의 공동 운영자답게 삶의 각 장면과 변곡점을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아인슈페너 아포가토 등 커피 고유의 특징과 매치해 풀어낸다. 김정화는 “결혼 전까지 불안정하기만 한 사람이었던 내게 사랑을 나누며 가정을 꾸리고 육아를 해내는 과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같은 시간”이라며 “N포 세대라 불리며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용기 내어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을 주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유 전도사는 “좌충우돌 현실 연애와 육아 일상이 신앙적 깨달음과 맞닿게 되는 순간들을 솔직하게 써내려 갔다”며 “MZ세대들에겐 재미있는 데이트 지침서이자 결혼을 그려볼 수 있는 참고서로, 가정을 꾸린 이들에겐 ‘육아터’에서 용기와 위로를 얻을 수 있는 힐링 송이자 힐링 드라마가 돼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뇌종양 진단 소식이 알려지면서 ‘건강과 안부를 묻는 DM(다이렉트 메시지)’이 부쩍 늘었다는 유 전도사는 최근까지의 치료 근황도 전했다. 그는 “의료진으로부터 ‘종양이 더 자라지 않아서 추적만 잘하면 되겠다’는 소견을 들었다”며 “나의 약함을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는 도구로 쓰시는 하나님(고후 12:9)을 바라보며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고 자랑할 하루하루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날 두 사람을 만난 공간에도 ‘커피에 담은 사랑’이 깃들어 있다. 대화를 나눈 카페는 김정화가 대표를 맡고 있는 알리스타커피의 본사 매장이다. 그 배경엔 김정화가 아프리카 케냐의 한 청년으로 인해 커피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가 있다.
청년의 이름은 엘리야스. 한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케냐를 한국과 같은 IT강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안고 한국 유학길에 오른 인물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로 엔딩을 맞이할 듯했던 청년의 이야기는 불의의 사고로 멈추고 말았다. 한국에서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엘리야스는 케냐로 돌아가기 전 한국이 베풀어준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며 통영의 한 섬으로 봉사활동을 떠났다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김정화는 영원히 멈춰버릴 뻔했던 꿈에 다시 불을 지폈다. 기독 NGO 월드베스트프렌드(대표 차보용 목사)와 협력해 엘리야스의 고향인 케냐 바링고 지역에 수천 그루의 커피나무를 심고 주민들이 빈곤한 삶을 벗어나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물꼬를 텄다. 그가 본격적으로 커피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김정화는 해발 2250미터에 위치해 있어 양질의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바링고 지역 커피를 공정무역으로 전량 수입하며 2020년 8월 경기도 시흥에 첫 매장을 선보였다. 엘리야스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숭고한 별’을 뜻하는 알리스타가 브랜딩으로 출발선에 선 순간이었다.
그는 “케냐엔 47개 주가 있는데 그 중 경제지수가 45위였던 바링고가 커피 사업을 시작한 뒤 11위로 성장했다”며 “지금은 50개 넘는 커피 조합이 만들어졌는데 조합원이 되면 자연스럽게 복음도 전할 수 있는 구조”라고 소개했다.
카페 내외부엔 소년 엘리야스의 얼굴과 케냐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일러스트가 눈길을 끈다.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소통하길 바라는 공간 곳곳엔 시편 23편을 비롯한 성경 구절이 ‘월 아트’로 수놓아져 있었다. 일상에서 커피를 음미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이 쉬이 떠올리지 못하는, 커피나무가 열매를 맺기 한참 전부터 그 씨앗에 예수 그리스도의 온기가 담겨 있음이 느껴졌다.
두 사람과의 대화엔 부쩍 ‘선물’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연인으로서 사랑을 꽃피워나가던 시절, 지구 반대편 우간다에서 처음 아그네스를 만나던 순간, 가정의 결실로 첫 아이를 얻고 양육하는 과정, 심지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뇌종양 진단을 듣고 치료를 이어가는 과정에서도 “선물 같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렀다.
이들은 함께 써 내려간 책에서도 “커피를 부르는 다른 말이 ‘신이 준 선물’”이라고 언급했다. 그동안 걸어온 삶의 여정을 통해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생을 걸어가며 선물처럼 펼쳐 보일 선한 영향력을 기대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인천=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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