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새해 협박 “핵무력 동원해 남한 전 영토 평정”

정영교, 이유정, 정진우, 이근평 2024. 1. 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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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30일 평양에서 열린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5일 차 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언급하며 “(남한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는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강조했다며 조선중앙통신이 3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동족’이 아니라 ‘전쟁 중인 적대적 국가’로 재정의하며 대남 정책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선언했다. 또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그간 대남 핵 공격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김정은이 직접 ‘영토 완정(完整)’ 의지를 피력한 건 처음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해 12월 26~3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이 내놓은 지시·주문 사항을 정리해 31일 보도했다.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교전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미국을 “군부 깡패”로 비하하는가 하면,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이후 공조 제도화에 나선 한·미·일 협력 체제를 “반공화국 공모 결탁”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정은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 통일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대남 기조 전환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한국)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강조했다. 직전 문재인 정부를 비롯해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이뤘던 남북관계 개선 성과나 통일 지향 정책 등 선대의 업적까지도 깎아내린 것이다. 김정은은 통일전선부 등 대남사업 기구들을 정리·개편하라며 조직 정비까지 지시해 이런 기조 전환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했다.

김정은의 ‘핵무력을 동원한 남조선 전 영토 평정 준비’ 지시는 윤석열 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며 북한의 위성 발사에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 등 원칙적·비례적 대응을 하는 데 대한 노골적 불만 표시로 볼 수 있다. 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강경한 기존 대미·대남 원칙도 재차 확인했다. 관련 부문에 “강대강, 정면승부의 대미·대적투쟁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고 고압적이고 공세적인 초강경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까지는 현 기조를 유지한 채 핵 능력 강화에 몰두하며, 미국의 대선 결과를 보고 ‘핵 담판’에 나설 전략적 타이밍을 노리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 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부터). [연합뉴스]

특히 김정은은 최근 이뤄진 확장 억제 조치들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미 핵협의그룹(NCG) 창설, 한·미·일 3자 훈련 정례화, 미 전략자산인 전략핵잠수함(SSBN)과 전략폭격기(B-52H 및 B-1B)의 한반도 전개 등을 거론하며 “자멸적 시도” “불순한 침략전쟁 기도의 발로” 등으로 비난했다. 또 “미국과 남조선 것들이 만약 끝끝내 우리와의 군사적 대결을 기도하려 든다면 우리의 핵전쟁 억제력은 주저 없이 중대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핵 전면전 불사’로 위협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이 한·미·일의 억제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을 내놓은 것은 국제사회의 대북 억제력이 사실상 작동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새해 주력해야 할 군사 과업으로 핵 무력 증강, 해군 전력 향상, 정찰위성 추가 발사 등을 꼽았다. 김정은은 현재 정세와 관련해 “압도적인 전쟁 대응능력과 철저하고도 완전한 군사적 준비태세를 완벽하게 갖추기 위한 사업에 계속 박차를 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중앙통신은 “핵무기 생산을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는 믿음직한 토대를 구축해 나가며, 2024년도 핵무기 생산계획 수행을 위한 힘 있는 투쟁을 전개해 나갈 데 대해 강조됐다”고 밝혔다. 미사일 등 핵무기 투발 수단의 기술력 확보를 지속해 나가면서 핵탄두 보유량도 본격적으로 증가시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이 “선박공업 부문에서 제2차 함선공업혁명을 일으켜 해군의 수중 및 수상 전력을 제고할 것”이라고 밝힌 대목도 주목된다. 지난 9월 6일 북한이 처음 공개한 전술핵 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의 실전성 확보가 내년 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미다. 통신은 또 “우주개발 부문에서 2023년에 첫 정찰위성을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경험에 기초해 2024년 3개의 정찰위성을 추가로 쏴올릴 데 대한 과업이 천명됐다”고 했다.

한편 북한의 군부 1인자였다가 지난해 말 해임됐던 박정천 군정지도부장이 약 1년 만에 군부 핵심 실세 자리를 되찾았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박정천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직위에 다시 오르는 동시에 당 중앙위 정치국 위원과 중앙위 비서로 복귀했다.

국방부는 “이번 북한의 발표는 권력 세습과 체제 유지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세습 독재국가의 속성을 일관되게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우리에 대한 핵 사용을 기도한다면 한·미 동맹의 확장억제력과 3축 체계를 활용해 압도적으로 응징하겠다”며 “김정은 정권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영교·이유정·정진우·이근평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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