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역수출→화이트삭스 한솥밥…페디+플렉센, 'ERA 23위' 선발진 바꿀까
(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수준급 선발투수가 대거 FA(자유계약) 시장에 나온 가운데, 올겨울 선발진 보강에 나선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KBO리그 유경험자'를 둘이나 품었다. '2023 KBO리그 MVP' 에릭 페디와 '2020 KBO 포스트시즌 맹활약' 크리스 플렉센이 그 주인공이다.
먼저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페디였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을 비롯한 미국 현지 언론은 지난 6일(이하 한국시간) "페디가 화이트삭스와 2년 1500만 달러(약 195억원)에 계약했다"고 보도했다.
2014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8순위로 워싱턴 내셔널스에 지명된 페디는 2017년 빅리그에 입성했다. 다만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페디는 그해 3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고, 이듬해에는 11경기 50⅓이닝 2승 4패 평균자책점 5.54로 빅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2019년 21경기 78이닝 4승 2패 평균자책점 4.50을 마크한 페디는 선발로 12경기, 불펜으로 9경기를 소화했다.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2020년에는 11경기(선발 8경기) 50⅓이닝 2승 4패 평균자책점 4.29의 성적을 남겼다.
비교적 기회가 많았던 시기는 2021년과 2022년이었다. 페디는 두 시즌 연속으로 20경기 이상 선발 등판하면서 각각 29경기(선발 27경기) 133⅓이닝 7승 9패 평균자책점 5.47, 27경기 127이닝 6승 13패 평균자책점 5.81을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빅리그 통산 성적은 102경기 454⅓이닝 21승 33패 평균자책점 5.41.
지난 시즌 이후 논텐더로 방출된 페디는 변화를 택했다. 미국에서 다른 팀을 알아보지 않고 한국행을 결심, NC 다이노스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2023년 KBO리그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다.
시즌 내내 NC 선발진의 한 축을 책임졌던 페디는 30경기 180⅓이닝 20승 6패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했고, 209개의 탈삼진을 솎아냈다. 특히 외국인 투수로는 역대 최초로 20승-200K를 달성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국내 투수까지 포함하면 1986년 선동열(24승-214탈삼진) 이후 37년 만의 일이었다.
평균자책점, 다승, 탈삼진 부문까지 투수 '3관왕'에 오른 페디는 올해 신설된 KBO 수비상 투수 부문과 더불어 정규시즌 MVP까지 휩쓸었다. 지난 11일 개최된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는 무려 267표(91.8%)를 획득하며 케이시 켈리(LG 트윈스), 고영표(KT 위즈) 등을 큰 차이로 따돌리고 황금장갑까지 품었다.
당연히 NC는 2024년에도 페디와 동행하길 희망했고, 계약 조건을 제시한 뒤 그의 대답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일찌감치 스카우트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페디는 한국에 남지 않고 빅리그 재입성을 선택했다.
지난 9일 '페디는 어떻게 화이트삭스에서 기회를 얻게 됐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MLB.com은 "페디와 화이트삭스가 만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올해 KBO리그를 평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크리스 게츠 화이트 삭스 단장은 "페디는 (KBO리그에서) 스위퍼(변형 슬라이더)를 장착했고, 이전보다 싱커가 더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자와의 승부에 있어서도 계획을 변경하는 등 KBO리그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우리는 KBO리그 타자들과도 (투수들에 대해) 얘길했는데, 페디가 가장 승부하기 어려운 투수라고 했다. 수치들이 그걸 보여준다"고 치켜세웠다.
페디를 품은 화이트삭스의 선발진 보강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MLB.com을 비롯한 미국 언론은 30일 "플렉센이 화이트삭스와 1년 175만 달러(약 23억원) 계약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계약 내용에는 최대 100만 달러의 퍼포먼스 보너스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14라운드 전체 440순위로 뉴욕 메츠의 지명을 받은 플렉센은 2017년 빅리그 데뷔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2017년 14경기 48이닝 3승 6패 평균자책점 7.88, 2018년 4경기 6⅓이닝 2패 평균자책점 12.79, 2019년 9경기 13⅔이닝 3패 평균자책점 6.59로 다소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플렉센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 건 2020년이었다. 총액 100만 달러에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한국행을 택했다. 빅리그 경험과 뛰어난 구위 등 장점이 많은 플렉센에 대한 팀의 기대가 컸다.
플렉센은 2020년 정규시즌 21경기에 등판, 116⅔이닝 8승 4패 평균자책점 3.01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이 두드러진 건 포스트시즌이었다.
플렉센은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6이닝 4피안타 1사사구 11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친 데 이어 KT 위즈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7⅓이닝 4피안타 2사사구 11탈삼진 2실점으로 KT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유희관-김민규-이승진에 이어 네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3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무실점으로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플레이오프 시리즈 MVP도 플렉센의 몫이었다.
NC 다이노스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구창모와 선발 맞대결을 펼쳤던 플렉센은 6이닝 5피안타 5사사구 3탈삼진 1실점으로 팀에 시리즈 첫 승을 안겼다. 다만 5차전에서 6이닝 5피안타(1피홈런) 1사사구 5탈삼진 3실점으로 패전을 떠안았고, 팀은 6차전 패배로 준우승을 확정했다. 하지만 두산은 단기전에서 괴력을 발휘한 플렉센 덕분에 다른 팀들보다 길게 가을야구를 할 수 있었다.
두산도 플렉센과 2021시즌에도 함께하길 바랐지만, 그의 시선은 빅리그를 향하고 있었다. 결국 플렉센은 시애틀 매리너스와 2년 475만 달러에 계약을 맺으면서 두산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 남지 않은 플렉센의 선택은 대성공이었다. 그는 2021년 31경기 179⅔이닝 14승 6패 평균자책점 3.61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이듬해 33경기 137⅔이닝 8승 9패 평균자책점 3.73으로 순항을 이어갔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현지에서도 'KBO 역수출 사례'가 된 플렉센의 활약을 주목했다.
그랬던 플렉센이 올핸 기대 이하의 투구를 선보였다. 불펜에서 시즌을 출발한 뒤 네 차례의 선발 기회를 잡았음에도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방출 통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정팀'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됐다. 메츠로 팀을 옮긴 뒤 한 번도 기회를 받지 못한 그는 콜로라도 로키스와 계약하면서 한숨을 돌렸지만, 콜로라도행 이후 12경기 60⅓이닝 2승 4패 평균자책점 6.27로 부진했다.
페디와 플렉센은 KBO 역수출 사례라는 것과 함께 빅리그에서 나름 많은 경험을 했다는 점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화이트삭스가 어느 정도 검증된 선발투수를 원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올 시즌 화이트삭스는 61승101패(0.377)로 다소 부진한 성적을 남기면서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팀 선발 평균자책점과 이닝이 각각 4.88(23위), 840이닝(16위)로 리그 전체에서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팀 내에서 150이닝 이상 던진 선발투수는 딜런 시즈(177이닝)가 유일했고, 마이크 클레빈저(131⅓이닝)와 마이클 코펙(129⅓이닝)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선발 자원이 없던 건 아니지만 시즌 내내 선발진을 지킨 선수는 시즈 한 명뿐이었다.
페디와 플렉센을 품은 화이트삭스가 당장 풀어야 할 과제는 '교통정리'다. MLB.com은 "화이트삭스가 플렉센의 합류로 시즈, 코펙, 투기 투상, 마이클 소로카, 페디, 플렉센 , 재러드 슈스터를 보유하게 됐다. 닉 나스트리니, 제이크 에데르, 크리스티안 메나 등 젊은 투수들도 로테이션에 들어갈 수 있는 투수들"이라며 "선발투수 후보군에 오른 투수들 중에서 일부는 불펜으로 갈 수 있다. 계약 기간을 2년 남겨둔 시즈는 여전히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고 전했다.
사진=엑스포츠뉴스 DB, AFP, AP/연합뉴스
유준상 기자 junsang9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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