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1권인데 공동저자 162명, 전국 초등생들의 '사랑 얘기'
경남 김해우체국 사서함 4호에는 지난해 11월부터 전국에서 보낸 그림과 글 200여편이 쌓였다.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학부모가 보낸 것도 있었다. 보낸 사람은 다양하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는 같았다. 함께 그림책을 만들어 기부하자는 한 초등학교 교사 제안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작품이었다.
“함께 그림책 만들어 기부”… 초등교사 제안에 가득 찬 사서함
“당신은 어떤 말과 행동에 사랑을 받았다고 느꼈나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나요”라는 동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이 글과 그림으로 전국에서 몰려왔다. 그가 사랑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최근 문제가 된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가 계기였다. 동 교사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면 이러한 문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친구 사랑에 ‘갈치 사랑’까지… 저마다의 뭉클한 사랑 경험
지난해 12월 29일까지 사서함에는 전국의 162명이 보낸 200장의 글과 그림이 도착했다. 동 교사는 “가장 인상 깊은 것을 딱 하나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그림과 글에서 전해져 오는 저마다의 감동이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 옹달샘(필명) 양은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친구들이 집 문 앞에 놓아준 책과 간식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는 “학교에 못 나가고 있을 때 친구들이 제가 혼자 공부할 수 있도록 교과서와 간식을 가져다주었다. 친구들이 저를 정말 아껴주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4학년 1반 명패가 달린 교실 안에 선생님과 자신의 모습을 나란히 그린 초등학생 이로아 군은 “제가 사고를 쳐도 항상 용서해주시고 이해해주시고 저를 가르쳐주시고 사랑해주신 4학년 선생님, 저에게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글을 함께 적었다.
학생들이 사랑을 받았다고 느낀 경험은 저마다 다양했다.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초등학교 1학년 다문화 학생은 친구에게 안경을 건네주는 그림과 함께 서툰 글씨로 “안경을 닦아줬다”고 적었다. 초등학교 4학년 곽근우 군은 엄마가 생선 살을 발라주는 모습을 그리고 “나는 엄마께서 갈치살을 발라주실 때 사랑을 느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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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할머니도 색연필 그림 그려 참여
40대 학부모인 민경인씨는 강아지 그림과 함께 “양갱이는 우리 가족에게 절대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며 “고3 큰아이는 입시에 지쳐 힘든 몸과 마음을 양갱이를 통해서 충전할 수 있고, 중학생 둘째 아이는 이불 속을 파고들어 품 안에서 함께 자는 양갱이를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수익금 모두 기부… “올해는 더 따뜻한 사회 됐으면”
동 교사는 “모두가 함께 만든 그림과 글을 다양한 공공장소에서도 전시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다시 되돌아보게 함으로써 올해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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