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맛집' 소문, 150명 줄섰다…"굶지 말자" 수원역 그곳
지난 30일 오후 6시 수원시 교동의 한 연립주택에 있는 노숙인 생활시설 ‘낮은둥지쉼터’ 부엌. 올해 마지막 노숙인 무료 급식을 준비하는 백점규(70) 목사의 양파 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백 목사는 쉼터에서 생활하는 노숙인 7명과 함께 2007년 8월부터 현재까지 17년째 수원역에서 매주 화~토요일 주 5회 무료 저녁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백 목사는 “수원역에서 무료 급식차에 우루루 사람들이 몰려가는 걸 17년 전에 보고 내가 도와야겠다 마음을 먹은 뒤에 시작한 일”이라며 “세찬 눈보라와 비바람이 몰아쳐도 노숙인들에게 약속한 시간에 나와 밥을 줬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지만, 이제 길어야 5년 정도 더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급식을 해온 만큼, 백 목사의 저녁 무료 급식소는 노숙인들 사이에서 ‘무료 급식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수원역 인근에 머무르는 노숙인은 70명 안팎인데, 백 목사의 무료 급식소를 찾는 노숙인이 150명에 달한다. 이날도 무료 급식이 이뤄지는 수원역 급식시설 앞엔 배식 40분 전인 이날 오후 7시쯤부터 노숙인 수십명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역과 노량진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내려온 노숙인부터 평택역과 오산역에서 올라온 노숙인까지 약 150명이 줄을 맞춰 백 목사를 기다렸다.
오후 7시40분 급식용 대형 밥솥 4개와 두부 된장찌개 국통 2개, 물미역 무침과 마늘·깻잎 장아찌, 총각김치, 오이고추에 고추장을 배치했다. “배식을 시작합시다”라는 백 목사의 안내에 맞춰 가장 안쪽 의자에 앉아있던 노숙인들이 일어나 배식 창구로 다가왔다. 백 목사를 돕는 노숙인 출신 정민철(55)씨가 흰 밥을 듬뿍 떠서 식판에 내려놓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많이 드세요”라고 인사하자 노숙인들도 “고맙습니다. 복 받으세요”라고 답했다.
백 목사는 “13살 때부터 소년원에 들락거려 초등학교밖에 졸업을 못 했었다. 1976년엔 폭력 조직에 가담했다가 순천교도소에 수감돼 또 싸우다 죽을 만큼 다치는 어려움을 겪었다”며 “그때 새 삶을 살기로 다짐했지만, 또 넘어지고 좌절하다 검정고시, 신학대학을 7년 만에 마쳤다. 그 이후부터 나처럼 포기하고 좌절한 사람 중에 가장 벼랑 끝에 있는 노숙인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에게 건넨 백 목사의 새해 인사는 “굶지 말자”였다. 백 목사는 식사를 마친 노숙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가방을 열어 빵 꾸러미를 넣어주며 “새해 첫날부터 굶으면 안 돼.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이 올 거야”라고 격려했다.
손성배 기자 son.sung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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