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는 6보다 클 수 있어… 다자녀는 부모의 짐 아닌 힘”
0.78명. 2022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이다. 한 방송사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는 이를 듣고는 “한국은 완전히 망했네요”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지난해 상반기 합계출산율은 0.76명으로 더 줄었다. 2013년 43만6000명이던 출생아 수도 2022년 24만9000명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정부가 15년간 280조원을 저출산 예산으로 투입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으로 참 행복하다”며 5남 1녀와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백현경(45)씨다. 그는 지난 26일 서울 성북구 작업실에서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1+1+1+1+1+1이 꼭 6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깨달았다”며 “자녀는 부모의 짐이 아니라 큰 힘”이라고 말했다.
백씨의 자녀는 25살 큰아들부터 7살짜리 막내아들, 대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이렇다 보니 지금은 자녀들끼리 서로 공부 과정을 조언하고 집안일을 나눠 하는 등 알아서 커가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 백씨의 설명이다. 특히 동생들과 나이 차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는 첫째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백씨는 “물론 아이를 낳고 나면 힘든 시기가 있다”면서도 “여러 자녀가 있다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만 지나도 오히려 아이들끼리 서로 돌보는 시점이 온다. 만약 자녀가 하나라면 부모가 계속 돌봐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가 다둥이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것에는 외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외할머니는 1952년부터 경남 창원에서 보육시설을 운영했다. 백씨 역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진 주로 외할머니와 함께 이 시설에서 보냈다. 많은 아이와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대가족으로서의 장점을 느꼈다. 그는 “어릴 때 매년 보육원에서 갔던 바닷가 캠핑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며 “이런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2001~2007년 스위스 유학 때 찾아왔다. 이 시기 장학금을 받으면서 유학생활을 했던 그는 한 독일인 가족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2년 정도 했다. 가족은 부모와 자녀 4명으로 이뤄진 대가족이었다.
첫째 아들만 키우고 있던 백씨에게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백씨는 “이들을 보면서 형제·자매가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럽고 좋아 보였다”며 “나이 들어 더 낳을 걸 그랬다는 후회보다 임신이 가능한 시기에 원없이 출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 시절 말인 2006년 둘째 딸을 낳았다. 학업과 양육이 부담스러울 수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 그는 “스위스에선 주변에서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 되게 많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 나가 수업을 들어야 하거나 연주 활동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지인들이 리스트를 만들어 당번제로 자녀들을 돌봐준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니 사정이 달랐다. 직업을 가진 상황에서 출산한다고 하면 부정적인 시선들이 많았다. 백씨가 넷째 아들을 가진 2010년쯤 한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에 출강할 때였다. 배가 불러오니 방과후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교사는 “출산 이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만두라는 뜻으로 느껴진 백씨는 “전혀 공백 없이 출산 이후에도 출강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교사는 출산 후 산후조리와 육아를 해야 하는데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백씨는 “지금은 그 선생님께서 선의의 입장에서 말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출산 후엔 당연히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 전제된 대화에는 많이 속상했다”며 “산후조리 기간 대체 선생님을 소개해줄 수 있느냐는 식으로 물었다면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10년 전만 해도 다둥이 엄마인 백씨를 향해 “유별나다” “어떻게 키우려고 하냐”는 등의 시각도 많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출산 때마다 대부분 1~2주만 쉬고 복귀해야 했다.
아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가게를 뜻하는 노키즈존도 백씨에겐 이해할 수 없는 문화였다. 백씨는 “아이들이 울거나 하면 같이 달래주거나 해야 하는데 한국은 기본적으로 따가운 시선으로 본다”며 “아이들과 엄마에 대해 사회적 분위기가 밝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백씨는 한국의 저출산 대책에 대해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아이돌봄 지원 사업(아이돌보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는 부모의 맞벌이 등으로 양육 공백이 발생한 가정의 만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아이돌보미가 찾아가 부모의 양육 부담을 낮춰주는 제도다. 그는 “공연을 진행하게 되면 아이돌보미 선생님께서 공연장 근처에서 아이를 맡아주는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이외에도 농산물 꾸러미나 도서 구매 바우처 등 단순히 마련된 제도만 따지면 유럽과 비교해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받기 위한 재산이나 자녀 수 등 기준은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아이돌봄 지원사업부터 중위소득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달라진다. 다자녀 기준 역시 2023년부터 3명에서 2명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백씨는 “사실 저희는 다자녀 가정이라 상대적으로 정부로부터 받는 것이 많기도 하다”면서 “저출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다자녀뿐 아니라 출산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를 낳을지 고민하는 예비 부부·부모에게 “사회적으로 저출산이 문제되고 있다고 해서 개개인이 굳이 희생이라고 생각하면서까지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라면서도 “다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들이 정서적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을 느끼면서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라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김이현 기자 2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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