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돌아보는 2023년 교육

김홍규 2023. 12. 3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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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서동처(猫鼠同處), 도행역시(倒行逆施), 과이불개(過而不改)

[김홍규 기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 고시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연말이면 의례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언론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2023년 교수신문이 고른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정의는 "눈앞의 이익을 보면 의리를 잊음" 이다. 교수 몇 명이 정한 옛말로 다양한 분야 수많은 사람의 삶을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하지만, '의리'를 찾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 해를 돌아보는 일은 필요하고 의미가 있다.

그동안 교수신문이 정했던 몇 개의 사자성어로 2023년 교육계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관련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 도행역시(倒行逆施), 과이불개(過而不改) 세 가지다. 2024년 교육 분야에서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단어를 꼽을 때 '교권'을 빼놓을 수 없다. S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이후 많은 교사가 거리와 광장을 메웠다. 그들이 외친 목소리는 언론과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집회나 시위라면 질색하는 조선일보도 칭찬과 격려를 쏟아낼 정도였다. 정부는 관련 고시를 만들었고, 국회는 법률을 고쳤다.

이제 교사들은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을까? 각종 민원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살고 있을까? 전문가로서 교육 분야에서 존중받으며 생활하고 있을까? 사회는, 아니 교육청과 교장, 교감만이라도 교사를 존중하고 그들의 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을까? 내 대답은 '전혀 아니다'이다.

묘서동처(猫鼠同處), 고양이와 쥐의 동거

'묘서동처(猫鼠同處)'는 2021년 말 교수신문이 뽑은 당시 '올해의 사자성어'였다. '고양이와 쥐가 같은 곳에 있다.' 비인간 동물의 연대는 아름답다. 이해관계에 얽매인 인간들이 하는 '적과의 동거'는 썩은 냄새를 풍긴다. 윤 대통령이 유행시킨 말로 옮기면 '이권 카르텔'이다.

서로 다른 가치 지향 때문에 대립하고 반목하던 교원단체들이 '교권' 앞에 뭉쳤다. 한국교총과 전교조는 태생이 다르다. 전교조와 교사노조는 한 가지에서 나왔으나, '제망매가'에 나오는 정이나 애틋함은 없는 사이다. 특히 이들이 보수교육청이나 교육부와 '교권'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장면은 역사적이다.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을 모습이다. 상대가 이주호 장관이라 더욱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교권'이라기보다는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다른 교육 이념과 방향을 지닌 여러 교원단체가 같은 목소리를 냈다. 협의 자리를 만들고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한 자리에 적(敵)은 없었으나 교육부와 교원단체들의 동거에는 '과도한 학생 인권'이라는 가상의 괴물이 있었다. '노동조합' 이름을 단 조직에서는 '학생을 적으로 생각한 적 없다'라며 억울해할 수도 있겠다. 억울하다면, '생활지도권' 확보를 위해 내놓았던 공식 발표를 다시 읽어보기 바란다.

도행역시(倒行逆施), 엉뚱한 '삽질'

'도행역시(倒行逆施)'는 2013년 교수신문이 고른 그해의 사자성어다. 사전에 나와 있는 의미는 "차례나 순서를 바꾸어서 행함"이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비유적 표현을 쓰면 엉뚱한 '삽질'이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접어 두고 일시적 처방을 하거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엉뚱한 해결 방법에 몰두하는 것을 비판하는 말이다. 한동안 유행하던 '뭣이 중헌디?'의 '있어 보이는' 표현이다.

개인 사이의 '잘못된 만남'은 관계를 정리하면 된다. 국가 기관과 많은 구성원이 있는 단체의 '그릇된 동거'는 다양하고 복잡한 공적 문제를 일으킨다. 여기에 '엉뚱한 삽질'까지 더해진다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교사의 생활지도권 확보'를 목표로 정하는 순간부터 의도와 무관하게 '삽질'이 시작됐다. 공동의 적을 찾았고, 하필이면 그 적은 학교 구성원 가운데 가장 약한 존재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같은 현상을 우려해 지난 7월 28일 <초등교사 사망사건 관련 국가인권위원장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인권은 결코 모순·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택일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과이불개(過而不改), 책임지지 않고 반성도 없는

'과이불개(過而不改)'는 2022년 말 교수신문이 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박현모는 "잘못을 저질러놓고 그 잘못을 고치지 않는 그것이 진짜 잘못(過而不改 是謂過矣)"이라고 설명했다(교수신문, 2022년 12월 22일, <후회한다면 잘못을 고쳐보라> 기사).

2023년 교권이 사회적 쟁점이 됐지만, 교사의 권리가 향상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교권이 높아졌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학교 교사들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눈에 띄는 변화도 있다. 바로 학생의 권리 축소다. 이미 학생들의 생활을 '규율'하는 '학생 생활 규정'이 엄격하게 개정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교사의 생활지도권 강화'라는 잘못된 목표를 세우고, 서로 다른 존재 이유를 가진 교원단체들과 교육부가 손을 잡았다. 엉뚱한 목표 설정과 잘못된 동거 결과, 애꿎은 피해자가 생겼다. 학생들이다. 교권이 논쟁거리 될 때마다 그랬듯이 2023년에도 학생들은 교사의 권리를 침해하는 가해자이며, '마녀'가 됐다. 학교 환경 변화는 거의 없는데,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피해자만 남았고, 앞으로도 피해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진짜 가해자'는 사라졌다. 잘못을 고치기는커녕 사과나 반성도 없다.

국가공무원법부터 바꿔야

OECD 주관 TALIS(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 2018에 따르면, 한국 교사의 학교 환경 만족도는 47개 참가국 가운데 46번째로 최하위권이다. 학교 환경 만족도는 '일하는 즐거움'과 '근무 환경'에 대한 만족 정도를 뜻한다. 주된 이유는 '학교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성 부족 때문이다. 47개 참여국 가운데 35위를 기록했다(OECD, TLAIS 2018). 학교에서 새로운 제안을 할 기회가 적고, 의사결정 과정에 다수 교사가 참여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2023년 교사 집회에서 교장 역할에 대한 요구가 컸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정부와 국회가 진정 교사의 권리를 생각한다면, 교사 자율성 확보가 우선이다. 먼저 케케묵은 국가공무원법 독소 조항부터 없애야 한다. 전설 속 용처럼 모습을 알 길 없는 '성실 의무'(국가공무원법 제56조), '복종의 의무'(국가공무원법 제 57조), '품위유지의 의무'(국가공무원법 제63조)부터 없애야 한다.

이들 국가공무원법 조항은 초·중등교육법 제21조 제4항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는 규정과도 어긋난다. 국가공무원법 성실, 복종, 품위 유지 의무는 헌법 제31조 제4항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한다. 무엇보다 기본권 제한의 핵심 기준인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금지'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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