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동성애자인 '덕분에', 선물을 받았다는 엄마
[곽소영, 차민경 기자]
▲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의 한 장면. 토론토 프라이드에서 행진하는 비비안(강선화). |
ⓒ 연분홍치마 |
아들이 게이인 것이 선물이라 말하는 엄마가 있다. 33년 차 항공 승무원이자 성소수자 부모모임 7년 차 활동가 비비안, 강선화(54)씨다. 지난 6일 만난 그는, 7년 전 21살이던 아들의 편지를 받은 이야기부터 꺼냈다. 아들이 쓴 편지의 첫 문장은 '나는 동성애자입니다'였다.
"예준이가 쓴 편지 내용에 그런 게 있어요. 내가 커밍아웃하는 이유는 엄마 아빠가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나를 받아들여 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내 세계를 이만큼 다 보여주고 친밀하게 지내기 위해서 하는 거라고요. 그게 제 마음을 진짜 울렸어요."
이후 아들의 부탁으로 성소수자부모모임에 참석하게 됐다. 매달 한 번씩 모이는 정기모임은, 12월 10일 100회를 맞이했다. 그 사이 비비안은 단체 운영위원이 됐다.
"처음 커밍아웃을 받았을 때 저는 죄책감부터 출발했어요. 아들한테는 위로랍시고 힘든 인생을 살게끔 내가 이렇게 낳아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그게 상처가 되는 말이란 걸 알지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대치였어요."
곧 유학길에 오를 아들을 위해 딱 6개월만 나가리라 다짐했던 부모모임에서 아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자신이 품을 수 있는 세상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제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세상에 대해서. 저는 참된 용인(미국 필라델피아 지부의 성소수자 부모-가족 모임은 '커밍아웃을 받은 부모가 겪는 6단계'를 충격-부정-죄책감-감정 표출-결단-참된 용인으로 설명한다)까지 한 1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근데 가만히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때 활동을 시작한 거죠. 가만히 있으면 절대 얻어지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았'고, 영화에까지 출연하게 됐다. 2021년 개봉한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나비'와 '비비안'이 울고 웃으며 자녀를 인정하고 함께 세상에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선화씨가 아들의 커밍아웃을 받고 겪었던 혼란과 포용 그리고 성장의 과정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겼다.
"예준아, 다 네 덕분이야"
활동가 비비안으로서 첫 활동은 인권 포럼의 패널로 참여해 커밍아웃을 받은 부모들의 마음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선화씨는 강의실에 앉아 있는 80명의 학생들이 자기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우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이후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을 찍고 GV(관객들과의 대화)를 다니며 선화씨는 그것이 자신의 강점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제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더라고요. 얘기를 술술 하니까 감독님이 저보고 카메라 앞에서 솔직하대요. 그래서 카메라 앞에서 솔직한 게 아니라 저는 그냥 솔직한 사람입니다, 이랬어요."
영화가 개봉한 뒤 선화씨의 일상은 180도 바뀌었다. 비비안의 목소리가 필요한 곳이라면 전국 방방곡곡 쪽잠을 자고 끼니를 거르며 다녔다. 최근에는 미국에 있는 6개의 대학을 찾아가 GV를 진행하기도 했다. 100번이 넘는 <너에게 가는 길> GV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대본 하나 없이 관객과 눈 맞추고 이야기했다.
"저는 옛날 사람이라 '여성이 막 이렇게 나대면 안 된다'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정말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사람인지를 잘 모르고 지냈던 거죠. (GV를 다니다 보니) 내가 솔직하게 얘기하는 일을 좋아하더라고요. 사람이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죽을 수도 있다고 하잖아요. 이렇게 알게 된 게 참 감사하죠."
자녀들이 모두 독립하고 빈 둥지 우울증을 걱정할 줄 알았던 그의 50대는 버라이어티 그 자체였다. 미국 GV를 다니는 동안 선화씨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예준아, 다 네 덕분이야. 엄마가 어디 가서 이런 환대와 환호를 받겠니?' 비비안으로 활동하며 그가 성소수자 부모로서 이끌어낸 환대와 환호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으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왔다.
▲ 성소수자 부모모임 100회차 정기모임 홍보 포스터 |
ⓒ 성소수자 부모모임 |
인터뷰 며칠 후(12월 10일)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100회차 정기모임을 앞두고 있었다. 6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부모모임은 초창기 자조 모임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다 '부모님한테 커밍아웃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당사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어떤 스타일인데요?', '종교는 있으세요?' 하며 물꼬를 튼 대화가 모이자 성소수자 부모라서 낼 수 있는 하나의 목소리가 되었다.
"(부모모임 초창기에) 모임을 만들었으니 우리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게 중요하다 싶어서 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고 그 다음에 지역 모임을 만들면 참 좋겠다 싶었대요. 우리 지금 이거 다 했거든요."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어느덧 100회를 맞아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축하 파티를 연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회원 후원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지지자가 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저희가 매년 퀴어퍼레이드를 가잖아요. 진짜 매년 혐오 세력이 줄어들어요. 그냥 현수막만 걸려있고 실제로는 마이크 들고 있는 한 두 명뿐이거든요."
성소수자 부모모임과 혐오 세력이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이유는 같다.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부모모임이 처음으로 퀴어 퍼레이드를 참가했을 당시 '너희 부모는 네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아냐'는 반대편 사람들의 단골 멘트였다. 이를 향한 성소수자 부모들의 대답은 확실하고 강력했다.
▲ (좌)퀴어 퍼레이드에서 사용한 피켓. (우)동성혼 법제화 캠페인 ‘모두의 결혼’ 포스터 . |
ⓒ 곽소영 |
▲ 퀴어 퍼레이드에서 프리허그를 하는 부모모임 활동가 . |
ⓒ 닷페이스 |
퀴어 퍼레이드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 활동가들이 빼놓지 않는 활동도 있다. 바로 프리허그다. 자신의 부모에게서 "무조건적인 포용" 반응을 기대하기 힘든 당사자들을 부모모임 활동가들이 꽉 안아준다. 어떤 당사자는 프리허그 덕에 1년 동안 살 힘을 얻어간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퍼레이드에 오시는 당사자분들이 프리허그를 못 하겠대요, 너무 울까 봐. 그래서 부모모임 부스 근처에도 안 간다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용기 내서 오시는 분들은 저희가 성심성의껏 잘 안아드리죠. 서로 안아주면서 잘 살아내 줘서 고맙다는 얘기도 하고요. 저도 처음엔 많이 울었는데 요즘은 안 울어요. 베테랑이 된 거죠."
7년 차 활동가가 말하는 '연대'
7년 차 베테랑 활동가가 된 선화씨는 요즘 새로운 콘텐츠에 힘을 쏟고 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유튜브 채널의 '비비안의 무지개식탁'이다. 이영지가 진행하는 유튜브 웹 예능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의 열성 팬이라는 그는 대본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성소수자 부모모임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집에 놀러 온 손님을 대하듯 음식을 대접하고 깊고 솔직한 얘기를 나누는 것이 '비비안의 무지개식탁' 특징이다.
"제가 기획하고, 섭외하고, 작가도 하고, 음식도 해요. 촬영일 하루 잡아서 4명씩 찍고 그러는데, 머리를 묶었다가 풀었다가 하고 옷도 여러 번 갈아입어요."
영화를 찍었던 2021년도와 개인 콘텐츠까지 기획하고 있는 지금, 무엇이 가장 달라졌는지 물었다.
"이제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젠 이게 제 일이 된 것 같아요. 활동가 비비안의 일."
GV를 다니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는 한 목사님이 했던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손을 번쩍 드시더니, 저한테 이러는 거예요. 비아냥거리면서 '비비안님은 자기 자식이 뭐가 그렇게 자랑스럽습니까'래요. 승무원 33년 차면 상대방의 나쁜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기술이 생기거든요. 근데 방심했던 거죠. 눈물이 나버렸어요."
▲ 7년차 활동가 비비안, 강선화씨 |
ⓒ 곽소영 |
아들의 커밍아웃을 계기로 소수자의 삶을 깊게 들여다본 그는 이제 소수자에게 '연대'가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독립된 단체가 된 후 장애인, 이주민, 성폭력 피해자 등 다양한 소수자 단체와 연대활동 펼쳤다. 다른 단체가 무언가를 할 때 같이 이름을 올려주고, 서명을 받고, 기자회견에 참석하면서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서 잘 살자'가 됐다고 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관심이 가니까 책도 보게 돼요. 열심히 알아내야 하는 게 세상인데, 연대활동 통해서 배우는 게 많아서 너무 좋아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그나마 좀 높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더 앞에 나서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그는 내년부터 대대적인 활동을 시작할 동성혼 법제화 캠페인 '모두의 결혼'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똑같은 국민인데 왜 국가라는 조직이 결혼을 못하게 해요? 제가 33년 동안 세금을 내고 있는데, 내가 낸 세금으로 일하시는 공무원분들이 우리 아들의 혼인신고서 하나를 수리 안 해준다는 게 이해가 안 되거든요. 이제 우리 단체가 또 앞장 서서 연대해야죠."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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