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못 빼" 말 바꾼 세입자에 틀어진 계약…대법서 뒤집힌 결말

문현경 2024. 1.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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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연수구 송도신도시의 한 신축아파트 공사현장의 모습. 사진은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스1]


기존 전세 세입자가 나간다는 전제로 아파트 매매 계약을 체결했는데,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매도인에겐 거주 가능한 상태로 아파트를 넘길 의무가 있고, 매수인은 거주 가능 여부가 확실해질 때까지 잔금을 안 줘도 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매수인이 입주할 수 없더라도 잔금을 내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원심을 파기하면서다.

지난 2021년 1월, A씨는 B씨로부터 인천의 한 아파트를 매수하는 계약을 했다. A씨는 집을 사면 자신이 들어가 살 작정이었다. 이 집에는 전세로 들어와 살고 있는 C씨가 있긴 했는데, 임대차계약이 끝나는 10월이면 나간다고 했다. 공인중개사는 C씨와 통화했다며 그가 임대차계약기간 만료 후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는 얘길 설명서에 남기기도 했다.


나간다던 세입자, ‘2년 더’ 갱신청구권 폭탄 통보


매매대금은 11억원 중 전세보증금에 해당하는 5억 원은 C씨에게, 나머지 6억 원은 B씨에게 주기로 했다. 잔금까지 4월에 다 치르되, 임대차계약이 10월에 끝나는 걸 감안해 실제로 아파트를 인도받는 건 12월에 하기로 특약에 적었다. A씨는 약속한 날짜에 계약금, 중도금을 치렀고 이제 B씨에게 줄 돈은 잔금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세입자 C씨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했다. 입주할 아파트를 산 A씨에겐 청천벽력이었다. 매도인 B씨는 그저 어쩌겠냐며 얼른 잔금 주고 소유권이전등기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가라고 할 뿐이었다. 이에 A씨는 잔금을 보내지 않았다. 갈등은 강 대 강으로 번졌다. B씨는 A씨에게 잔금을 안 줬으니 계약을 해제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A씨가 소송을 냈다.


“거주 안 돼? 잔금 못 줘!” VS “잔금 안 줘? 계약 깨!”


1심을 맡은 인천지방법원 강인혜 판사는 매수인 A씨 손을 들어줬다. 약속한 12월에 아파트를 인도받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A씨가 잔금을 안 준 건 채무불이행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강 판사는 “2021년 12월까지 아파트를 A씨에게 거주할 수 있는 상태로 실제 인도하는 것은 매도인인 B씨의 완전한 소유권이전의무에 포함되는 것”이며 “이런 의무 이행이 현저히 불확실한 이상 그 의무 이행제공을 받을 때까지 A씨는 잔금지급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했다.

2심은 B씨 손을 들었다. 같은 법원 민사항소 2부(부장 차승환)는 B씨로선 잔금을 받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기는 방법으로 인도할 의무만 있을 뿐 거주할 수 있는 상태로 넘겨야 하는 ‘현실 인도 의무’까진 없다고 봤다. 이에 잔금을 치르지 않은 데 따른 계약 해제는 유효하단 결론이다. 재판부는 “임대인인 B씨는 실거주 사유로 C씨를 상대로 갱신을 거절할 수 없었던 반면 매수인인 A씨는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 임대인 지위를 승계했더라면 갱신거절 기간 내에 C씨의 갱신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빈집 넘겨줄 ‘현실 인도 의무’, 있다→없다→있다


대법원 전경, 뉴스1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지난달 7일 B씨의 현실 인도 의무를 인정하고, B씨가 12월까지 의무를 이행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A씨가 4월에 잔금 지급을 거절한 건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C씨가 잔금 지급일 직전 갱신요구권을 행사해 B씨의 현실 인도의무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정변경이 생겼고, 이로 말미암아 당초의 계약 내용에 따른 A씨의 선이행의무(잔금 지급)를 이행하게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됐다”고 봤다.

대법원 공보연구관실은 “매도인의 인도 의무보다 먼저 잔금 지급 의무를 매수인이 부담하는 상황에서, 갱신요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한 임차인이 잔금 지급일 직전 갱신요구권을 행사한 경우 매수인의 잔금 지급 의무의 이행거절이 정당하다고 볼 여지가 있어 그 잔금 지급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매도인이 매매계약을 해제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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