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지금 다시 DJ를 만난다

2024. 1. 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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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숙 전 국회의원
北인민군에, 南군사정권에
죽을 고비 수차례 넘기고도
북한에 화해·협력 제안하고
정적에 용서·화해 손내민 DJ

고난의 역정 속에 다듬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정보·문화강국과 복지국가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재임 중 쓴 DJ 국정노트 27권
대통령도, 되려는 이들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만인에게 칭찬받는 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요.”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비난받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100년 전 전남 신안 하의도에서 태어난 섬 소년. 그는 다섯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구속과 연금 등 고난에 찬 일생을 살았다. 2009년 초 그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일기에 적었다. 하지만 그가 생략한 말은 ‘참으로 고단한 인생이었지만’이 아니었을까.

김대중(DJ·1924~2009)은 “선거에서 제일 많이 떨어져 본 사람이 나요”라고 이야기할 만큼 승리와 거리가 먼 정치 역정을 걸었다. 그에게는 평생 빨갱이니 대통령병 환자 같은 조롱과 모욕, 흑색선전이 따라다녔다. 한데 되짚어 보면 그 스스로 그런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만인에게 칭찬받지 못하더라도 갈 길을 가겠다는 결심이 그에겐 있었다.

첫 번째 죽을 고비를 넘긴 것은 6·25전쟁 중 북한군 포로가 되었을 때였다. 차례로 끌려 나가 총살당하던 상황에서 그는 인민군의 급작스러운 퇴각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살아남은 그에겐 인민군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동족상잔의 비극과 분단을 어떻게 넘을 것인지가 숙제였다. 1970년 대통령 출마 회견에서 남북 화해교류와 미·일·중·소 4개국의 안전보장 등을 주창한 이유다. 빨갱이라는 이념 공세가 본격화된 건 그때부터다. 그 공약이 박정희의 7·4 남북 공동선언으로 차용됐음에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그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전두환 노태우를 용서하자고 이야기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이라는 단서가 있었지만. 용서와 화해는 그가 평생 짊어져온 역사의 숙제에 대한 답이었다.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2월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행사에서 그의 신앙과 용서에 관해 로마서 12장 19절을 인용해 설명했다.

동족상잔의 잔혹한 역사를 넘어서기 위한 남북 화해협력, 군사독재의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은 DJ에게 필생의 숙제였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남북의 대치는 여전하고 전두환은 끝내 사죄도 사과도 없이 생을 마감했다. 역사의 숙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뿐인가. 적대와 증오 속에 편을 갈라 사생결단하는 작금의 정치는 복수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누구나 DJ를 얘기하지만, 정작 그의 정신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군사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 중이던 1981년 중앙정보부 조사실에서 찍힌 영상이 최근 공개됐다. 그는 수사관에게 힘주어 말한다. 머지않아 정보화 시대가 온다고. 우리는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엔 앞설 수 있다고. 대법원의 사형 확정판결을 앞두고도, 나라의 미래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그에겐 꿈과 비전이 있었다.

정치인은 늘 공부해야 한다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답을 찾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정보통신강국과 문화강국, 생산적 복지, 누구나 아프면 병원 갈 수 있는 시대, 우체통 거리마다 보육시설이 있는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 등등. 1971년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래 수십년간 다듬어온 구상이었다.

네 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좀 더 일찍 당선되었더라면”이라고 탄식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하나회를 해체함으로써 비로소 큰 고개를 넘을 수 있었으니. ‘DJ가 당선되면 군인들이 총 들고 나온다’는 흑색선전은 대선 때마다 반복됐다. 헌정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덧 여야 간 정권교체가 당연한 시대가 됐다. 그는 종종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고 말했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고 오늘은 다수라도 내일은 소수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DJ의 꿈을 담은 다큐멘터리 ‘길 위에 김대중’이 곧 개봉된다. 1987년까지 그가 겪은 고초와 불굴의 용기에 관해 생전의 육성과 자료로 복원했다. 그의 100년 기념행사도 1월 6일 열린다. 김대중도서관에는 재임 중 쓴 국정 노트 27권이 보관돼 있다. 거기엔 수십년의 꿈을 어떻게 정책과 제도로 만들어갔는지 고심과 체취가 들어있다. 대통령에게도,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박선숙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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