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전쟁’ 허범훈 PD가 파고든 ‘두뇌 예능’의 ‘본질’ [선 넘는 PD들(75)]
“배신, 정치 없이 오로지 천재적인 두뇌 능력에 집중하고 싶었다.”
<편집자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이 확대되고, 콘텐츠들이 쏟아지면서 TV 플랫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창작자들도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어 즐겁지만, 또 다른 길을 개척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PD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된 ‘대학전쟁’은 서카포연고(서울대학교, 카이스트, 포항공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이 오직 두뇌만을 활용해 맞붙는 두뇌 서바이벌 예능이다.
‘더 지니어스’, ‘대탈출’ 등에 참여한 김정선, 권영 작가와 ‘국대는 국대다’를 연출한 허범훈, 김인지 PD가 만나 청춘들의 치열한 두뇌 대결을 완성했다.
‘더 지니어스’ 시리즈를 비롯해 ‘크라임씬’, ‘여고추리반’ 시리즈 등 ‘브레인’으로 이름난 연예인 또는 일반인들이 모여 두뇌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은 그간 많았다. 그러나 ‘대학전쟁’은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학생들만 모여 경쟁한다는 점에서, ‘찐천재’들을 모은 두뇌 예능으로 마니아들의 관심을 유발했다.
세계관을 구축하거나, 또는 스토리를 접목하고, 출연자들 간의 관계에 집중하며 다양한 흥미를 유발하는 여느 두뇌 예능과는 자연스럽게 결이 달라졌다. 진짜 천재들을 모은 만큼 이들이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는지, 그 과정에만 집중하며 두뇌 예능의 본질을 보여줬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천재’라는 키워드였다. 배신, 정치 없이 오로지 천재적인 두뇌 능력에 집중해 그것이 주는 짜릿함을 극대화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이를 위해 직관적인 두뇌 능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20대 초반의 나이대로 출연자를 한정했다. 심리전이 주가 되는 게임이 아니라 직관적인 두뇌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기획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관록, 노련함보다는 반짝이는 두뇌 능력,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을 가진 20대 초반이 ‘대학전쟁’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다른 건 몰라도 머리로는 누구한테 져본 적 없다는 출연자들이 모여 최선을 다해 두뇌 싸움을 벌이면서 ‘대학전쟁’의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최고의 인재들만 모인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라이벌로 유명한 카이스트-포항공대, 연세대-고려대까지. 자연스럽게 서사는 완성됐다. 모교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들이 치열하게 경쟁에 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긴장감 넘치는 서사가 됐다.
“서바이벌의 경쟁 구도를 강화하기 위해 학교 간 대결이라는 콘셉트를 추가했다. 프로그램 내에서 만들어진 연합이 아니라 애초에 모교에 대한 자긍심으로 끈끈하게 뭉친 팀이기 때문에 더욱 치열한 승부를 펼칠 수 있었다.”
브레인 중의 브레인들이 모였기에 선발 과정부터 치열했다. 우선은 대학교 홍보실을 통해 낸 모집 공고와 학생들의 SNS 계정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지원서를 받았다. 두뇌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세부적으로 항목을 나눠 테스트를 하는가 하면, 출연자들의 매력까지 살피며 섭외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출연자들은 열정적으로 문제 풀이에 임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긴장감을 유발하면서, ‘대학전쟁’만의 장점을 제대로 보여줬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전 테스트’ 결과였다. ‘대학전쟁’에서 필요한 두뇌 능력을 크게 ‘암기, 연산, 추론, 공간지각, 전략’으로 나눴고 각 분야의 능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문제들을 종합해 사전 테스트 문제를 완성했다. 그 무엇보다 ‘두뇌 능력’이 가장 중요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사전 테스트’ 점수를 기준으로 1차 출연 후보를 선정했다. 실제 ‘대학전쟁’ 출연자들의 사전 테스트 점수는 모두 70점( 이상이었고 학교별 출연자 평균 점수도 모두 비슷한 수준이었다. 2차 후보 선발의 기준은 팀별 조화였다. 암기, 연산, 추론 등 두뇌 능력의 분야별 에이스를 최소한 한 명씩은 배치하도록 구성했다. 마지막 기준은 인간적인 매력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더 매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출연자들을 최종 선발했다.”
출연자들에게 딱 맞는 수준의 문제를 내는 것도 중요했다. 너무 쉽게 풀어서도, 또 너무 어려워서 모두가 헤매는 문제가 나와서도 안 됐다. 출연자들의 수준이 높은 만큼, 그들의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시청자들도 함께 이해시키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게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출연자들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가?’였다. 모든 게임에서 출연자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을 보여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출연자들의 뛰어난 두뇌 능력이 전제돼 있었기 때문에 기존 두뇌 서바이벌보다 난도가 높은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저희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두 번째 기준은 시청자들도 이해할 수 있는 게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노력한 것은 게임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게임 자체가 이해되지 않으면 출연자들이 뛰어난 능력을 선보여도 그것이 완벽하게 전달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전개들이 이어져 흥미를 안기기도 했다. 어떤 학교가 우승을 차지할지, 그 결과를 기다리는 재미도 물론 있었다. 여기에 20대 청춘들의 에너지와 열정을 접하는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과거 스포츠 레전드였으나, 현재는 은퇴한 선수가 다시 훈련해 현역 선수와 대결하는 스포츠 예능 ‘국대는 국대다’와는 장르도, 또 플랫폼도 달랐지만 허 PD가 전하는 건강한 메시지는 공통적인 장점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전쟁’과 ‘국대는 국대다’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대학전쟁’의 두뇌 게임은 ‘국대는 국대다’의 스포츠 경기처럼 결과가 예측되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 모두 출연자들의 능력과 노력이 빛나는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연출자로서 그런 순간들을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대학전쟁’ 마지막 회가 공개되는 날 출연자들과 회식을 하면서 그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PD로서 여러분을 만나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학전쟁’은 출연자들이 전부였던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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