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영토분쟁지역"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전량 회수 사태를 보며
[박석진 기자]
▲ 독도 없는 국방부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국방부가 우리 고유 영토인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군 장병 정신교육 교재를 전량 회수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28일 입장문을 내고 "기술된 내용 중 독도영토 분쟁 문제, 독도 미표기 등 중요한 표현 상의 문제점이 식별되어 이를 전량 회수하고, 집필 과정에 있었던 문제점들은 감사 조치 등을 통해 신속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문제가 된 독도 없는 한반도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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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발행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가 논란이다. 이미 배포된 2만여 권의 책들이 전량 회수되는 등 초유의 사태다.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기술한 것이 주된 문제로 지적되지만 군대에서 진행하는 정신전력 교육은 이미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군대 내에서 진행된 정신전력 교육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일반적인 양상은 정권이 교체되거나, 지배 정치권력이 지향하는 안보정책이나 국가시책의 홍보 및 국민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중에는 단지 정부정책의 홍보 차원을 넘어서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는데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 당시 두드러졌다.
박정희 정부는 군 정신(전력)교육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군대의 무형전력으로서 정신전력개념을 제기해 강화시켰다. 아울러, 군 정신(전력)교육을 정권의 철저한 홍보도구로 활용했다.
정권 초기에는 5⸳16 군사쿠테타를 혁명으로 미화해 군 전체에 혁명정신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했으며 유신시기에는 기본교육은 물론 특별정훈교육을 강화해 유신의 정당성을 홍보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진행된 새마을운동 역시 빠지지 않는 군 정신전력 교육의 내용이었다.
정권의 정당성 및 정책 홍보와 더불어 박정희 개인에 대한 영웅화도 교육내용에 포함되었는데 다음의 내용에서 그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겨레와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며 그리고 함께 소탈하게 웃어주시는 우리 대통령 각하! 폭우가 쏟아지면 홍수 걱정과 가뭄이 계속되면 한해대책(旱害對策)에 잠 못 이루시는 박대통령 각하는... (중략)... 빛을 보지 못했던 민족의 슬기로운 저력을 발굴하신 한편, 5천만 겨레의 염원인 조국통일 대업을 위해 유신(維新)의 횃불을 밝히신 전략가이며 개척자이시다." ([기본정훈교재] 국방부, 1973년, 191p)
전두환 정부 시기에도 통치자 개인에 대한 영웅화가 군 정신전력 교육 교재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난세는 영웅을 낳고, 영웅은 역사를 만든다는 말과 같이 '10⸳26 사태' 이후 구심점을 잃고 혼손 속에 표류하던 우리 국민들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께서 원대한 경륜과 포부,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중략)... 민심이 천심으로 전두환 대통령 각하를 영도자로 모신 제5공화국이 출범하여 선진조국창조를 위한 대장정을 시작하게 됨으로써 이는 제2의 광복이며, 조국과 번영의 영광을 기약하는 증좌임이 분명하다." ([선진국군] 국방부, 1984년, 18p)
통치자 개인에 대한 영웅화 도구 되기도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군 정신(전력)교육교재의 내용에서 위와 같이 통치자 개인을 우상화하는 내용은 사라지지만, 언급했다시피,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군 정신전력 교육의 내용 속에 해당 정권의 안보정책이나 국가시책이 반영되는 양상은 변함없이 지속되어 오고 있다.
현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의 모태는 1976년 발행된 '국군정훈교정'으로 볼 수 있는데 2000년대 이후 5년 마다 발행되는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기본적으로 '국가관', '안보관', '군인정신'의 세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필자는 2020년 국회에서 진행된 평화통일 교육 관련 토론회에서 2013년과 2019년에 발행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를 분석해 발표한 바 있는데 당시 확인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가관 영역'에서는 두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우월성을 설명하며 북한 체제에 대한 비난과 비하의 내용이 주된 구성이라는 점, 통일과 관련해 남한의 정치경제체제를 중심으로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는 점이 문제점으로 파악되었다. 남과 북이 역사적 과정을 통해 상호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기로 한 상황에서 이 같은 기술 방향은 적절하지 않다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2019년 판의 경우 당시 남북 간의 평화정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정신전력'과 관련한 군대의 입장은 변화하지 않고 기존의 기술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주목되었다.
'안보관 영역'에서는 2019년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서는 주적 개념이 없어졌으나 2013년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는 주적 개념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적 개념의 문제점은 특정 국가나 대상을 주된 적으로 규정하는 군의 안보관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2001년 북한의 문제제기에 따라 주적개념을 국방백서에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관련해 국방부가 실시한 주요 국가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나라가 특정 국가나 대상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군사강국들이 그러했으며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과 같이 상시적인 분쟁상태에 있는 국가들도 주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특정 대상에 대한 적 규정이 가져올 적대관계의 심화를 굳이 주적 개념을 공표함으로써 자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군인정신 영역'에서는 2013년 판에 비해 2019년 판에서 긍정적인 내용이 확인되었다. 군인의 기본권을 언급하며 군인 역시 군복 입은 시민이라는 주제가 기술된 점,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건의권 등이 기술된 점, 전쟁법 관련해 민간인 보호 등 국제인도법의 내용이 소개된 점 등이 그것이다.
독도 외 여러 문제 재검토 되어야
최근 문제가 된 2023년 판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 전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진 못했으나, 독도 문제가 드러나기 전에도 이번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여러 문제점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적개념의 재기술,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에 대한 미화, 우리사회 내부의 위협세력을 거론한 점 등이 언론보도를 통해 문제점으로 지적된 바 있다.
전량 회수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감수를 통해 다시 만들어질 것이라고 한다. 독도 문제는 당연히 수정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 외 다른 여러 문제점들도 재검토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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