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 편의점에 날아든 총알, 여자의 선택은
[김성호 기자]
▲ 노 엑시트 포스터 |
ⓒ (주)이놀미디어 |
출구가 없다. 직역하면 '사냥당한 이들의 밤' 정도가 될 < Night of the Hunted >란 영화는 한국에 들어와 원제를 <노 엑시트(No Exit)>로 바꿔달았다. 무엇이 출구가 없다는 절망을 일으켰을까. 원제에 든 사냥이라는 단어가 이 영화의 정체성이 어떠한지를 그대로 내보인다.
영화는 단순하고 간명하다. 주유소와 편의점을 겸하는 미국 어느 외딴 상점에 한 커플이 들어선다. 남자(제레미 시피오 분)와 여자(카밀 로우 분)는 불륜관계인 모양, 남편인 듯한 이와 통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기는 모습이 천연덕스럽다.
아무튼 둘은 일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모양인데, 차에 기름이 없어 주유소에 정차한 참이다. 여자는 편의점으로 물건을 사러 들어가고 남자는 차에 남아 기름을 넣는다. 가게에 들어선 여자는 이내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한참을 기다려도 점원이 나타나지 않아 계산할 수가 없고, 주변을 돌아보니 카운터 뒤편에 핏자국이 낭자하다. 여자가 황급히 나가 도움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창문이 깨지고 총알이 가게 여기저기를 때린다.
▲ 노 엑시트 스틸컷 |
ⓒ (주)이놀미디어 |
한밤 중 외딴 편의점, 총알이 날아든다
영화는 남자가 여자를 죽이려는 이유를 표면 아래 감추어 두고 긴장을 유지하려 든다. 조금만 모습을 드러내도 당장 총알이 날아오는 긴박한 상황 가운데 무전기를 통해 범인과 나누는 대화가 특별한 인상을 자아낸다. 범인(J. 존 빌러 분)은 제가 가게 점원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며, 제 아내가 다른 사내와 바람을 피워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화 속에서 석연찮은 점을 여럿 발견한 여자는 그가 실은 점원의 남편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가게 안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이 발견되고, 그것이 그가 이 가게의 점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침 가게엔 한 사람이 도착하고 제가 죽은 점원의 친구였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죽은 여자가 결혼한 적 없다는 증언까지 듣게 되지만 말해 준 사람이 범인의 저격을 피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다시 얼마쯤 시간이 흘러 가게엔 기름을 넣으려는 노부부가 도착하고, 그들 역시 범인의 총을 맞아 비명횡사하고 만다.
▲ 노 엑시트 스틸컷 |
ⓒ (주)이놀미디어 |
출구 없는 90분의 재난, 여자의 선택은?
대표적으로 제임스 캐머런이 연출한 <에이리언 2>를 들 수 있겠다. 시리즈 가운데서도 명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우주공간에서 외계생명체가 인간을 공격하는 위기 속에서 주인공인 리플리가 어린 꼬마아이 뉴트를 지키려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수세에 몰린 인간이 제가 지켜야 할 약한 존재 앞에서 강해지는 모습이 <에이리언 2>로부터 <노 엑시트>에 이르는 일련의 스릴러 영화 속에서 발견된다는 점이 몹시 흥미롭다. 인간이란 제가 지켜야 할 누구를 통하여 불굴의 용기와 기지를 발휘하게 되는 존재인 걸까.
제목처럼 출구 없는 미로 같은 상황이 9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지속되는 영화다. 일견 답답해질 수 있는 상황을 영화는 여자아이의 등장과 그를 지키기 위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는 여자의 선택을 통해 타개해 나간다. 그로부터 이야기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파격으로 이어져 극에 색다른 재미를 불어넣는다.
그저 OTT 서비스를 통해 유통되고 사라지는 시간죽이기 용도의 영화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노 엑시트>가 그리는 테러는 미국사회에선 엄존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사회적 논란 끝에 총기 규제가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밀거래 시장이 워낙 크고 누구나 값싼 가격에 쉽게 총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 노 엑시트 스틸컷 |
ⓒ (주)이놀미디어 |
범인의 서사, 신극우의 폭주
장르영화에 가까운 <노 엑시트>에서 그래도 인상적인 대목은 범인의 성향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이다. 참전군인 출신으로 트럼프로 대표되는 신우파 지지 성향을 감추지 않는 그의 모습은 미국 내에서 사회 문제로 떠오른 극우주의를 연상케 한다. 기존 하위문화 수준으로 잠재돼 있던 극우주의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무대로 결집해 마치 정치세력처럼 저만의 감수성을 드러내는 모습을 미국 언론은 지난 수년 간 경계하며 지켜봐왔다.
앤절라 네이글의 <인싸를 죽여라> 같은 작품이 분석한 바 있는 새로운 극우, 즉 인종차별과 반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경향에 대한 조롱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이와 같은 성향을 드러내는 전형을 범인으로 설정함으로써 현 미국 사회가 경계해야 할 개인적 폭주가 어떤 모습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노 엑시트>는 올해 들어 한국에서도 발생한 대량살인의 끔찍한 범행을 떠올리게 한다. 총기가 없음에도 연달아 일어난 대량살인 범죄의 흐름이 어째서 일어나는 것인지, 또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르는 범인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한국사회가 제대로 살피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한 편의 장르영화로부터 현실을 떠올릴 밖에 없는 건, 장르영화 또한 현실에 터를 잡고 그로부터 가지를 뻗는 예술의 일파이기 때문일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내년에 50인데 웹툰 작가 도전합니다
- '악뮤' 수현의 오열에서 위로받은 이유
- 나도 따라하고 싶은 <싱어게인 3> 임재범의 심사평
- 쏟아져 나온 식당·카페 '인증샷'... 15년 노력이 와르르
- 빅데이터 전문가가 예견한 미래, 이 드라마에 답 있다
- 김건희 특검법 통과 후 첫 주말 "거부하면 윤석열 탄핵" 집회
- "한 달에 120만 원, 노인이 어디서 이런 일자리 구하겠어요"
- "휠체어로만 이동할 수 있는데... 장애등급이 안 나옵니다"
- [빈손 명-낙 회동] 들어갈 땐 같이, 나올 땐 따로... 이낙연 "제 갈 길 간다"
- "안산 떠난 뒤에도, 아플 땐 언제든 여기서 쉬었다 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