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 맛집 여행 대신 레스토랑 간편식 즐긴다

문수정 2023. 12. 3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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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간편식보다는 특별한 느낌
집에서 뚝딱 조리해 먹을 수 있어
고물가시대에 맛집 메뉴를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 간편식(RMR)이 인기다. RMR 제품은 맛집에 대한 소비자 관심도가 이어지면서 덩달아 성장하는 추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선호텔 ‘바베큐 폭립’, 워커힐호텔 ‘고메 바비큐 폭립’, 프레시지와 안일옥이 협업한 ‘한우설렁탕’, LF가 출시한 ‘을지깐깐 쌀국수’, 아워홈의 프리미엄 중식 레스토랑 ‘싱카이’의 짬뽕과 볶음밥, 세븐일레븐이 63빌딩 중식 레스토랑 ‘백리향’과 협업해 내놓은 볶음밥 제품. 각 사 제공


‘음식 여행’ 추억 반추하기도 가능 호텔·외식·급식업계도 제품 출시 결혼 2년 차인 직장인 홍수빈(33)씨 부부는 요즘 두 사람만의 소소한 ‘도장깨기’를 하고 있다. 이른바 레스토랑 간편식(RMR) 도장깨기다. 결혼 직후 한동안은 직접 요리에 도전하기도 했고, 국내 여행을 다니며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퇴근 후 요리는 만만찮은 작업이고, 임금인상률은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해서 잦은 여행은 부담이 됐다. 그러다 찾아낸 게 RMR이다.

홍씨 부부는 RMR의 매력으로 ‘추억’과 ‘특별함’을 꼽았다. 부부가 함께 가본 맛집 메뉴를 집에서 해먹을 때는 여행의 추억을 곱씹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맛집의 인기 메뉴를 그대로 구현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보편적인 맛에 안착한 가정간편식(HMR)보다는 특별한 느낌이 들어서 ‘먹는 기분’을 낼 만하다고도 했다.

홍씨는 “멀어서 가기 힘든 맛집이나 궁금했던 레스토랑 메뉴를 집에서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다는 게 레스토랑 간편식의 장점인 것 같다”며 “RMR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우리만의 도장깨기를 하는 것도 즐겁다. 고를 수 있는 상품이 많아진 게 좋다”고 말했다.

홍씨 부부처럼 ‘신상 RMR’ 제품이 나올 때마다 맛을 보는 이들이 있다. 일부는 유튜버로 활동하면서 맛과 구성을 평가하기도 하고, 소소하게 개인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올리기도 한다. 흔하지 않은 게 매력이지만 가격이 싸지는 않다. 추억과 경험의 값이 더해지는 걸 고려한다면 충분히 지불할 만하다는 가격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듯하다. 유통업계는 물론이고 호텔업계와 일반 식당까지 RMR 제품을 꾸준히 출시하는 이유로 풀이된다.

31일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21년 2587억원에서 2022년 3400억원으로 31.4% 급증했다. RMR은 밀키트로 분류되기도 하고 간편식 안에 포함되기도 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22년 냉동 간편식 시장규모는 22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 늘었다. 밀키트도, 냉동간편식도 시장이 성장 추세다. RMR 시장 규모만 집계한 데이터는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찾기 힘들지만 밀키트와 간편식 시장 규모를 토대로 RMR의 성장세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RMR 시장의 확대는 호텔·유통업계가 출시하는 신상품 증가로도 확인된다. 유통가에서 RMR에 힘을 주는 기업 중 한 곳은 편의점 세븐일레븐이다. 세븐일레븐은 2023년 내내 RMR 영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제주 맛집 ‘숙성도’, 을지로 맛집 ‘촙촙’ ‘화육계’, 서울 여의도 63빌딩 고급 레스토랑 ‘워킹온더클라우드’ ‘백리향’ 등과의 콜라보 상품이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지난 1년간 출시한 RMR 상품만 30여종에 이른다.

많이 출시했다고 언제나 성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RMR은 결과로도 존재감을 증명했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RMR 상품은 출시 때마다 각 상품이 속한 카테고리 매출 순위 1위에 올랐다. 식품 카테고리에서 RMR 영향력이 계속 단단해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각 식품군 카테고리내 RMR 상품의 매출 구성비를 보면 냉장밥의 50%, 육가공 야식과 냉동면 매출의 40%가 RMR 상품 차지였다.

이마트는 일찌감치 RMR 시장을 개척했다. 이마트 자체브랜드(PB) ‘피코크’는 2013년 업계 최초로 맛집과 협업하며 간편식 시장을 넓혔다. 순희네빈대떡, 초마, 진진 등 노포부터 미슐랭 레스토랑까지 아우르며 레스토랑 간편식의 광폭 행보를 펼쳤다. 피코크가 PB RMR의 평균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는 호텔·외식·급식업계도 RMR 시장에 뛰어들었다. 조선호텔앤리조트, 워커힐호텔, 글래드호텔, 아워홈, LF 등 저마다 심혈을 기울이는 레스토랑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레스토랑 대표 메뉴를 RMR로 출시하는 게 대세가 됐다. 조선호텔 ‘유니짜장’, 글래드호텔 ‘프리미엄 양갈비’ 등은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성공의 경험’이 있을수록 상품 구성은 다양해진다. 호텔·외식·급식업계의 RMR이 소리소문없이 RMR 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내가 아는 맛집, 내가 가본 맛집의 대표 메뉴를 집에서도 먹을 수 있다는 건 소비자들에게 의미있는 경험으로 다가가는 듯하다”며 “보편성을 담보하는 간편식 시장이 탄탄하게 받쳐주는 상황에서 ‘특별한 맛’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마케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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