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이전, 이선균의 대표영화는 이 작품이었다
[양형석 기자]
2024년 '푸른 용의 해'가 밝았다. 굳이 용띠가 아니더라도 새해를 맞는 사람들이 이 시기에 갖는 설렘과 희망은 모두 비슷할 것이다. 비록 3일 만에 사라진다 하더라도 새해가 되면 새로운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룬 자신을 상상하며 괜히 뿌듯해지곤 한다. 하지만 영화, 특히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새해를 맞는 기분이 마냥 좋을 수는 없다. 새해가 시작되기 불과 5일 전, 한국영화는 너무나 아까운 배우 이선균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부터 마약 투약 의혹을 받고 있던 이선균은 두 달에 걸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수사기관은 비공개 조사를 원했던 이선균의 요구를 묵살했고 이선균을 세 차례에 걸쳐 포토라인에 세웠다. 두 달이 넘는 조사에도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선균의 심신은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결국 지난해 12월 27일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 김성훈 감독은 <끝까지 간다>를 통해 345만 관객을 동원하며 데뷔작의 아쉬움을 털어 버렸다. |
ⓒ (주)쇼박스 |
사투리-표준어 연기 완벽하게 가능한 배우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고 고교시절에 귀향해 부산 경성대에서 연극을 전공한 조진웅은 표준어와 부산 사투리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성장했다. 대학시절 부산의 극단 동녘에 들어가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조진웅은 2004년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선도부 종훈(이종혁 분)의 패거리 야생마를 연기하면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옥상에서 권상우를 창틀로 내리치던 역할이었다).
<우리 형>과 <비열한 거리><폭력써클> 등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던 조진웅은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주목 받기 시작했다. 특히 2011년엔 <글러브>에서 김상남(정재영 분)의 매니저 찰스, <고지전>에서 악어중대 신임 중대장, <퍼펙트 게임>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4번 타자 김용철을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다. 조진웅은 TV에서도 <뿌리 깊은 나무>의 무사 무휼 역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김판호 역을 맡았던 조진웅은 2014년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 비리경찰 박창민을 연기했다. 조진웅이 이선균과 함께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친 <끝까지 간다>는 전국 345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조진웅은 <끝까지 간다>를 통해 2015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이선균과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공동 수상했다.
같은 해 여름 <명량>에서 일본 수군 중군상 와키자카 야쓰하루를 연기하며 천만 배우에 이름을 올린 조진웅은 2015년에도 최동훈 감독의 <암살>에서 속사포 역을 맡아 '쌍천만 배우'에 등극했다. 2016년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 <시그널>에서 이재한 형사를 연기한 조진웅은 2018년 <독전> <공작> <완벽한 타인> 등 여러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관객들에게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정지영 감독의 <블랙머니>로 248만 관객을 동원한 조진웅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도 <사라진 시간> <경관의 피> <대외비> 등을 선보였지만 극장가 침체와 맞물려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작년 2월 김희애, 이수경과 영화 <데드맨> 촬영을 마치고 올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조진웅은 작년 10월 절친한 동료 이선균이 하차한 드라마 <노웨이아웃>에 투입돼 주인공 백중식 형사를 연기하고 있다.
▲ 이선균(오른쪽)과 조진웅의 긴장감 넘치는 연기대결은 <끝까지 간다>의 최고백미다. |
ⓒ (주)쇼박스 |
대학에서 헝가리어를 전공한 후 영화계에 뛰어든 김성훈 감독은 지난 2006년 백윤식 배우와 봉태규 주연의 독특한 코미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해 데뷔했지만 전국 59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 7년이 넘는 시간을 와신상담한 김성훈 감독은 2014년 <끝까지 간다>를 통해 345만 관객을 모으며 재기에 성공했고 2016년 7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터널>, 2019년엔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연출했다.
이선균은 드라마 <파스타>와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전성기에 맞았지만 당시만 해도 한 편의 영화를 홀로 이끌어 갈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선균은 <끝까지 간다>에서 어머니의 장례식 도중 황당하고 끔찍한 사건을 겪게 되는 강력반 형사 고건수를 멋지게 소화했다. 특히 이선균의 부드러운 이미지에 익숙한 관객들은 욕설을 입에 달고 사는 고건수 형사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끝까지 간다>속 또 한 명의 주역이자 조진웅이 연기한 박창민은 영화가 시작된 지 52분 만에 처음 앞 모습이 등장하고 56분 40초 만에 고건수와 첫 대면을 한다. 하지만 박창민의 첫 등장 장면이 워낙 강렬해 관객들은 조진웅의 늦은 등장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적지 않은 관객들이 <끝까지 간다>의 조진웅 등장씬을 <늑대의 유혹>의 강동원, <관상>의 이정재와 함께 '한국영화 3대 등장 신'으로 꼽기도 한다.
김성훈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장항준 감독과 <김씨표류기>의 이해준 감독이 각색에 참여하며 완성도를 높인 <끝까지 간다>는 무려 4개 나라에서 리메이크됐다. 가장 먼저 2017년 중국에서 <파국>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90년대 인기스타 곽부성이 고건수 역을 맡았다. 이 밖에 작년 2월 프랑스, 9월 필리핀, 지난 5월 일본판이 개봉했고 작년 8월에는 웹툰이 연재되기도 했다(웹툰에서는 영화와 달리 주인공이 여성이다).
<끝까지 간다>는 345만의 흥행성적이 말해주듯 블랙코미디 요소가 가미된 범죄스릴러 영화로서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다. 다만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선균의 얼굴이 강조된 포스터는 영화의 긴장된 분위기를 살리지 못했다는 혹평을 들었다. 영화팬들은 <끝까지 간다>의 메인포스터를 <지구를 지켜라> <김씨표류기>와 함께 '포스터를 잘못 만든 3대 한국영화'로 꼽기도 했다(물론 <끝까지 간다>는 앞의 두 영화와 달리 흥행에 성공했다).
▲ '반장전문배우' 신정근은 <끝까지 간다>에서도 팀원들의 무사고를 기원하는 형사반장을 연기했다. |
ⓒ (주)쇼박스 |
적지 않은 영화에서 형사반장 역할을 전담하고 있는 배우 신정근은 <끝까지 간다>에서도 고건수가 속한 서울서부경찰서의 강력1팀 장반장 역을 맡았다. 장반장은 특별히 비리를 주도하는 악역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경찰로서 정의를 강조하는 인물도 아니다. 그저 큰 문제나 사고 없이 팀이 무사히 돌아가길 바라는 여느 회사의 평범한 간부와 같은 마인드를 가진 인물로 팀원들의 뇌물수수 사건이 조용히 넘어가자 팀원들을 따로 질책하지 않았다.
많을 때는 1년에 5~6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는 충무로의 대표적인 다작배우 정만식은 <끝까지 간다>에서 고건수의 친구이자 동료 최형사를 연기했다. 최형사는 고건수 앞으로 날아온 교통위반 벌금 고지서를 보다가 고건수가 살인사건과 연루된 사실을 알고 고건수를 체포하지만 "친구를 잡아놓고 마음 편하게 살겠냐"며 고건수를 풀어준다. 하지만 최형사는 고건수가 하차한 후 차 위로 엄청난 무게의 박스가 떨어지면서 그대로 압사 당한다.
2019년 <왜그래 풍상씨>에서 간분식 역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였고 최근 <웰컴투 삼달리>에서 삼달의 언니 진달을 연기하고 있는 신동미는 <끝까지 간다>에서 고건수의 동생 고희영을 연기했다. 고희영은 남편(김강현 분)의 사업실패 후 이혼한 오빠의 집에 얹혀 살면서 조카인 민아(허정은 분)를 돌보고 있다. 고희영은 오빠에게 토스트 가게를 차려 달라고 제안하는 뻔뻔한 면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 조카를 우선적으로 챙기는 착한 고모이기도 하다.
<끝까지 간다>에도 훗날 인기스타가 되는 배우 한 명이 그리 크지 않은 조·단역으로 출연했다. <끝까지 간다>에 출연하고 1년 후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최고의 라이징스타로 떠오르는 박보검이 그 주인공이다. 박보검은 <끝까지 간다>에서 고건수가 저지른 뺑소니 사고를 수사하기 위해 범행 현장으로 온 이순경을 연기했다. 당시 깔끔한 제복차림의 이순경을 보고 일찌감치 화려하게 빛날 박보검의 미래를 예측한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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