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척 뒤엉킨 한밤 해전…물 한 방울 없이 찍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감독 김한민)가 개봉 11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명량’(2014, 1761만 관객) ‘한산: 용의 출현’(2022, 726만 관객)을 잇는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지난달 31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날까지 ‘노량’은 누적 관객 308만8000명을 동원하며 흥행 정상에 올랐다.
‘명량’에서 배우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6년째인 1597년 단 12척 배로 330척 왜군 선박을 상대하며 울돌목 회오리 물살에 왜군을 수몰시킨 극적 전략을 펼쳤다면, ‘한산’은 왜란 초반인 1592년 지략가 이순신 장군(박해일)의 학익진 전술을 치밀하게 되짚었다. ‘노량’은 왜란 7년째 어머니·아들 면(여진구)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조선·명나라 연합수군 200여척으로 500여척 왜선에 맞선 이순신 장군(김윤석)의 마지막을 그렸다.
한국영화 해전 액션 구현 기술을 끌어올린 건 분명한 성과다. ‘노량’은 한국영화 최초로 100분에 달하는 해전 장면을 대부분 야간장면으로 구현했다. 김 감독이 3부작의 제작·각본·연출을 겸한 세월이 실제 임진왜란 기간(7년)보다 긴 10년 이상이다. “‘노량’의 모든 해전 장면은 ‘명량’ 때 구현할 수 없었다”며 진일보한 기술을 자랑한 그를 두고, 김주경 총괄 프로듀서는 “김 감독의 무모함이 3부작을 이끈 원동력”이라 꼽았다.
지난해 연이어 촬영한 ‘한산’ ‘노량’과 ‘명량’의 가장 큰 차이는 “물 없이 바다를 구현한 것”(김한민 감독)이다. ‘명량’ 땐 실제 바다에 배를 띄웠다. 바다 촬영용 배 4척, 지상 오픈 세트용 4척까지 총 8척을 제작했다. 지상에서 선박 세트를 움직이는 ‘짐벌’ 기기 외에도 소품용·촬영용 배를 각각 운전할 선장·선원 등이 동원됐다. 현장에서 ‘물’이 사라진 건 ‘한산’부터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사용된 강릉 아이스링크에서 모든 해전장면을 찍게 됐다. ‘한산’ 때 판옥선 1척, 안택선 1척, 세키부네(왜선) 2척 등 총 4척을 동원했고, ‘노량’에선 명나라 수군 배 1척을 더 만들었다.
김태성 촬영감독은 “컴퓨터그래픽(CG)과 무선 촬영 장비 기술 발전”에 공을 돌렸다. CG로 더 정교한 물 표현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촬영 전 장면을 시뮬레이션해보는 ‘프리 비주얼’(사전 시각화) 작업으로 후반 작업까지 고려한 효율적인 현장 운영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돼서다.
국내 25개 VFX(특수시각효과) 업체 800여명의 스태프가 동원됐다. 정철민·정성진 VFX 슈퍼바이저는 “해전 분량만 보면 ‘명량’ 대비 ‘한산’ ‘노량’은 5배 이상의 VFX 기술이 사용됐다”면서 “바다에서 실제 촬영하기 어려운 해전 장면을 연구했다”고 했다. ‘노량’에서 거북선이 왜선 벽면을 찢듯이 충돌하고, 포탄에 의해 갑판 조각이 튀고, 돛대가 넘어지는 장면 등이 대다수 실사촬영 후 후반 그래픽 작업으로 탄생했다.
전체를 CG로 그린 장면도 적지 않다. ‘워터 시뮬레이션’ ‘디지털 휴먼’ 등 IT 신기술을 적극 사용했다. ‘한산’이 빠른 해상 액션을 그렸다면, ‘노량’은 칠흑같은 밤부터 동틀녘까지 이어지는 처절한 대규모 전투를 묘사했다. 후반 작업을 통해 ‘원신 원컷’으로 표현한 마지막 난전은 ‘명량’의 치열한 백병전과 닮은 꼴이다. 최다 선박세트와 최대규모 인력이 동원됐다.
조선·왜·명나라 3개국 수군의 고증도 중시했다. 특수효과를 맡은 도광일 디엔디라인 부대표는 “안정적이지 못한 왜선은 선수가 좁아 화포 사용이 어려워 조총을 쏘며 적선에 올라타는 백병전 전술을 보였다”면서 “반면 조선은 판옥선 사방으로 원거리 화포 타격이 가능해 천자총통, 신기전에 주력하고 근거리는 활을 쐈다. 명나라 수군은 호준포를 중심으로 백병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난중일기』 『징비록』 『화기도감의궤』 등을 참고했다고 한다. 그는 또 “기존 ‘짐벌’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작동하는데 ‘노량’은 선박끼리 충돌하고 월선하는 등 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해 실시간 조작이 가능한 기기를 새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김경석 조명감독은 “‘명량’은 야외 자연광으로 사실감을 살렸다면 ‘노량’은 스튜디오 시스템을 도입해 낮과 밤, 흐린 날과 햇살 장면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노량’에선 달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새벽이 찾아오는 하늘을 다섯 단계 조명에 담았다. 명암 대조가 강한 화면을 위해 LED 조명 220대가 동원됐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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