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소멸 ‘적색등’… 교회, 1020 환대·연합사역으로 뚫는다

이현성,양민경 2024. 1.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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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사회 홀리 브리지] <1부> 다시 쓰는 교회의 길
<1> 괴산·의성, 인구소멸지역을 가다
지방 소멸을 넘어 ‘국가 소멸’을 우려하는 시대다. 통계청은 지난달 14일 장래인구추이를 발표하며 저출산 추이가 계속 이어진다면 10년 뒤엔 인구 5000만명 선이 무너진다고 예측했다. 앞서 지난달 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인구 감소는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에 몰고 온 인구 감소를 능가한다”고 평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소멸 현상은 지방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23년 2월 현재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228개 가운데 절반 이상인 51.8%를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아이 울음소리뿐 아니라 일자리와 학교, 병원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교회는 여전히 지방을 지키고 있다. 소멸이 ‘정해진 미래’처럼 보이는 지방 현실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국민일보는 ‘다시 쓰는 교회의 길’로 지방 교회가 당면한 인구 소멸 현실과 그 가운데서 발견한 희망을 추적한다. 축소사회로 접어든 지방의 현실과 소망, 교회의 역할을 10회에 걸쳐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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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지역 살아내며 다음세대 살리기

괴산은 충북 지역 가운데 지방소멸위험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괴산군청에 따르면 지난 11월 기준 이 지역 전체 인구 3만6545명 가운데 10~20대는 약 10%(3934명)에 불과하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1만4446명에 달했다.

저출산·고령화 여파는 지역사회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읍내에서 차로 3분만 나가면 신호등은커녕 가로등도 잘 보이지 않는다. 거리엔 승용차보다 농기계가 더 자주 눈에 띈다. 문 닫은 학교 부지엔 녹슨 동상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종남 추산교회 목사가 지난 22일 충북 괴산의 교회에서 권사들과 ‘손 하트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다.


괴산 추산교회(이종남 목사)는 귀농·귀촌 지역민과 다음세대를 품으며 지방 소멸 문제에 저항하고 있다. “시골 교회는 현상 유지만 돼도 부흥이란 말이 있어요. 인근 학교가 폐교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2021년엔 성도 수가 반 토막 났습니다. 지금은 거의 회복됐지만요.”(웃음)

현재 청소년 30여명을 포함해 성도 110명과 예배하고 있는 이종남(47) 목사의 말이다. 현재 추산교회엔 괴산군 불정면 주민을 비롯해 경기도 하남, 충북 충주 시민이 출석하고 있다.

성도 수 회복을 위해 교회가 별도의 프로그램을 궁리한 건 아니다. 대신 일상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편을 택했다. 복숭아 농장에 일손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접하면 성도들은 집에 있는 농기계를 하나씩 챙겨 대가 없이 일했다. 팬데믹이 극심했을 땐 읍내에서 약을 구해 배달하고 마스크도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

이 목사는 “이웃을 섬길 때 주보 등 전도지는 절대 건네지 않았다”며 “오랜 기간 관계를 다지면서 먼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린 뒤 복음을 전했다”고 했다.

청소년이 희소한 환경에서도 교회는 다음세대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토요일이 되면 교회 승합차 두 대가 분주해진다. 교회 앞을 지나는 버스가 하루 3회에 불과한 만큼 두 전도사는 왕복 2시간씩 승합차를 몰며 학생과 청년을 교회로 모은다.

토요 모임에도 정해진 형식은 없다. 예배 후 교역자와 학생이 함께 어울릴 뿐이다. 학생들이 치킨이나 피자를 먹고 싶다고 하면 읍내로 나가 먹거리를 포장해오고 축구 시합을 원하면 운동장에서 같이 뛴다. 이 목사 역시 모든 활동에 동참한다.

소멸 위험 지역인 이곳에서 이 목사는 다음세대에 희망을 걸었다. 개개인의 회심만이 위기를 돌파할 방안이라 판단하고 ‘살아나는 교회, 살려내는 교회’를 영구 표어로 정했다. 그는 “불정면에 예수 안 믿는 사람이 2300명, 괴산군엔 3만2000명이 있다”며 “다음세대가 없다고들 하는데 읍내에만 가봐도 아이들이 절대 적지 않다. 나가보면 전도할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최근 3년간 수도권 교회 3곳에서 담임목사 청빙을 제안받았다. 하지만 “지역 내 학생들 생각에 남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누린 다음세대는 방황하더라도 언젠간 예수님을 찾는다”며 “교회의 역할은 기다림과 환대”라고 조언했다.

교회는 올해부터 영아부 예배를 재개할 예정이다. 이 목사는 “15년 전 부임했을 당시 처음 만났던 다음세대 학생들이 올해 자녀를 낳았다”며 반색했다.

품앗이 사역으로 축소사회 견딘다

지난 28일 경북 의성 화전1리회관 경로당에서 ‘찾아가는 청춘행복학교’를 진행하는 경북 믿음의교회·점곡교회·구세군노매실교회·구세군문경영문교회 목회자들 모습.

“누님들이 한창 반짝반짝하던 스무 살 시절에 부른 노래를 연주하겠습니다. 그때 생각하면서 같이 불러봅시다.”

지난 28일 경북 의성 화전1리회관 경로당. 이영락(65) 믿음의교회 목사가 색소폰을 들고 어르신 20여명 앞에 나섰다. 이 목사가 ‘섬마을 선생님’ ‘찔레꽃’ ‘흙에 살리라’ 등 어르신 세대의 애환이 담긴 곡을 연주하자 자연스레 박수가 터져나왔다.

색소폰 공연과 레크리에이션으로 구성된 행사는 채미숙(49) 구세군노매실교회 사관의 축복기도로 마무리됐다. 어르신 건강과 후손의 평안을 기원하는 진심 어린 기도에 일부에선 눈물을 보였다.

이날 행사는 의성·문경 지역 4개 교회가 연합해 개최한 ‘찾아가는 청춘행복학교’다. 믿음의교회 점곡교회(서영희 목사) 구세군노매실교회(김효영 사관) 구세군문경영문교회(인근열 사관)가 돌아가며 매주 1회씩 주관하는 행사로 각 교회 인근 경로당 8곳에서 열린다.

서영희(56) 점곡교회 목사는 “시골에선 개 교회 홀로 사역해 살아남기 힘든 게 현실”이라며 “네 교회가 ‘품앗이 사역’으로 경로당을 섬기며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게 돼 보람차다”고 말했다.

이들 교회가 있는 의성군은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4월 분류한 ‘소멸 고위험 지역’이다. 소멸 고위험 지역 51곳 가운데 의성은 경북 군위군 다음으로 전국에서 소멸 위험이 가장 큰 지역이다.

의성에서 29년간 사역한 이 목사는 “요즘엔 포장도로를 걸으며 산책해도 1시간 동안 사람 한 명을 본 적이 없다”며 “이 지역에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을까 봐 가끔은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서 목사도 “우리 마을은 60~70대도 젊은 편이다. 고령의 주민들이 사망하고 빈집이 늘어난 데다 마트 문도 오후 5~6시면 닫으니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고 전했다.

‘상황이 어렵다고 그저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교단도 지역도 다른 이들 교회가 뭉친 단 하나의 이유다. 한국도농선교회(본부장 최원수) 소개로 인연을 맺은 이들 교회는 지난해 지역사회 어르신을 대상으로 ‘청춘행복학교’를 시작했다(국민일보 2023년 9월 4일자 37면 참조).

처음엔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던 어르신들도 이들이 꾸준히 찾아와 칼갈이 봉사와 각종 기계 수리를 돕자 점차 마음을 열었다. 채 사관은 “지금은 교회에서 청춘행복학교를 열면 어르신들이 예배당이 미어터질 정도로 오신다”며 “우리 사역이 어르신 영혼 구원을 위한 통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한 건 “자포자기만 하지 않으면 길이 있다”는 것이다. 인근열 사관은 “도시보다 여건이 안 좋은 건 사실이나 시골교회라도 자기 몫을 감당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우리와 같은 연합 사역이 시골교회에 대안이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축소사회 속 교회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으로는 ‘준비하는 자세’를 꼽았다. 이 목사는 “교회사를 보면 침체기와 부흥기가 번갈아 오는 ‘영적 주기’가 있다. 지금은 영적 침체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영적 침체기 후엔 1907년 평양 대부흥 같은 부흥의 날이 분명 오리라 믿는다. 겨울에 할 일이 없다고 하지 말고 부지런한 농부의 자세로 지금부터 준비하자”고 말했다.

이현성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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