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공수사권 63년만에 경찰에 넘긴다…"안보공백 우려"
국가정보원이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때부터 주요 기능이던 대공수사권을 새해부터 경찰에 완전히 넘긴다. 안보를 위협하는 간첩 수사를 그간 국정원과 경찰 이원체제로 운영하다가 경찰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31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개정 국정원법이 2024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앞서 2020년 12월 13일 개정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뒤 준비를 위한 유예기간 3년도 지났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수사권 조정의 한축이었다. 과거 국정원의 대공수사 과정에서 벌어졌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 등 인권침해와 국내정치 개입 논란을 없애겠다는 게 대공수사권 폐지의 명분이었다. 국정원 조직 측면에선 63년간 정보 수집국과 더불어 언제나 최대 부서였던 대공수사국이 없어지게 된 셈이다.
대신 국정원은 새해부터 대공수사와 관련해 해외정보 수집 및 조사 기능만 담당할 수 있다. 경찰이 간첩과 관련한 국내 첩보 수집과 수사를 전담하게 된다. 경찰 입장에선 기존 역할에서 달라지는 건 없지만, 대공수사 부담이 훨씬 커지게 됐다.
경찰은 대공수사권 전담을 위해 관련 인력 규모를 올해 724명에서 내년 1127명으로 약 56% 확대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 산하에는 주요 대공 사건을 수사할 안보수사단이 설치된다. 수사단 안에는 안보수사1과와 안보수사2과를 놓고, 각 과에 수사대가 2개씩 들어간다.
또 정예 수사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안보수사 연구·교육센터’는 지난 10월 이미 개소한 상태다. 지난해부터는 안보수사 5년 이상 경력자에 대해 심사를 거쳐 전임 안보수사관 자격을 부여하고, 7년 이상 경력자에 대해선 시험을 통해 책임 안보수사관 자격을 주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신년사를 통해 “경찰 중심의 안보수사체계 원년을 맞아 안보수사 역량을 근원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국정원이 완전히 대공수사에서 배제되는 건 아니다. 새해 첫 날 시행되는 시행령 ‘안보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규정’에 따르면 국정원은 국가안보와 국익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이들에 대해 추적과 정보 분석 등 제한적 활동을 할 수 있다. 출국금지와 출국정지도 요청할 수 있다. 또한 불가피한 경우 민감한 개인정보와 고유식별정보 등을 처리할 수 있고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개인 등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할 수도 있다.
경찰, 수사전담 준비됐나…국정원 수집 해외첩보 사장 우려도
일부에선 “국정원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으로 안보수사에 공백이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이 북한의 간첩을 막는 방패 역할을 주도할 준비가 제대로 됐는지에 관해 경찰 내부에서도 부정적 평가가 존재한다. 경찰청이 올해 2월 작성한 ‘2022년 자체평가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대공수사 관련 3개 과제 모두 부정 평가를 받았다. ‘탈북민 보호 강화’와 ‘안보수사 활동 강화’는 ‘다소 미흡(7개 등급 중 5등급)’, ‘안보정보 수집’은 ‘미흡(6등급)’이었다.
특히 해외첩보 수집(국정원)부터 수사(경찰)까지 두 기관 사이 유기적 협력이 이뤄질지에 대한 의구심도 상당하다. 국정원 내부에선 “기껏 열심히 해외첩보를 수집한 뒤 경찰에 갖다 받치고 싶겠느냐”는 회의론이 나온다. 조직간 성과에 대한 다툼 때문에 국정원이 수집한 해외첩보가 경찰에 제대로 공유되지 않을 거란 관측이다.
그러나 경찰청은 문제가 없을 거란 입장이다. 한 경찰청 간부는 “안보수사국 내 국장급 협의체를 두고 국정원 직원을 파견받아 적극 소통하고 실무회의도 필요하면 수시로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역시 해외첩보를 수집한 뒤 사장시키는 것보다는 경찰을 통해 수사 성과로 이어지는 것이 결국 국정원 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에 협력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경찰과 국정원 모두 오는 4·10 총선 결과에 따라 국정원 대공수사권 복원론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한다. 수사권 복원론자 측에선 “경찰 홀로 수사하는 것보다 국정원과 경쟁·보완하는 것이 안보공백 우려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는 목소리가 크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버지 이런 사람이었어요?" 암 진단 뒤 딸에게 온 '현타' | 중앙일보
- 덕수궁 시체더미서 가져갔다…어느 미군의 ‘양말 속 국새’ | 중앙일보
- 지병 때문이라더니…숨진 홍콩 여배우, CCTV에 찍힌 사망 원인 | 중앙일보
- 나체 '19금' 장면인데…초등생들 교실서 "좋았어, 영차" | 중앙일보
- "호텔 엘리베이터서 성폭력 당했다"…유명 가수, 소송 건 상대는 | 중앙일보
- "이사 갈 집 청소 중이었는데" 원룸 화재로 숨진 5세 아이 아빠 충격 | 중앙일보
- "아버지, 농사짓지 마시고 배당금 받으세요"…똘똘한 효자 나왔다 | 중앙일보
- ‘40대 성폭행’ 중학생 “출소 후에도 그러면 사람 아니니 걱정 말라” | 중앙일보
- 유커 수천 명 태운 24층 높이 배…초대형 크루즈 목적지는 '이곳' | 중앙일보
- 10년간 버텨낸 보람있네…삼성·LG의 '미운 오리' 역대급 일냈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