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못 빼" 말 바꾼 세입자에 틀어진 계약…대법서 뒤집힌 결말
기존 전세 세입자가 나간다는 전제로 아파트 매매 계약을 체결했는데,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매도인에겐 거주 가능한 상태로 아파트를 넘길 의무가 있고, 매수인은 거주 가능 여부가 확실해질 때까지 잔금을 안 줘도 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매수인이 입주할 수 없더라도 잔금을 내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원심을 파기하면서다.
지난 2021년 1월, A씨는 B씨로부터 인천의 한 아파트를 매수하는 계약을 했다. A씨는 집을 사면 자신이 들어가 살 작정이었다. 이 집에는 전세로 들어와 살고 있는 C씨가 있긴 했는데, 임대차계약이 끝나는 10월이면 나간다고 했다. 공인중개사는 C씨와 통화했다며 그가 임대차계약기간 만료 후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는 얘길 설명서에 남기기도 했다.
나간다던 세입자, ‘2년 더’ 갱신청구권 폭탄 통보
매매대금은 11억원 중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5억 원은 C씨에게, 나머지 6억 원은 B씨에게 주기로 했다. 잔금까지 4월에 다 치르되, 임대차계약이 10월에 끝나는 걸 감안해 실제로 아파트를 인도받는 건 12월에 하기로 특약에 적었다. A씨는 약속한 날짜에 계약금, 중도금을 치렀고 이제 B씨에게 줄 돈은 잔금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세입자 C씨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입주할 아파트를 산 A씨에겐 청천벽력이었다. 매도인 B씨는 그저 어쩌겠냐며 얼른 잔금 주고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가라고 할 뿐이었다. 이에 A씨는 잔금을 보내지 않았다. 갈등은 강 대 강으로 번졌다. B씨는 A씨에게 잔금을 안 줬으니 계약을 해제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A씨가 소송을 냈다.
“거주 안 돼? 잔금 못 줘!” VS “잔금 안 줘? 계약 깨!”
1심을 맡은 인천지방법원 강인혜 판사는 매수인 A씨 손을 들어줬다. 약속한 12월에 아파트를 인도받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A씨가 잔금을 안 준 건 채무불이행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강 판사는 “2021년 12월까지 아파트를 A씨에게 거주할 수 있는 상태로 실제 인도하는 것은 매도인인 B씨의 완전한 소유권이전의무에 포함되는 것”이며 “이런 의무 이행이 현저히 불확실한 이상 그 의무 이행제공을 받을 때까지 A씨는 잔금지급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했다.
2심은 B씨 손을 들었다. 같은 법원 민사항소 2부(부장 차승환)는 B씨로선 잔금을 받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기는 방법으로 인도할 의무만 있을 뿐 거주할 수 있는 상태로 넘겨야 하는 ‘현실 인도 의무’까진 없다고 봤다. 이에 잔금을 치르지 않은 데 따른 계약 해제는 유효하단 결론이다. 재판부는 “임대인인 B씨는 실거주 사유로 C씨를 상대로 갱신을 거절할 수 없었던 반면 매수인인 A씨는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임대인 지위를 승계했더라면 갱신거절 기간 내에 C씨의 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빈집 넘겨줄 ‘현실 인도 의무’, 있다→없다→있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은 “매도인의 인도 의무보다 먼저 잔금 지급 의무를 매수인이 부담하는 상황에서, 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한 임차인이 잔금 지급일 직전 갱신요구권을 행사한 경우 매수인의 잔금 지급 의무의 이행거절이 정당하다고 볼 여지가 있어 그 잔금 지급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매도인이 매매계약을 해제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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