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과 미 대선 겨냥한 북한의 '도발 꿍꿍이'[장세정의 시선]

장세정 2024. 1. 1.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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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2024년 초 남조선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발하면 즉각 보복 대응하고 나중에 보고하기 바란다.” (윤석열 대통령)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전후해 측근들에게 한국의 4월 총선을 앞두고 모종의 도발을 지시했다.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며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단호한 응징을 주문해온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꿍꿍이가 엿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월 2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공업 발전 방안과 2024년도 예산안을 논의했다고 조선중앙TV가 29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표정이 어둡다. [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김 위원장의 공격적 야심과 윤 대통령의 강한 응징 의지가 '치킨게임'처럼 정면충돌하는 모양새가 위태롭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북한이 노골적으로 총선 개입 의지를 표명한 만큼 민주당도 더 이상 경솔한 말과 행동으로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김정은, '남한 큰 파장 방안' 지시"
하마스 같은 기습 공격 등 우려
선거 개입하려는 의도 분쇄해야

북한의 도발 야욕이야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그보다 국정원의 민감한 첩보가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이 왜 내년 초를 도발 기회로 노리는지 주목해야 한다. 4·10 한국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큰 장이 설 때 판을 흔들어 최대한의 이익을 챙기려는 속셈 아닐까.
국정원 1차장을 역임한 한기범 북한연구소 석좌 연구위원은 "2025년 10월 노동당 창건 80주년과 2026년 1월로 예상되는 9차 당 대회를 앞둔 북한은 2024~2025년에 지난 2017년과 유사한 군사도발주의 노선에 따른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있는 오는 3월과 8월 사이에 도발을 집중하고, 가을쯤에는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도움이 될만한 신호를 보낼 것 같다고 전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말연시를 맞아 12월 28일 경기도 연천군 중부 전선 육군 제5보병사단 열쇠전망대를 찾아가 국군 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윤 대통령은 '선조치 후보고'를 지시했다.[사진=대통령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난 31일 끝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하겠다"면서 2024년에 정찰위성 3기를 추가로 쏘겠다고 공언했다. 앞서 2016년 북한은 총선을 앞두고 4차 핵실험, 무인기 침투, 대포동 미사일 발사, 전자기파로 인천공항 GPS 교란 등 도발을 잇달아 감행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그해 3월엔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네 번이나 쐈다.
북한은 이미 천안함·연평도·목함지뢰 도발을 지휘한 '대남 도발 3인방'(김영철·리영길·박정천)을 각각 통일전선부·총참모부·당군사위에 포진시킨 상태다. 그렇다면 북한은 올해 정찰위성 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의 도발을 획책할까. 2010년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백령도 근해에서 벌인 천안함 폭침형 도발일까, 2015년 비무장지대(DMZ)에서 일으킨 목함지뢰형 도발일까, 아니면 은밀한 사이버 도발일까. 7차 핵실험 카드도 거론되는 가운데 전혀 경험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동원할까.
4성 장군 출신의 두 예비역 육군 대장의 경험과 직관을 들어봤다. 이홍기(육사 33기) 전 3군사령관은 "북한은 핵 능력 고도화 방향에 맞으면서 한·미·일에 영향을 주는 행동을 계속해 나갈 것 같다"고 관측했다. 정찰위성 추가 발사는 상수이고, 핵 추진 잠수함 개발 가속화, 7차 핵실험 등을 전략적 도발 유형으로 거론했다.

2018년 9월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북한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9.19 군사합의)에 서명한 뒤 교환하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뒤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북한은 최근 9.19합의를 전면 폐기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이 전 사령관은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전면 폐기한 이후 DMZ에 전투력을 계속 투입 중이어서 NLL보다 DMZ에서 국지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특히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처럼 개성공단 입주 업체의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하거나 무인기를 통한 기습 침투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북한의 도발 양상별로 대응하기 위해 전방 부대별로 마련한 실병기동훈련(FTX)이 문재인 정부 시절 크게 위축됐는데 북한의 도발 우려가 큰 만큼 신속 대응이 가능하도록 서둘러 대비태세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천안함 폭침 당시 합동조사단장을 역임한 박정이(육사 32기) 전 1군사령관은 "김정일 시대에 신설된 수많은 사이버 부대에 의한 사이버 공격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하철과 KTX 등 교통망, 전력망과 원자력 시스템, 금융과 통신망도 공격할 수 있다"며 "서둘러 '사이버 기본법'을 제정하고 미국처럼 사이버사령부가 민·관을 통합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4월 총선과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만큼이나 새해에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불안하게 전개될 공산이 크다. 그래도 여야가 정치적 이해득실을 넘어 국민 생명과 국가 안보를 위해 한목소리를 낸다면 북한은 감히 도발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초인 선거에 개입하려는 북한의 불순한 의도와 공격은 반드시 분쇄하고 응징해야 한다.

2018년 6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할 때의 모습. 북한은 거래가 가능한 트럼프의 재선을 원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AFP=연합뉴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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