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출근길 3시간을 달릴 수 있었던 힘

성낙선 2024. 1. 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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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한강 산책] 한강 자전거도로 위에서 맞이하던 태양들

[성낙선 기자]

 2024년 1월 1일 첫 일출. 서울 하늘 짙게 깔린 구름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서강대교 위에서 바라본 장면.
ⓒ 성낙선
한때, 자전거를 타고 집이 있는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서 회사가 있는 마포구 상암동까지 출퇴근을 한 적이 있다. 출퇴근 경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길음동에서 북악터널을 지나 불광천을 따라 내려가는 경로였고, 하나는 길음동에서 마장동까지 가서 청계천 자전거도로로 진입한 다음, 한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상암동까지 가는 경로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어떤 경로로 출근을 할지 결정을 하는 게 일이었다. 북악터널을 지나가는 길은 1시간 거리로, 길이가 짧은 대신 터널을 지날 때까지 계속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한강을 지나가는 길은 2시간 30분에서 3시간 거리로,  길이가 긴 대신 길이 평탄해서 몸에 큰 무리가 가지 않았다.

시간상 북악터널을 넘어가는 길이 출근을 하는 데 더 적합해서 주로 그 길을 이용했다. 하지만 단점도 많았다. 오르막은 물론, 자전거를 타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동차들과 함께 차도를 달려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북악터널을 넘기 전까지는 순전히 오르막이어서 차들이 짙은 매연을 내뿜으며 달렸다. 터널 안 공기는 더 안 좋았다.

지금은 터널 안으로 인도와 차도 사이에 차단막이 설치돼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게 없던 때라 방진 마스크 같은 걸 쓰지 않고는 터널을 지나갈 수가 없었다. 코는 맵고 눈은 따가웠다. 오르막을 오르는 것 자체도 힘든데 매연까지 뒤집어쓰며 자전거를 타다 보니, 회사에 도착할 때가 되면 몸이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2024년 1월 1일 첫 일출. 서울 하늘 짙게 깔린 구름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서강대교 위에서 바라본 장면.
ⓒ 성낙선
 
같은 길인데,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때때로 3시간 거리를 감수하며 한강 길을 달렸다. 이때는 늦어도 아침 6시에는 집을 떠나야 해서, 새벽잠을 설쳐야 하는 게 힘들긴 했다. 그래도 이 길로 출근을 하고 나면, 한결 몸이 가뿐했다. 자전거를 타는 시간이 길긴 해도,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몸이 말할 수 없이 개운했다.

이때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자전거도로 위에서 맞이하던 햇살이다. 자전거를 타는 와중에도 등 뒤로 태양이 떠오르는 게 느껴졌다. 내 등으로 따뜻한 태양 빛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청계천을 통해서 한강으로 진입하고 나면 서서히 동쪽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하는데, 그때 세상의 온갖 생물들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걸 보았다.

이때가 되면, 자전거를 탄 지 이미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이다. 체력이 떨어져 지칠 법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다리에는 더 단단한 힘이 들어갔다. 등 뒤로 쏟아져 내리는 태양광이 또 다른 동력이 돼서 내 체력을 보강하는 게 틀림없었다. 광합성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내 몸에서 새로운 힘이 돋아나는 기묘한 체험을 하곤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3시간을 내리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중간에 체력이 바닥날 수도 있다. 그때 그 길을 중간에 멈추는 일 없이 끝까지 달릴 수 있었던 데는 서울 하늘 높이 솟은 빌딩들 위로 말갛게 떠오르는 태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태양이 내게 지침 없이 페달을 밟을 힘을 주었다.

그런 사실은 저녁에 태양이 지고 난 뒤, 바로 증명이 되었다. 퇴근을 하고 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는 출근을 할 때보다 배로 더 힘들었다. 해가 진 뒤에는 어찌 된 일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훨씬 더 길고 멀게 느껴졌다. 실제로 시간은 30분 정도 더 늘어났다. 아침저녁으로 똑같은 길을 달리는데 뭐가 다를까 싶지만, 많이 달랐다.
 
 강원도 고성의 한 해변에서 바라본 일출(2023년12월 27일).
ⓒ 누리
  
자기만의 태양을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에게 특별한 기운을 전달한다. 생동하는 기운이다. 그 기운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사람들이 공연히 일출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새해 새 아침에는 지난해와 다른, 새로운 태양이 떠오른다. 늘 새 태양이 떠오르지만, 새해 첫날 아침만큼은 조금 더 특별한 태양이 떠오른다.

그 태양이 또, 보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기운을 전달한다. 태양을 바라보는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천 개의 태양이 떠오르는 셈이다. 새해 첫날 아침 동쪽 하늘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걸 지켜보려고, 모든 걸 불사하고 하루 전 날 일찌감치 동해안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은 본다. 모두 자기만의 태양을 찾아서 떠나는 사람들이다.

가는 동안에는 차 안에서 시달리고, 가서는 또 인파에 치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기다린다. 가서 꼭 일출을 보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그 정도 희생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무슨 대단한 결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새해 아침 태양이 주는 기운을 얻어서, 올 한 해를 다시 기운차게 살아보려는 생각에서다.

동해안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은 근처 가까운 곳에 있는 산봉우리나 다리 위 같이 시야가 넓게 트여 있는 곳을 찾아간다. 지역마다 일출을 바라보기 좋은 곳이 몇 군데 있다. 서울에서는 새해 첫날 아침이 되면, 해맞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마포대교나 서강대교 같은 다리 위에 길게 늘어서서 태양을 바라보는 진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해맞이를 하면서는 저마다 소원을 빈다. 태양을 바라보며 거기에 가슴 속 작은 희망을 건다. 멀고 먼 출퇴근길이었지만, 새벽마다 새로 떠오르는 태양빛에 힘을 얻어 자전거를 타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야말로 태양빛으로 충만했던 시절이다. 올해는 동쪽 하늘 위로 떠오르는 새해 첫 태양을 바라보면서, 그같은 날이 다시 찾아와 주기를 빌어볼 생각이다.
 
 여의도 63빌딩에 비친 저녁 노을. 자전거도로 위에서 바라본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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