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만나 정든 아기, 그래도 헤어지고 싶습니다

윤용정 2024. 1. 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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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올해의 OO] 자원봉사와 운동의 공통점... 하다보면 점차 근육이 붙는다는 것

'올해의 ○○'은 2023년을 마무리 하는 기획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도전, 실패, 인물 등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 가운데,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윤용정 기자]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아이가 태어나 맞은 첫 번째 생일이었다. 많은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노래를 불렀는데,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두 사람, 아이의 부모만 그 자리에 없었다.

OO꿈터에서 '송년의 밤' 행사를 했다. 후원과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을 모셔놓고 연간 사업보고와 간단한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이곳에서 지내는 아이 중에 마침 첫돌을 맞은 아이가 있어 돌잔치를 함께 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코끝이 찡해왔다. 담당 보육 선생님이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을 때는 아무리 입술을 깨물어도 눈물이 참아지지 않았다. 평소에 난 아이의 이모지만, 그 날만큼은 엄마의 마음이었다.

어쩌다 시작하게 된 봉사 
 
▲ 돌상 첫돌을 맞은 아기의 돌잔치를 했다
ⓒ 윤용정
 
나는 이곳 OO꿈터에서 2022년 10월부터 1년 넘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 곳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졌거나 가정학대 등의 이유로 부모와 함께 지낼 수 없는 0세~미취학 아동이 생활하는 시설이다. 

내가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해외 어느 나라 아동에게 편지를 쓰는 행사에 참여했더니, 며칠 뒤 내게 해외 아동을 1:1 후원해 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매달 3만 원씩의 후원금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직접 키우는 아이가 셋이나 있는데, 얼굴도 알지 못하는 해외 아동을 위해 매달 3만 원의 후원금을 내는 것은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다 키우고 나서, 금전적으로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도움을 주리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또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일까? 지금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면 다른 도움을 주면 되잖아. 멀리 해외 아동 말고 내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찾아보자!'

내가 사는 지역 아동 보육시설을 검색해 보고, 서울특별시에서 운영하는 OO꿈터를 알게 됐다. 자원봉사 신청을 하고 교육을 받은 뒤, 매주 일요일 오전에 2시간씩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다. 

처음 그곳에 갔던 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배정된 방은 신생아부터 돌 이전의 아기들이 생활하는 방이었다. 누워서 모빌을 보며 놀고 있는 아기에게 검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기가 주먹으로 내 손가락을 꽉 잡았는데 손이 생각보다 단단했다.

난 그 손을 흔들면서, 만약 내 딸이 들었으면 가증스럽다고 할 만한 귀여운 목소리로 '아고 이뻐라, 힘도 세네' 하면서 웃어주었다. 아기가 이가 하나도 없는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뻔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있으면 포근하고 편안했다. 세상 걱정이 다 사라지는 듯 했다. 새삼 내가 내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환경에 있었던 게 감사할 만한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두 시간 동안 감사와 행복을 마음속에 꽉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제일 많이 웃는 시간, 일요일 오전 
 
▲ 아기 손 고사리 같은 손을 잡으면 기분이 좋다
ⓒ 윤용정
 
봉사를 하면서 가장 슬프면서도 기쁜 일은 아이가 입양 부모를 만나 이곳을 떠날때이다. 입양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부모와 아이가 연결되면 일정 시간 동안 만남을 갖다가 부모가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간다.

매주 보던 아이가 어느 날 입양 가정으로 떠나고 없으면 남은 아이들이 더 쓸쓸해 보이곤 한다. 아이들이 모두 좋은 부모를 만나 이곳을 떠나기를, 우리가 헤어질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지난 봄에 OO꿈터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려 봉사활동이 몇 주간 중단된 적이 있다. 일요일 오전에 봉사활동 가지 말고, 자기랑 놀아주면 안 되냐고 가끔 삐지는 초등학교 3학년 막내딸이랑 놀아주려고 마음먹었다. 

"딸, 우리 오늘 영화 보러 갈까?"
"엄마, 오늘 아기들 보러 안 가? 나 오늘은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기로 했어."

이렇게 어이 없게(?) 딸이 집을 나가고, 다른 가족들을 보니 다들 각자 휴대폰을 붙들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었다. 그때 나 혼자 멍하니 식탁에 앉아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봉사를 한 게 아니었구나. 내가 아이들을 돌보러 다닌 게 아니고, 아이들이 나랑 놀아준 거였어!'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물었다.

"거기 가서 제일 많이 하는 일이 뭐야?"
"기저귀 갈아주고, 밥 먹이고... 아, 제일 많이 하는 건 웃는 거!"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웃는다. 그런 웃음은 전염된다. 아무리 걱정이 많은 날도 거기 있는 두 시간 동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주일 중 가장 게으르고 의미 없이 보내던 일요일 오전이, 꿈터 아이들을 만나면서 가장 밝게 웃으며 노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버럭버럭 화 많던 내가 화가 줄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단하다'는 말이 돌아온다. 내가 1년 넘게 꾸준히 자원봉사를 한 건 대단한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다. 얻는 게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를 시작한 이후에 느낀 가장 큰 변화는 화가 줄어든 것이다. 

"이게 방이냐, 쓰레기장이냐?"
"양말 좀 뒤집어 벗어놓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들을 향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화를 내는 대신 이런 생각을 한다.

'방을 이렇게 어지를 정도로 건강해서 고맙네.'
'양말 좀 뒤집어 벗어놓으면 어때. 세상이 뒤집어지는 일도 아닌데.'

가족이 함께 사는 건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새삼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아이들이 방을 어지르거나 남편이 양말을 뒤집어 벗어놓는 것쯤은 화낼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아이들을 보러 가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그래도 가끔 가기 어려운 날이 있다. 특히 요즘처럼 혹한의 추운 날에 그렇다. 그럴 땐 운동을 꾸준히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들은 한 가지 조언을 생각한다. '일단 집 밖으로 딱 한 걸음만 나간다. 체육관으로 간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 OO꿈터로 가 보면? 먼저는 웃음이 나오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 몸에 근육이 늘고 피부가 좋아지는 것처럼, 꾸준한 자원봉사는 마음에 단단한 근육을 붙여주는가 보다. 하도 자주 웃으니 인상마저 밝아지고 예뻐졌는지, 요즘 피부 관리 받느냐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는 건 일종의 보너스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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