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0명과 부르는 조항조의 인생찬가 “인생아, 고마워!” [홍종선의 연예단상㉞]
‘트로트계의 음유시인’ 조항조가 2023년의 마지막을 팬과 함께 장식했다. 팬의 규모가 대단했다. 10명씩 앉는 테이블 88개가 빽빽이 놓인 공연장, 설마 다 채워질까 싶던 좌석이 촘촘히 메워졌고 가수 조항조의 노래 한 가락, 몸짓 하나에 열광했다.
지난 28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2023 연말 디너쇼 조항조’가 열렸다. 조항조, 이름 석 자면 충분한 콘서트였다. 공연을 한 시간 앞둔 시각, 이미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팬들이 2층 복도를 빙 돌아 줄을 섰다. 이미 테이블 번호가 정해진 티켓이었음에도 900명 가까운 팬들은 스스로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줄을 섰다. 가수가 생각과 개념을 중시하는 뮤지션이다 보니 팬들도 똑같이 닮았다.
처음이라는 관객보다 한 해의 마무리를 가수 조항조와 함께하는 게 익숙하다는 듯 일사불란하게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물과 찻잔만 남긴 테이블에 앉아 조항조를 기다렸다. 신인가수 박건우가 나와 먼저 무대를 데울 때도 큰 박수로 맞았다. ‘무뚝뚝’ ‘누나가 딱이야’로 흥을 돋울 때 호응이 커서, 일찌감치 에너지가 소진돼서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조항조가 무대 중앙 뒤에서 마치 해가 떠오르듯 리프트를 타고 등장하자 뜨거운 함성으로 환영했다. 노래 ‘만약에’와 ‘가지마’를 함께 부르는 것으로 첫인사를 건넸다. 이어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남자들의 무거운 어깨를 두드리는 내레이션이 나올 때 몇몇 남성은 안경 사이로 눈물을 훔쳤다. 새롭게 편곡된 ‘남자라는 이유로’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고 남자 관객들의 얼굴이 환해지고 작게 따라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 남자 가수에겐 여성 팬이 많은데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조항조’, 성별 구분 없이 사랑받는 가수 조항조임이 재차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가수 조항조의 연말 콘서트는 담백했다. “제가 말재주가 없어서, 좀 더 재미있게 해 드려야 하는데…”라고 조항조는 송구함을 표했지만, 장르를 넘나드는 선곡과 이를 완벽히 소화해내는 가창력이면 충분한 무대였다. 지난 1978년 록그룹 ‘서기 1999년’으로 데뷔한 록커이고, 오래도록 밴드음악을 해온 싱어송라이터이고, ‘음유시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가사도 노래도 감성을 자극하는 발라더이고, 어느새 20년 넘도록 트로트 가수로서 전통가요 계에 새로운 색을 입히고 있는 조항조다운 정공법이었다.
조항조는 어느 순간 ‘광화문 연가’로 이문세가 되고,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로 김광석이 되고, ‘열애’를 부를 때는 윤시내가 되어 광폭 음역대를 자랑했다. ‘코피카바나’와 ‘겟 인 투 마이 카’를 부를 때는 뮤지컬영화 ‘그리스’의 존 트라볼타가 된 듯 남녀 무용단 및 코러스와 신나게 놀았다. 연습량이 보이는 귀여운 댄스로 객석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가장 뜨거운 열기는 ‘사랑찾아 인생찾아’ ‘고맙소’ ‘정녕’ 등 조항조 자신의 노래를 부를 때였다. 팬들은 떼창으로 화답했고 때로 일어서서 함께 박수하며 공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팬들의 신청곡 ‘돌릴 수 없는 세월’과 ‘옹이’ 역시 무대와 객석을 동시에 한껏 달궜다.
재미 보충에도 마음을 썼다. 옷 갈아입고, 철철 흘리는 땀을 잠시 식히는 시간에 후배 가수 무룡과 개그맨 오재미를 출동시켰다. 무룡은 조항조가 직접 만들어준 노래 ‘내 꿈은 이루어진다’와 ‘모성초’로 신인답지 않은 된장 뚝배기 매력을 발산했다. 오재미는 녹슬지 않은 입담으로 시동을 건 뒤 송창식, 최희준, 나훈아, 심수봉의 모창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현인, 남진, 나훈아, 심수봉, 최희준, 이주일, 심형래, 서유석, 맹구 9인의 목소리로 이제는 고인이 된 현인 선생의 ‘신라의 달밤’을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연말 디너쇼 조항조’의 가수 조항조는 참 순수했다. 평소 모습 그대로 꾸밈없이, 열심히, 자신이 가장 잘하는 ‘가창력 넘치는 무대’로 한 해 동안 자신을 지켜봐 주고 사랑해 준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길지 않은 한마디를 해도 진심을 담아 말했다. 팬들은 이미 그 정성스러운 준비와 오늘 밤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조항조의 진심을 아는 듯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열띤 응원을 보냈다.
예정된 공연 시간을 넘기며 조항조는 노래했는데, 놀라운 건 지치기는커녕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렸고 미성이 빛을 발했고 만면엔 웃음이 가득했다. 가까이에 선 팬들이 보내주는 사랑의 기적이었다.
3시간 넘게 지켜보며 든 생각, 가수 조항조와 팬들은 함께 살아가는 동료구나! 생색내고 표 내지 않아도 뭉근하게 서로를 지켜주는 존재였다. 그런 팬들에게 가수 조항조가 ‘어떻게 살 것인가, 가수로서 이렇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의 글을 바쳤다. 가수 자신, 또 팬들의 인생을 축원하는 ‘인생찬가’였다. ‘고맙소’를 부르는 조항조가 자신의 인생에게 쓰는 편지, “인생아, 고마워!”를 소개한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요?
내 인생에게!
인생아! 세월 참 빠르기도 하지. 어느새 내 나이가 인생 후반전이라니… 허무함일까? 왠지 서글퍼진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괴롭고 힘들 때도 내 인생아, 잘 버티며 살아줘서 고맙고….
크고 작은 일에 울고 웃던 삶 속에 내 몫만큼 열심히 잘살아줘서 고마워….
지금 이순간도 내 노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인생이어서 고맙구나!
남은 인생아, 내 노래를 사랑해주시는 사람들을 위해 계속 노래하며 살 수 있길 기도하며 살게…. 인생아, 고마워!
내 인생에게 항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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