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양 늘리겠다"…北김정은이 꼽은 내년 무력 과업 셋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해 주력해야 할 군사 과업으로 핵무력 증강, 해군 전력 향상, 정찰위성 추가 발사 등을 꼽았다. 군사 분야의 성과를 2023년의 주요 업적으로 내세운 만큼 내년에도 관련 기술 고도화를 명분으로 각종 도발을 이어갈 태세다.
31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전날(30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 5일차 회의에서 김정은은 현재 정세와 관련 “압도적인 전쟁 대응능력과 철저하고도 완전한 군사적 준비태세를 완벽하게 갖추기 위한 사업에 계속 박차를 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18형 발사, 신형 무인기 샛별-4·9형, 전술핵 잠수함 김군옥영웅함 진수, 정찰위성 만리경-1호 등 올해 군사 분야 치적을 일일이 부각한 데 이어 새해 과업 목록을 제시했다.
“핵무기 양 늘리겠다” 경수로에서도 플루토늄 뽑을까
가장 눈에 띄는 건 핵무력 분야다. 통신은 “핵무기 생산을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는 믿음직한 토대를 구축해나가며 2024년도 핵무기 생산계획 수행을 위한 힘 있는 투쟁을 전개해나갈 데 대해 강조됐다”고 밝혔다. 핵탄두 보유량도 본격적으로 증가시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최근 영변에서 30㎿로 추정되는 새로운 시험용 경수로 가동 정황이 포착됐다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분석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경수로도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려된다”고 지난 21일 IAEA 이사회 개회사에서 밝혔다.
핵무기의 재료가 되는 플루토늄은 5㎿ 원자로에서 생산된 폐연료봉을 화력발전소에서 재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추출된다. 핵무기의 또 다른 재료가 되는 고농축우라늄(HEU)의 약 3분의 1 양으로 핵무기 1기를 만들 수 있는 등 효율이 뛰어나다. 플루토늄은 핵무기를 특수 목적탄으로 만들거나 소형화하는 데도 유용해 북한으로선 비축량을 늘려야 할 이유가 상당하다. 하지만 영변의 기존 5㎿ 원자로의 노후화 문제로 북한은 플루토늄 생산량을 늘리기는커녕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꺼낸 카드가 25∼30㎿급 경수로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새 경수로를 완전히 가동하면 5배 정도 상당의 플루토늄을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수로로 플루토늄을 뽑아낼 경우 불순물 비중이 높아 현실적이지 않다는 관측이 많지만, 경수로를 통한 플루토늄 증산 계획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무기급 5㎿ 원자로를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나라는 경수로에서 핵무기용 플루토늄을 굳이 뽑아내지 않아도 되지만 북한은 상황이 다르다”며 “북한이 경수로를 활용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말했다.
플루토늄과 함께 HEU 증산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북한은 영변 외 평안남도 강선 등 비밀 핵시설에서 HEU를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북한이 궁극적으로 2030년대 말 무렵 핵탄두를 300여 기 정도 보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는 80~90기 정도로 추정된다.
전술핵무기를 시험하는 7차 핵실험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된다. 이춘근 위원은 “특히 북한이 올해 외형을 공개한 전술핵탄두 화산-31의 핵실험 여부가 주목된다”며 “과거 북한이 6차례 핵실험에서 플루토늄, HEU, 수소탄 등 각기 다른 종류 핵무기를 시험한 전례를 보면 7차 핵실험에선 화산-31에 대한 실제 성능을 시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함선공업혁명 일으켜라”
통신이 “선박공업 부문에서 제2차 함선공업혁명을 일으켜 해군의 수중 및 수상전력을 제고할 것”이라고 밝힌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9월 6일 북한이 처음 공개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의 실전성 확보를 내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뜻일 수 있어서다.
김군옥영웅함은 1800t급 로미오급을 3000t급으로 늘리면서 10개의 수직발사관(VLS)을 새로 단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서 전술핵을 탑재한 북극성 계열 또는 KN-23의 개량형 화성-11형과 같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물론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도 섞어 쏘겠다는 게 북한의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군 안팎에선 잠수함이 제 성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높은 수압을 버티기 위한 고난도의 특수강 제작 기술, 탐지 회피에 필요한 엔진 소음 개선 기술 등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게 군 당국의 평가다. 북한 입장에선 해당 잠수함의 군사적 효용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기술 개량에 집중할 필요성이 상당하다.
올 상반기 첫 등장 핵무인 잠수정 ‘해일’ 추가 시험 가능성도
북한이 해군력을 거론하며 “국방력 발전 5대 중점목표 수행에서 미진된 과업을 빠른 기간 안에 집행하는 것을 중심과업으로 제시했다”고 밝힌 점 역시 관심이 쏠린다. ‘5대 목표’는 북한이 2021년 1월 8차 당대회 때 발표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의 일환이다. 5대 목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북한이 밝힌 적은 없지만, 핵추진 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보유가 포함된 것으로 분석된다.
구체적으로 내년 상반기 중 ‘해일’로 불리는 핵무인 잠수정의 추가 시험 발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올해 상반기 해일을 처음 공개하며 세 차례 수중 기폭 시험 사실을 공개했다. 북한의 표현대로라면 해일은 “은밀하게 잠항해 수중 폭발로 초강력적인 방사능 해일을 일으켜 적의 함선 집단들과 주요 작전항을 파괴 소멸하는 역할”을 맡는다. 북한은 수중 핵무기의 핵심 요소인 '은밀성'을 향상하기 위해 다양한 잠항 능력을 추가 시험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3개 위성 추가 발사”…러시아 도움으로 탑재체 성능 개량하나
매체는 또 “우주개발 부문에서 2023년에 첫 정찰위성을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경험에 기초해 2024년 3개의 정찰위성을 추가로 쏴 올릴 데 대한 과업이 천명됐다”고 강조했다. 3차 시도 만에 위성을 정상 궤도에 진입시키면서 발사체의 성능을 확인한 데 이어 탑재체 성능도 향상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군 당국은 북한이 지난 11월 궤도에 올린 군사위성의 경우 해상도가 3m급으로 평가돼 군사위성으로서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조악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카메라 등 광학 장비를 단기간에 보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밖에 통신은 “(김정은이) 무인항공 공업부문과 탐지전자전 부문에서 현대전의 특성에 맞게 각종 무인 무장장비들과 위력한 전자전 수단들을 개발생산할 데 대해 강조했다”고 전했다. 지난 7월 열병식 때 처음 공개된 무인기 샛별-4·9형 개발을 계기로 GPS 교란 등 전자전 성능에도 공을 들이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레이더의 송·수신 기술이 전자전 기술과 유사해 응용될 수 있다”며 “전자주사식 레이더(ESA)가 10여 년 전부터 북한 지대공 미사일 체계에 도입된 사례를 볼 때 전자전 기술 역시 고도화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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