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혼 1위, 출산·행복 꼴찌, 이게 사람 사는 나라 맞나?”

김남중 2024. 1. 1.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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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인터뷰] 조정래 작가
조정래 작가는 자살률·이혼율·노인빈곤율 세계 1위, 출산율·국민행복도 세계 꼴찌인 한국의 현실을 두고 ‘정치의 실패’라고 단언했다. 특정 정당이 아닌 정치 기득권인 86세대 전체를 향한 비판이다. 조 작가는 “뭉쳐서 사회를 바꿔야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퇴출 대상이 됐다”고 꼬집었다. 성남=권현구 기자


“이게 사람 사는 나라가 맞느냐?” 조정래 작가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헤집으며 매섭게 꾸짖었다.

자살률·이혼율·노인빈곤율 세계 1위, 출산율·국민행복도 세계 꼴찌, 이 다섯 개 수치를 하나하나 언급한 뒤 “이게 한 나라의 현실이라면, 그 나라가 사람 사는 나라가 맞느냐”고, “이래 가지고 선진국이 되면 뭐하냐”고 비판했다.

그는 “이 다섯 개 수치는 한국 정치가 실패했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규정했다. “이 실패의 절대적 책임은 정치에 있다. 정치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기득권 집단만 잘 사는 정치를 했다”는 것이다.

조 작가는 지난 2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자택 인근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국민은 선진국 만드느라 쎄빠지게 일만 했다. 그들의 땀으로 이 나라를 만들었다. 그런 나라를 맡아서 정치하는 놈들이 지금 이 모양 이 꼴을 만들었다. 국민들이 너무 불쌍하다”면서 “이런 현실을 고치려면 무엇보다 정치가 제대로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해에 정치 담당자들이 이 다섯 가지 수치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해결해 나갈 계획을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래 작가가 지난 27일 경기도 성남 분당의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남=권현구 기자


조 작가의 비판은 특정 정파를 겨냥하지 않는다. 현재 정치 기득권을 대표하는 86세대 전반을 향한 것이다. 그는 “영화 ‘서울의 봄’을 감동적으로 봤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과 싸우고 군부독재 30년을 종식한 86세대의 업적은 역사에 혁혁하게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그다음부터가 문제다. 개혁정신, 순결함, 희생적 투쟁, 이런 것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데, 그게 국민의 요구이고 시대정신인데, 자기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뭉쳐서 사회를 바꿔나가야 했는데, 두 기득권 정당에 들어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다 흩어져 버렸다. 그때부터 86세대 정신은 파괴된 것이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러 버렸다. 그래서 지금 퇴출 대상이 된 것이다.”

그는 86세대에 대해 “그들은 훌륭하다, 그러나 결실이 없다, 그게 불행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민족 자멸의 시대가 시작됐다’면서 거론한 출산율 등 다섯 가지 통계 수치에 요약된 한국 사회의 실패에 대해서도 사회의 허리 역할을 맡아 온 86세대의 책임이 작다고 말할 수 없다. 그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을 만들었다’며 질타한 ‘정치하는 놈들’ 중에도 86세대가 포함된다.

그는 최근 제기되는 86세대 퇴진론에 대해 “나이를 먹었으니까 물러나라는 의미 외에 한 일이 없으니 물러나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면서 “86세대 정치인들은 그동안 왜 정치적 성과를 남기지 못했는지 철저히 고백하는 반성문을 쓰고 정치 인생을 정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국민이 원한 건 이런 나라가 아니었다”며 “정치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정치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양당 체제가 한계에 달했다”며 “다당제가 돼야 한다”고 답했다.

“두 당만 있으니까 자기들 맘대로 정치를 한다. 타협도 없고. 다당제가 돼야 한다. 유럽처럼 다당제 해서 민주주의의 꽃이 타협이라는 걸 알게 해야 한다. 당이 다섯 개쯤 되면 좋겠다. 그래서 서로 견제하고 연합도 하고 분산도 하고. 그래야 머리 맞대는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는 또 “이런 현실을 방임한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면서 “정치를 믿지 말고 국민이 뭉쳐야 한다”고 했다. “탄탄한 시민단체가 100개쯤 있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조 작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새 장편소설 ‘황금종이’는 출간과 동시에 소설 부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달 만에 14만부가 팔려나갔다. 그는 “영토가 없는 왕은 왕이 아니고, 독자가 없는 작가는 작가일 수 없다”면서 “독자들이 선택해 준 것에 대해 거듭거듭 감사하는 것으로 기쁨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두 권으로 구성된 ‘황금종이’는 돈에 미친 세태를 그려낸다. 조정래는 나이 팔십에 돈을 주제로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돈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였다”며 “혹시 이 소설이 내 마지막 소설이 된다고 해도 아쉬울 게 없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번 소설에서 탐욕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한다. “동물 중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다. 인간은 영혼의 작동에 의해 깊은 문명을 이뤘다. 반면에 동물 중 인간에게만 탐욕이 있다. 인간만 먹을 걸 축적한다. 그게 탐욕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가 탐욕이 인간을 망친다고 했는데, 인간은 탐욕을 버리지 못한다. 인간의 본능 중 가장 제어할 수 없는 게 탐욕, 욕심이다. 거기서 인간의 비극이 나오고, 사회적 문제 대부분이 돈 때문에 일어난다.”

그는 “탐욕을 어떻게 제어할까, 탐욕에서 어떻게 벗어날까, 그게 내가 이번 소설에서 얘기해 보려고 한 것”이라며 “새로운 건 없다. 자족, 스스로 만족하는 가치관을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 모든 종교가 말하는 그 얘기를 나도 또 하는 것이다. 진리라고 하는 건 변하지 않는 것이고, 다시 상기해야 되는 것이다. 돈의 주인이 되려면 자기 욕심을 줄일 수밖에 없다. 삶에 만족을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은 돈에 관련된 세상사의 온갖 지저분하고 참혹한 장면들을 펼치면서 인권 변호사 이태하와 귀향해서 농사를 짓는 한지섭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탐욕을 넘어선 삶의 모델을 제시한다. 조 작가는 “두 인물은 기득권에 편승해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한 사람은 국회의원 자리를 버리고 농사를 짓고, 한 사람은 재벌개혁운동을 하다가 제거당해 변호사가 된다. 둘 다 학생운동권 출신인데,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계속 가져간다”면서 “탐욕이나 기회주의에 빠지지 않고 첫마음, 항심을 지켜가는 게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삶의 방법이 그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지식인이라면 이태하나 한지섭처럼 살아야 한다”면서 “지금 이 세상이 엉망이 된 데에는 지식인들에게 99% 책임이 있는 게 아니냐”고 했다. 자신을 가장 사랑해 준 독자들인 86세대를 향해서도 탐욕과 기회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 작가는 한국에서 가장 책을 많이 판 작가로 꼽힌다. 30여년 전에 쓴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누적 판매량이 1000만부에 육박한다. ‘태백산맥’ 이후에도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등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는 “오늘 오전에도 출판사에서 와서 ‘태백산맥’에 붙일 작가 인지를 받아 갔다. 오래전에 쓴 책들이 여전히 팔리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분단이 됐기 때문에 역사의 진실이 왜곡되고 암장되기도 했다. 역사의 진실 같은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내 책을 찾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작가가 책의 미래, 문학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조 작가는 “책을 안 읽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스마트폰이 인간의 대화를 단절하고 책 읽는 시간을 뺏어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는 독서를 위한 토양이 잘 갖춰진 시대”라며 “사람들이 책을 살 경제력이 있고, 지식도 갖추고 있다. 다만 지식으로 무장한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된 게 사실이다. 독자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걸 제공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는 젊은 작가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절망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독자들이 외면한다고 한탄하지 말고 더 치열하게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읽힌다. 국어를 못 쓰게 하고 문맹률이 80%에 달했던 일제강점기에도 작가들은 글을 썼다. 염상섭, 채만식이 다 그런 작가들이었다.”

‘정진’은 조 작가의 생애를 설명하는 단어다. 그는 40세 이전에 술과 담배를 다 끊었다. 그렇게 40년을 창작에 매달렸고 지금도 서재에서 하루를 보낸다. 낮에는 원고를 쓰고, 저녁에는 써놓은 원고나 책을 읽는다고 한다. 작가로서 명성이 높았지만 평생 어떤 자리도 맡지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 문단·예술 단체들이 수없이 자리를 제안했지만 모두 거부하며 작가 외 다른 직함을 갖지 않았다. 부인 김초혜 시인은 그를 “무미무취로는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작가”라고 얘기한다고 한다. 70세까지 등산을 즐겼을 뿐 다른 취미는 없다. 한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현역 작가 중 한 명인 조 작가는 2024년에도 매일 집 근처를 산책하고, 서재에 들어가서, 손으로, 쓸 뿐이다.

성남=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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