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다방 랭킹 보니... 커피 유행 타고 등장한 '다방재벌'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2023. 12. 3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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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1970년 코리아 커피리포트

[이길상 기자]

1970년 1월 5일 서울에서 영하 20.2도가 관측되었다. 마음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전무후무한 한파였다. 1970년 1월은 커피 역사에서도 매우 우울한 뉴스가 전해져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1969년 여름에 내린 때아닌 서리로 인해 브라질의 커피 생산량이 52% 감소한 데 이어, 브라질 커피농장에서 커피녹병이 발견된 것이다.

커피나무 잎에 마치 녹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는 병이라서 '커피녹병'이라고 부른 이 병은 1867년에 실론섬(스리랑카)에서 발견된 후 20년 동안 실론, 인도 남부, 인도네시아의 자바 지역 커피 산업을 붕괴시킨 바 있었다. 1869년에 '헤밀레이아 바스타트릭스'라는 공식 명칭이 부여되었다. '바스타트릭스'는 라틴어로 파괴자를 의미한다. 세계 커피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던 아시아 커피가 소멸된 비극이었다.

이 무시무시한 병균이 100년 만에 세계 커피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브라질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세계 커피 시장을 뒤흔들었고, 순식간에 커피 가격은 급등했다. 커피 재고의 감소와 투기꾼들의 사재기가 커피 가격 불안을 가중시켰다. 커피 거래 가격은 12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커피 제품 생산 시설이 없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불법 커피가 난무하였다. 다방에서 버린 커피 찌꺼기로 가짜 미제 커피를 만들고, 콩가루로 미제 커피를 제조하여 판매하고, 미군 영내매점(PX)에서 커피를 빼돌리는 사건은 끊임없이 벌어졌다.

1969년 다방은 4613개
 
 1970년 4월 21일 자 <조선일보> 기사 "커피백과 - 한해 다방서 45억원어치 마셔"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커피의 대중화를 앞두고 있던 1970년 4월 21일 <조선일보>는 '커피백과'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197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시 한해 기준으로 다방에서 45억 원어치의 커피를 마셨다. 국세청의 과세자료를 보면 다방의 연간 판매액 62억 5500만 원의 60%가 넘는 45억 원이 커피 판매액이었다. 과세자료이기 때문에 실제 커피 소비량은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하루 평균 다방 한 곳에서 소비되는 커피를 3파운드로 계산하면 다방에서 소비되는 커피의 양은 연간 2500톤, 가정에서의 소비량까지 합하면 3000톤 이상이라는 추산이었다.

당시 정식 수입이 가능했던 반도호텔 등 소수의 관광호텔 사용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커피는 미군 PX를 통해 유출된 불법 물건이었다. 다방은 1969년 말 당시 4613개에 달했다. '커피망국론'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커피의 '습관성 마력'은 실생활 깊숙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당시 커피 유행을 타고 '다방재벌'도 등장하였다. 왕실다방에서 출발한 이모씨 스토리였다. 이씨는 당시 다방 하나와 그릴 8개를 소유한 예비재벌이었다고 한다. 이 기사에 나타난 전국의 다방 랭킹을 보면 서울의 '해남'이 1위, 다음이 '티파니' '파레스' '오림프스' '한일' '동양' '회정' '극동'(부산) '성궁' '라일구' 순이었다.

이 신문은 커피를 제대로 끓이기 위해 지켜야 할 철칙 7가지를 소개하였다. 반드시 끓고 있는 물을 사용할 것, 커피 넣는 시간을 오래 끌지 말 것, 커피의 분량과 물의 분량은 꼭 규정대로 할 것, 커피 끓이는 기구는 항상 깨끗이 할 것, 한번 끓인 커피는 다시 끓이지 말 것, 한번 끓인 커피 찌꺼기에 새 커피를 보태 끓이지 말 것, 끓인 뒤에 되도록 빨리 마실 것 등이다.

"하루 10잔 넘게 마시면 위험하다"

커피 끓이는 방법은 세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는 주전자에다 끓여서 만드는 보일드 커피, 둘째는 걸러서 만드는 필터드 커피, 셋째는 퍼코레이트나 사이폰이라는 특수 주전자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가장 이상적이고 손쉬운 방법이라고 소개한 것은 두 번째인 필터드 커피, 즉 드립식 커피였다. 커피의 짙은 향기를 잃지 않고 마실 수 있는 방법인데, 당시 필터를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이 신문은 융이라는 부드러운 천을 이용하여 드립 도구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였다. 이 신문의 표현을 빌리면 "커피 끓이는 솜씨가 주부학의 주요 항목"이 된 시대였다.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뿐 아니라 세계의 커피 문화도 소개되었다. 당시 커피 소비는 서구인들이 주도하고 있었다. 미국이 전 세계 커피 소비량의 50%를 차지할 정도였고, 이어서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영국 등이 많은 커피를 소비하고 있다는 정보와 함께, 이 신문은 영국의 시인 T.S. 엘리어트가 남긴 유명한 말 "서구인들은 인생을 티스픈으로 재며 허비한다"를 인용하였다.

비록 커피 소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서양이지만 "커피는 서양의 차만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은 흥미롭다. 서양보다도 동양에 더 유명한 커피 원산지가 깔려 있어 커피는 "동양의 차이기도 하다"는 주장이었다. 세계 최고의 맛을 내는 아라비안 모카, 인도네시아의 만데린과 자바로부스타를 예로 들었다. 동양 사람이 커피를 마시는 것은 서양의 습성을 어거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에서 나는 산물을 동양 사람이 즐겨 마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재미있는 논리였다.

"하루 10잔 넘게 마시면 위험하다." 이 신문은 커피가 몸에 주는 좋은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정리하여 다루었다. 내용을 보면 꽤 과학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커피의 주성분은 당분 43%, 지방질 12%, 카페인 1.4% 등인데, 커피의 향긋하고 구수한 맛은 휘발성 물질인 카페올 때문이다. 커피는 중추신경과 근육을 자극하는 흥분각성 작용과 심장활동 촉진 작용을 한다. 관상동맥을 확장시켜 이뇨 작용을 돕고, 위산 분비를 활발하게 하여 피로를 풀어주고 상쾌한 기분을 내게 한다. 두통에도 좋다.

물론 하루에 1~3잔 정도가 적량이며 10잔 이상 마시면 여러 가지 질병을 가져올 수 있다. 커피를 마신 후에 독한 술을 마시거나, 한번 끓였다가 식은 커피를 다시 끓여 마시는 것은 매우 해롭다. 커피보다 홍차에 카페인이 더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 카페인을 제거한 커피가 독일에서 발명되어 미국에서 널리 소비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하였다.

커피 공식 수입액은 1억 8000만 원인데, 소비액은 45억 내지 125억 원
 
 1970년 5월 18일 자 <동아일보> 기사 "커피 - 브라질 흉작들면 파동, 작년 소비 125억 원"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에 뒤질세라 <동아일보>도 1970년 5월 18일 자에서 '브라질 흉년들면 파동, 작년 소비 125억 원'이라는 제목의 커피 특집을 실었다. 1969년 7월에 내린 서리 때문에 브라질의 커피 수확이 급감한 이야기, 뉴욕 커피시장에서 브라질 산토스4호 커피 가격이 1킬로그램당 81센트에서 1달러 20센트로 상승한 이야기, 콜롬비아나 과테말라 커피가 어부지리를 얻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신기한 것은 커피의 주 소비지인 미국과 유럽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커피 시장은 평화로웠다는 사실이다. 1969년 1년 동안 125억 원어치 이상의 커피가 팔렸다. <조선일보>의 추정 소비액과는 차이가 컸다.

국내 커피 시장이 동요하지 않은 이유는 PX 경제 덕이었다. 미국이 해외 주둔 미군에게 대량 보급하는 저렴한 커피가 우리나라의 커피 시장 안정을 가져왔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커피 공식 수입액은 1억 8000만 원인데, 소비액은 45억 내지 125억 원이었다.

커피를 마셔야 하는 '문화인'이 있고, 눈감아주는 당국이 있고, PX 경제의 재미를 보는 상인이 있기 때문에 한국은 세계에 유례없는 '다방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해에 해태제과에서 '부라보콘', 롯데제과에서 '왔다껌', 삼양식품에서 '소고기면' 등 스테디셀러가 출시되었다. 정부와 언론이 앞장서서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를 외쳐댔지만, 신생아 수가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선 것이 1970년이었다.

고급스런 음악다방에서는 이 해 4월에 해체된 비틀스의 마지막 발표곡 '렛 잇 비(Let It Be)'가 흘러나왔고, 동네 다방에서는 펄시스터즈의 신곡 '커피 한 잔'이 울려 퍼졌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교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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