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앞둔 대만 대선 판세 여전히 오리무중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김규환 2023. 12. 31.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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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민진당 후보가 가장 앞서고 제1야당 국민당 후보가 맹추격
여론조사서 1·2위 후보 간 지지율 격차 동률부터 10%P 이상도
반중·친중 후보 대결 벌여 패권경쟁 벌이는 美·中 대리전 성격
中 대선 개입·젊은 표심·주중 대만인 대선 주요 변수로 떠올라
대만 집권여당 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 대선 후보가 지난 21일 이란현에서 유권자들의 손을 잡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대만 총통(대통령) 선거가 내달 13일 실시된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친미·독립 성향의 집권 민주진보당(民進黨)과 친중 노선을 표방하는 제1야당 국민당(國民黨) 후보 간의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다.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은 만큼 누구라도 삐끗하면 순위가 뒤바뀔 정도로 후보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연합보(聯合報) 등에 따르면 라이칭더(賴淸德·64) 민진당 후보는 반중(反中)정서를 등에 업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라이 후보는 올들어 여론조사에서 1위 자리를 도맡아 놓고 있을 만큼 상승세가 뚜렷하다. 그 뒤를 허우유이(侯友宜·66) 국민당 후보가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 불안을 부추기며 라이 후보를 맹추격하고 있다. 중도 노선의 커원저(柯文哲·64) 민중당(民衆黨) 후보는 실용·균형외교를 외치며 막판 대역전극을 노리고 있다.

인터넷 매체 미려도전자보(美麗島電子報)가 지난 25~27일 20세 이상 성인 12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99차 여론조사에서 라이 후보는 지지율이 40.0%로 허우 후보(28.9%)를 11.1%포인트(p) 차로 앞섰다. 커 후보는 17.6%로 오름세를 탔으나 두 후보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8%p다. 선두 두 후보 간 격차는 직전 조사보다 더 벌어졌다. 98차 조사에서는 라이 후보(38.7%)와 허우 후보(29.7%)의 격차가 9%포인트였다. 커 후보는 16.6%였다.

뉴스전문채널 TVBS가 22∼28일 20세 이상 성인 10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라이 후보가 37%로 허우 후보(33%)를 근소한 차로 밀어내고 선두를 유지했다. 커 후보는 22%였다. 반면 연합보가 13~17일 성인 1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라이 후보와 허우 후보의 지지율이 31%로 동률을 기록했다. 커 후보는 21%였다.

이번 대선은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민진당은 미국, 국민당은 중국을 대신해 싸우고 있다는 얘기다. 대선 결과에 따라 미·중 패권경쟁 구도에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전망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적전(臺積電·TSMC)를 보유한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기술패권을 다투는 미·중 모두에 대만은 포기할 수 없는 자산이다. 민진당이 집권할 경우 양안관계가 요동칠 것이고, 국민당이 집권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1야당 국민당의 허우유이(오른쪽 두번째) 대선 후보가 지난 29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선거 유세 도중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라이 후보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보다 반중 색채가 더 짙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과의 군사적 밀착을 강화하는 게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지키는 길이라고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대만의 자위권 강화를 위한 측면 지원에 나서며 화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2일 8863억 달러(약 1139조원)에 이르는 내년 국방예산안을 담은 국방수권법에 서명했다. 여기에는 대만군에 대한 포괄적인 훈련·조언, 능력 구축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중국은 ‘북풍(北風)’으로 맞서고 있다. 대만을 향해 군사·경제·문화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대만통일 의지를 밝힌데 이어 대만 주변해역에서는 군사 활동을 펼치며 반중 성향 유권자들을 향해 위협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시 주석은 26일 열린 ‘마오쩌둥(毛澤東) 탄생 130주년 기념 좌담회’에서 “조국통일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며 대만통일 의지를 강력히 밝혔다. 그는 “조국의 완전한 통일은 대세이고, 대의(大義)에 부합하며, 인민들이 바라는 바다. 조국은 반드시 통일돼야 하며, 필연적으로 통일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중국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 나왔기에 경고 메시지로 읽힌다

중국의 군사 활동도 거칠어지고 있다.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인민해방군 소속 젠(殲)-16 전투기 4기, 윈(運)-8Q 대잠초계기 등 22기의 중국 군용기가 24일 대만해협의 중간선을 넘어 정찰활동을 전개했다. 중간선은 1955년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선언한 비공식 경계선이다. 20일에는 중국에서 날아온 ‘정찰풍선’도 탐지됐다. 정찰풍선이 대만 상공에 나타난 것은 이달에만 네 번째다.

경제적 압박 수위도 높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대만문제 총괄기관인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천빈화(陳賓華) 대변인은 27일 "민진당의 (대만) 독립 지지가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관련문제의 근본 원인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만은 어디로 가야 할지 갈림길에 직면해 있다"며 "대만의 독립은 전쟁을 의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 대선 후보가 지난 17일 대만 타오위안시에서 유권자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EPA/연합뉴스

ECFA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 2010년 9월 발효된 양자협정이다. 이 협정을 바탕으로 지정품목에 대한 관세 인하·철폐를 약속한 조기 자유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이 덕분에 대만은 267개, 중국은 539개 품목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내년부터 대만에서 수입하는 화학제품 12개에 대한 관세 인하를 중단하기로 했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가 20일 대만산 12개 품목에 대해 오는 1월1일부터 양안 ECFA에 따라 적용해온 관세 감면을 중단하고 현행 규정에 따른 세율을 부과하기로 했다. 관세감면 중단대상은 프로필렌, 부타디엔, 이소프렌, 파라자일렌, 염화비닐 등 화학 품목이다.

중국은 대만의 젊은 표심을 얻기 위해 연예인도 활용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은 28일 대만 록밴드인 우웨톈(五月天·Mayday)에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을 공개 지지하라고 ‘협박’했다. 우웨톈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협조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웨톈은 ‘중화권의 비틀즈’라고 불릴 정도로 대만은 물론 중국, 홍콩 등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밴드다. 지난달 상하이 콘서트에서 립싱크를 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광전총국(한국 방송통신위원회격)은 언론·콘텐츠에 대한 검열권을 갖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거주 대만인과 젊은 층이 대선 변수로 떠올랐다. 국민당은 중국에 거주 중인 대만인들의 '귀향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샤리엔(夏立言) 국민당 부주석은 대만과 인접한 푸젠(福建)성 샤먼(厦門)을 포함한 중국 남부 5개 지역을 순방했다. 방문 기간 현지 대만 기업인들을 만나 중국 거주 대만인들에게 "(대선 기간) 대만으로 돌아가 투표해달라"고 독려했다.

ⓒ 자료: 대만 미려도전자보

SCMP는 “그의 이번 방중은 주중 대만 재계로부터 표를 확보하려는 명백한 노력”이라며 “국민당의 오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는 대만 전체 인구의 5%인 120만명의 대만인이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대부분 국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SCMP는 덧붙였다.

중국이나 안보보다 경제를 더 중시하는 젊은 청년들의 표심이 선거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만 유권자의 16.2%를 차지하는 20대가 예측 불가능한 이번 대선의 균형을 깨뜨릴 것이라고 전했다. 린칭(26)은 “선거철이 되면 국가안보와 중국만 이야기할뿐 경제와 장기적인 현안을 말하는 정치인은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변수는 3위를 달리는 커 후보의 사퇴 여부다. 라이 후보와 허우 후보의 2파전으로 좁혀질 경우 허우 후보가 막판 역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양안 갈등에 따른 전쟁 위협이 고조되면서 피로가 쌓인 유권자들이 친중 후보로 결집할 수 있는 까닭이다. 다만 커 후보가 완주 의사를 밝힌 만큼 사퇴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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