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법을 배운 올해 마지막 전시

이수현 2023. 12. 3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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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 작가의 'One Step Away' 사진전

[이수현 기자]

2023년의 마지막 금요일, 조금 이른 퇴근을 하고 친한 동료와 올해의 마지막 전시를 함께 보기로 했다. 동료와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의 전시회를 보러 가는 우리만의 문화의 날을 즐기곤 하는데, 이번에는 점심시간이라는 시간 제한 없이 여유 있게 즐기자는 약속을 하고 입김을 호호 불며 전시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전시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이경준의 <One Step Away>로, 뉴욕을 포함한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써 그만의 패턴으로 기록하며 일상 속에서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는 시간이었다.

Chapter 1. Paused Moments

해가 지는 골든아워의 찰나에 찍은 멋진 맨해튼의 건물이 천장까지 꽉 채워져 있어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숨을 들이켤 정도로 멋지다. 꽃은 시들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처럼, 해질녘도 눈을 돌리면 그 순간이 사라져버리니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장 따뜻하고 빛나는 찰나를 포착한 작가의 시선이 차가운 콘크리트 빌딩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골든아워
ⓒ 이수현
 
 
 맨해튼의 여름 저녁
ⓒ 이수현
 
Chapter 2. Mind Rewind

<도시 속에 작은 점>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두 번째 공간은 "선과 면으로만 이루어진 듯한 프레임 속, 현대인의 하나의 조그만 점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작디작은 점에도, 서로 다른 각자의 삶과 이야기가 녹아있다".

스웨터의 직물을 확대해놓은 듯한 건물들의 패턴이 펼쳐지는 공간에서 매일 보는 것에서 또 다른 새로움을 찾는 작가의 시선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루프탑 테라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포착한 사진들이었다. 삭막하고 바쁜 도심 속에서도 나만의 오아시스를 찾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휴식하는 인간들을 보는 것만으로 숨통이 트이는 듯한 효과가 있었다.
 
 직물같은 건물의 패턴
ⓒ 이수현
   
 루프탑의 휴식
ⓒ 이경준
 
Chapter 3. Rest Stop
그렇게 사진들을 구경하며 꽤 걸어 다리가 조금씩 아파오던 시점, 코너를 도니 일순간 편안한 초록이 펼쳐지면 눈이 시원해진다. <공원 속에 휴식> "도시에서 서로 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휴식을 위해 모이는 이곳.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에너지를 얻게 된다." 단연 제일 좋았던 구간이었다.
 
 공원을 구현해 둔 전시장
ⓒ 이수현
 
각자의 하루를 보낸 후 충실히 휴식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어디서 왔던 무엇을 했건 중요치 않고 온전히 휴식하기 위한 공통점을 지닌 익명의 점들이 모여 하루 종일 바빴던 뇌의 리듬에 한 템포 느린 선율을 섞어 넣는다. 초록이 가득한 방에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오고, 센트럴파크 이곳저곳을 촬영한 동영상도 계속해서 상영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휴식하며 동료와 사진에 대한 감상과, 얼마 전 함께 들었던 유현준 교수의 강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현준 교수의 <도시 공간에 숨어있는 인문학적 의미>라는 교양 강좌를 들은 후, 그중 뉴욕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았다. 뉴욕이 파리를 추월했던 이유는 30층짜리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어 인구밀도의 증가를 가속화해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와중에 금싸라기 맨해튼의 한복판에 가로 850m 세로 4km의 대형 도시공원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만한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일침을 가한 현대 도시공원 선구자인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의 공이 크다.
 
 센트럴 파크에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 만으로 힐링이 되었다
ⓒ 이수현
 
좋은 도시는 공짜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야 한다고 한다. 공원, 도서관, 벤치 등의 공간이 필요한데, 번화가의 한 구간을 비교해 봤을 때 뉴욕은 벤치가 170여 개, 서울의 가로수길에는 벤치가 3개가 있었다고 하니 서울이 얼마나 쉴 공간이 없는 도시인지 실감이 된다. 지금의 센트럴파크는 뉴욕 시민들이 사랑해 마지 않고, 모든 관광객들도 필수로 들르는 없어서는 안 될 융합의 공간이 되었다.

동료도 한 달간 뉴욕에서 지냈을 때 센트럴파크 가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하고, 나 또한 뉴욕 여행 때 가장 좋았던 순간이 센트럴 파크에서 할랄가이즈 케밥을 먹고 누워있던 순간이니. 뉴요커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이 하나의 공간에서 공통의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Chapter 4. Playback

마지막은 각자가 가진 고민을 종이에 쓴 후 파쇄기에 갈아버릴 수 있는 체험 공간이었는데,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연말연시에 방문하기에 아주 적절한 이벤트였다. 마음속 한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고민을 적어 파쇄기의 손잡이를 돌돌 돌려 갈아버렸다. 파쇄되어 떨어진 종이들은 아래로 쌓여 있었는데 이 또한 한 스텝 멀어져 바라보면 여러 개의 산봉우리 같기도 하여, 거리감이 마음의 무게를 살짝 덜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위안이 되었던 작가의 말로 글을 인용하여,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를 갈무리해본다. 
 
"각자가 지닌 고민의 무게는 다르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안고 살아갑니다.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보면, 고민은 생각보다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죠. 제가 넓은 시야를 통해 그 무게를 덜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관람객분들도 위안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고민의 무게를 나누기
ⓒ 이수현
   
 작은 산봉우리가 된 고민들
ⓒ 이수현

덧붙이는 글 | 24년 3월 31일까지 그라운드시소 센트럴에서 열리는 이경준 작가의 사진전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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