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시간과 창조
고대사회에서는 경작을 시작하는 봄, 즉 3월이 새해였다.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를 새해로 본 것이다. 그러다가 고대 로마의 두 번째 왕인 누마가 기원전 8세기 말에 시작을 상징하는 야누스신의 이름을 본떠 부른 1월로 새해가 변경된다. BC 46년에는 천문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양력 역법인 율리우스력이 처음으로 채택됐고, 365일의 기간(4년마다 한 번씩은 366일) 동안 매년 돌아오는 1월 1일이 새해로 선정됐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율리우스력을 살짝 개정해 좀 더 정확하게 천체 움직임을 따르는 그레고리력을 만들었다. 이 역법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회귀년을 이용해 1년 평균 길이가 정수로 떨어지지 않는 점을 보완하는 양력 시스템이 2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변치 않고 성공적으로 적용됐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특히 율리우스력 이전의 복잡하고 다양하게 공존하는 달력 시스템들을 돌이켜보면 율리우스력의 성공은 경이롭다. 농경·정치·종교·사회 등 다양한 용도에 따라 다른 음·양력 달력을 채택한 고대 그리스의 경우를 살펴보면, 시간을 체계화하는 과정은 결코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계몽주의의 후손으로 과학적 시각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가치평가가 없는 물리적인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인류의 정치적 역사는 시간 정복의 역사다. 달력을 개정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정복된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이용해 거대한 해시계를 로마 도시 한복판에 만든 그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는 시간 자체를 정치적으로 종속시켜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획일적으로 빚어갔다. 『노자도덕경』에도 “돌아오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는 말이 있다. 돌아옴은 결코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돌아옴 속에서 새로운 창조를 한다. 시간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체적으로 시간을 창조해 나가는 역사가 새해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김승중 고고학자 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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