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과거를 현재로… 일주일이면 전 세계 지도 새로 만든다
‘뉴욕 AI 서밋’ 5000여명 찾아 북적
시계·패션 브랜드, AI로 유행 예측
시장조사·디자인 실제 상품 출시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워싱턴DC의 한 공유오피스 건물 회의실 스크린에 1985년 캘리포니아 지도가 올라왔다. 건물과 농지, 도로 등이 정확하게 구분돼 표시돼 있었고 수로와 침수된 초목 지대까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38년 전 기술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세밀한 지도를 다시 그려낸 건 인공지능(AI)이다.
지도 제작사 ‘임팩트 옵서버토리’의 스티브 브럼비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위성 사진을 해석해 지도로 변환할 수 있도록 AI를 딥러닝시켜 고해상도 지도를 구현해냈다. 위성 사진만 있으면 지구 전역에서 과거 모습은 물론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실시간 지도가 생기는 것이다. 브럼비 CEO가 마우스 커서를 한반도로 옮기자 북한 상황이 펼쳐졌다. 숲과 도시 규모, 농지 상태 체크도 가능했다. 임팩트 옵서버토리는 세계 각국이 제공하는 공개 위성 사진은 물론 민간위성 업체 ‘플래닛 랩스’ 등과도 제휴를 맺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축적 중이다.
브럼비 CEO는 “우리 회사 직원은 20명이지만 클라우드에는 1만대의 컴퓨터가 실행되고 있다”며 “일주일이면 전 세계의 새로운 지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임팩트 옵서버토리는 창립한 지 3년밖에 안 됐지만 AI 기술을 통한 실시간 지도 제작 능력을 갖추며 단숨에 글로벌 매핑 및 모니터링 분야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4차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떠오른 오픈AI의 챗GPT 등장 이후 AI는 순식간에 산업계 전반으로 퍼졌고, 사람들의 일상으로도 깊숙이 침투했다. 챗GPT는 오류 등의 위험성 제거 보장이 안 된 상태에서 세상에 나왔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단숨에 AI 생태계를 흔들었다. 뉴욕타임스는 윤리적 문제를 고민하던 나머지 테크 기업들도 서둘러 AI의 상업적 활용을 고민하게 됐다며 “AI가 실험실에서 거실로 도약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기업들은 AI를 통한 수익 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달 6일부터 이틀간 뉴욕 맨해튼 허드슨강 인근의 자비츠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뉴욕 AI 서밋’은 선두주자들의 AI 활용을 배우려는 연구자들로 가득 찼다. 전 세계에서 5000여명이 서밋을 찾았다.
글로벌 시계 기업 파슬(fossil)의 다미앵 페르난데스-라멜라 데이터과학·분석 부문 글로벌 부사장은 “1~2년 후 유행할 제품을 미리 알아내기 위해 시장 조사를 하고 리뷰를 분석하며 데이터를 축적한 뒤 AI를 통해 수요를 예측한다”며 “수동 프로세스에서 AI를 통한 자동화된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인사이트를 얻는 시간이 2주에서 70분으로 단축됐다”고 소개했다.
파슬은 제품 디자인에도 AI를 활용한다. 생성형 AI 프로그램에 “영화 ‘블랙 팬서’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뽑아내라”고 명령한 뒤 그 결과물을 시계 디자인에 접목해 제품을 만드는 식이다. 페르난데스-라멜라 부사장은 “생성형 AI로 ‘시곗바늘이 3개 있고 2개의 서브 다이얼이 있는 시계가 필요하다’고 지시하면 다양한 아이디어와 콘셉트가 제공된다. 우리는 이 모델의 결과물을 영감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디자이너가 이런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실제 최종 디자인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패션 브랜드 플랫폼 ‘리볼브’와 파트너십을 맺은 디자이너 오페 엠도 연사로 나와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오페 엠은 생성형 AI 이미징 플랫폼인 ‘미드저니’를 활용해 만든 디자인으로 뉴욕 패션위크에서 입상했다. 리볼브를 통해 출시된 그녀의 옷은 시판 하루 만에 동났다. 오페 엠은 “패션업계는 AI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며 “AI를 활용하면 보다 혁신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맥킨지그룹은 패션업계가 생성형 AI를 활용해 3~5년 내 1500억 달러의 추가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리더들은 AI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하느냐가 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알리사 테일러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부문 부사장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AI 활용 사례”라며 “우리는 클라우드의 모든 측면에 AI를 도입하기 위해 정책 방향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0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근 1년 이내 AI 배포가 92%에 이르렀고, 관련 비용당 수익이 3.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2024년은 AI 가속의 해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배송·물류 기업 페덱스의 애덤 스미스 최고기술책임자(CTO)도 “우리는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사용해 주문에 대한 배송 견적을 개선하고, 파트너인 ‘덱스터러티 AI’(로봇 창고 자동화 업체)와 함께 배송 상자를 더 효율적으로 쌓는 방법을 설계하는 것까지 다양한 실험을 해 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기업 리더들이 지금 당장 생성형 AI 분야에서 매우 집중적인 성과를 내는 팀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현실은 진화하고 있고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수석파트너인 세시 아이어는 “생성형 AI는 기업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하고 있다. 전략적 관점에서 볼 때 소비자 요구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마케팅과 콘텐츠에 투자하는 조직은 막대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이런 영역을 조기 완성하는 기업은 다른 기업을 훨씬 앞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글·사진 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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