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공지영 작가, 예루살렘 순례에서 얻은 성찰
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공지영 작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이다. 2022년 가을 예루살렘 순례에서 찾은 깨달음을 기록했다. 그는 요르단 암만을 시작으로 갈릴래아 호수, 요르단강, 쿰란, 나자렛, 베들레헴, 예루살렘 등을 순례한다. 예수의 탄생이 예고된 순간부터 부활하는 순간까지의 과장이 담긴 성소를 방문해 걷는 동안 성경의 내용을 자신의 삶에 대입해 치열하게 묵상한다. 해당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이기도 하다. 공 작가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 곳곳에 세워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높다란 장벽과 철조망, 총을 든 군인의 적의에 찬 눈빛을 마주한다. 작가는 언제라도 고통이 오면 우리는 이 고통이 내게 원하는 바를 묻고, 반드시 변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외로움은 단순한 고립과 단절이 아닌 낡은 과거와 이별하고 진정한 자유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임을 말한다. 공 작가의 대표 에세이 중 하나인 '수도원 기행 1, 2'를 잇는 영성 고백과 삶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 수십 장도 담았다.
나는 십 대 이후로 죽음에 대해 거의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선택을 해야 할 때 하다못해 이사를 할 때도 나는 '이곳에서 생을 마쳐도 좋은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지금도 날마다 한다. '이렇게 하고 죽어도 좋은가' 혹은 '이것이 너의 마지막이어도 후회하지 않을 텐가' 하고. 그렇기에 나에게는 지금 이 한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다.(16~17쪽)
남에게 나 자신을 내어주는 일은 결코 약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거대하고 힘이 센 우주 혹은 신과 하나가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성자 프란치스코는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습니다"라고 했던 거였다. 그래서 우리가 조건 없이 무엇을 남에게 주기로 하는 순간 우리는 마치 거센 대양의 조류를 올라타는 조각배처럼 우주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리라.(42쪽)
"젊은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 현명해지고 너무나 너그러워지고 너무나 침착해졌다고 너희가 칭찬해 주니 그게 참 기뻐. 그런데 이렇게 된 건 나이가 내게 준 것이 결코 아니야. 나이를 먹고 가만히 있으면 그저 퇴보할 뿐이야. 더 딱딱해지고 더 완고해지고 더 편협해지지. 자기가 바보가 된 줄도 모르는 바보가 되지. 만일 내게 예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면이 있다면 그건 성숙해지고자, 더 나아지고자 흘린 피눈물이 내게 준 거야. 쪽팔리고 속상했지만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때 피눈물이 흐르는 거 같았거든. 그런데 육십이 된 오늘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제일 잘한 게 그거 같아. 칭찬해, 내 피눈물!"(78쪽)
전 세계 모든 살인자들의 70퍼센트는 어린 시절 아동학대 피해자였다. 성격이 형성되는 만 3세까지의 일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학자들은 그들이 버림을 받기 전인 세 살 이전에 학대에 노출되었을 가능성까지 해서 90퍼센트 이상이 아동학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고 추정한다. 이 연구 결과에서 가정폭력이라 함은 직접적인 폭력에의 노출뿐 아니라 어머니나 여타 가족이 당한 폭력, 즉 집안 내의 모든 폭력도 포함되는데, 이 기억도 깊은 상처를 남김을 의미했다. 사이코패스라고 우리가 괴물처럼 인식하는 그들도 실은 어린 시절의 학대와 폭력으로 인해 전두엽의 일부가 발달하지 못했다는 가설도 있다.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만나는 사형수들 거의 다가 어린 시절 폭력의 희생자들이었다. (129쪽)
누군가의 말대로 성모는 하느님의 아들을 낳아서가 아니라 그 아들이 하느님의 뜻 - 자신의 뜻이 아니다 - 을 행하도록 놔두고, 내버려두고, 그리고 떠나보냈기에 거룩한 어머니가 된 것이리라.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갈수록 더 생각하는데 인생에서 얻는 것보다 내려놓는 것이 백배는 더 어렵다. (중략) 마리아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넘어진 상처투성이 아들을 보고 그 자리에서 울거나 소리쳤다는 기록이 없다. 하늘을 향해 "제발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하고 기도했다는 말도 없다. 그녀는 침묵하며 아들의 길을 그저 따라갈 뿐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모성을 완성한다. 내 맘에 들지 않고 이해도 할 수 없고 남들 보기에도 엄청나게 부끄럽지만, 그러나 아들에게 아들이 원하는 길을 가게 함으로써. (중략) 사랑은 그러니까 참사랑은 강요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 자발적임으로 완성된다. (229~231쪽)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 공지영 지음 | 340쪽 | 해냄 | 1만80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수 벤 "아이 낳고 6개월만에 이혼 결심…거짓말에 신뢰 무너져"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100명에 알렸는데 달랑 5명 참석…결혼식하다 인생 되돌아본 부부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황정음처럼 헤어지면 큰일"…이혼전문 변호사 뜯어 말리는 이유 - 아시아경제
- "언니들 이러려고 돈 벌었다"…동덕여대 졸업생들, 트럭 시위 동참 - 아시아경제
- "번호 몰라도 근처에 있으면 단톡방 초대"…카톡 신기능 뭐지? - 아시아경제
- "'김 시장' 불렀다고 욕 하다니"…의왕시장에 뿔난 시의원들 - 아시아경제
- "평일 1000만원 매출에도 나가는 돈에 먹튀도 많아"…정준하 웃픈 사연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