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산 저보다 영향 크네요” 세상을 바꾼 9살, 소년 이동원

정선언 2024. 1.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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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동원 학생 어머니 이문영씨

■ hello! Parents

「 “아이가 죽어도 삶은 계속됩니다.” 그렇게 또 아이 없는 잔인한 새해를 맞지만, 엄마는 강해져야 했습니다. 세상은 내 아이를 앗아갔지만, 아홉살에서 멈춘 우리 동원이가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말입니다. 2022년 12월 2일 서울 강남 언북초 앞에서 만취 음주차량에 치여 사망한 이동원 군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40대의 엄마는 자기보다 아홉살 동원이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 대견해 합니다.

서울 강남구 언북초 앞에서 만취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이동원(당시 9세)군의 어머니 이문영씨가 학교 안에 세워진 추모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전민규 기자

“그래도, 삶은 계속되더군요. 아이가 죽어도요. 어떻게 해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살아야 했습니다.”

2022년 12월 2일 서울 강남구 언북초 앞에서 만취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이동원(당시 9세)군 어머니 이문영(43·사진)씨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참척(慘慽)의 슬픔을 안고 사는 그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켜본 그의 일상은 단단했다.

그 날은 금요일이었다. 동원이는 소파에 누워 책을 읽다가 3시쯤 방과후교실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헤어지면 다시 보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오후 5시 20분쯤 전화가 울렸다. 한 해 전 동원이에게 코딩을 가르쳐준 방과후교실 선생님이었다. “어머니, 오늘 동원이가 무슨 옷을 입고 학교에 갔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회색 패딩을 입고 간 것 같다”고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선생님은 “동원이에게 전화를 걸어보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아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울렸다. 경찰이었다.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다”며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했다. 쓰러져 있는 동원이를 본 선생님이 이씨에게 전화했고, 이씨가 아이에게 전화를 걸자 경찰이 신원을 확인한 거였다.

둘째를 챙겨서 바로 집을 나섰다. 병원으로 향하던 오후 6시 30분 무렵 “방금 아이에게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흰 천이 머리끝까지 덮인 아이에겐 ‘영현(英顯·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이르는 말) 인식표’가 달려 있었다. 헤어진 지 4시간 만에 아이는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후 남편은 출근했고, 둘째는 등교했다. 사고 한 달 뒤인 1월 2일부터 그도 새로운 직장에 나갔다. 가족도, 지인들도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는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슬퍼할 시간이나 틈을 제게 주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사고 후 학교 주변 길엔 인도가 생겼고 가드레일이 설치됐다. 전민규 기자

수시로 무너지는 그와 가족을 지탱한 건 가족이었다. ‘왜 그날 아이를 데리러 나가지 않았느냐’는 원망 섞인 푸념을 할 법도 한데,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사고 당시 가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8%였다.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의 변호사는 “낮에 술을 마셨고 2시간가량 잠을 자서 괜찮을 줄 알았다”고 했다. 가해자가 동원이와 비슷한 또래인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는 것도 재판 도중 알게 됐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는 1만5059건. 이 사고로 2만4261명이 다쳤고 214명이 죽었다. 사고 당시 길을 건너는 동원이를 SUV 차량이 덮쳤다. 멈추지 않은 가해자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주차를 하고 돌아왔다. (※검찰은 이에 대해 뺑소니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사고 현장으로 돌아와 수습했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북초 음주사고 피해자 고 이동원 학생의 어머니가 19일 오후 서울 강남 청담동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재판정에서 만난 가해자와 그 가족은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뉘우치고 있다고, 고통받고 있다고요.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음주운전이 얼마나 위험하고 엄중하게 다뤄야 할 사안인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심 형량(7년 징역)이 부당하다고 느낀 건 그래서입니다. 2년 감형된 2심 결과도 받아들이기 어렵고요.”

2심 결과가 나오고 그는 반드시 상고해야 한다고 검사에게 읍소했다. 이 판결을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고.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고. 그게 먼저 세상을 떠난 동원이가 남긴 숙제라고 그는 생각한다. 검사는 상고했다.

동원이가 떠나고 언북초 주변 길엔 인도와 차도를 분리하는 가드레일이 설치됐다. 양방 통행이던 길은 모두 일방통행이 됐다. 수년간 학교와 학부모의 요구에도 ‘(불편하다는) 주민 민원 때문에’ 안 되던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인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았던 전국 스쿨존 곳곳에 인도가 설치됐다. 아홉 살 동원이가 세상을 바꾼 셈이다.

“동원이가 친구들과 동생이 살아갈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있어요. 아이가 살았던 시간은 9년 1개월이 다지만, 40년 넘게 산 저보다 더 세상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싶어요.”

■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ello! Par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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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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