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사에 남을 2023년 [쿠키칼럼]

송원석 2023. 12. 31.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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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하원 의장 퇴진
스캔들과 극단적 선동 얼룩
새 정치 바란 유권자들 실망
미국 정치, 한국 따라가는 듯
어둠 속에 잠긴 미 의회 건물로 연방공무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위키피디아 자료

미 연방의회는 15일에 일찌감치 118회기 전반기 일정을 마치고 방학에 들어갔다. 미 연방의회는 하원의원 임기인 2년이 한 회기다. 118회기는 올해 1월에 시작돼 내년까지다. 딱 절반인 1년이 지났다. 118회기 전반기, 즉 2023년의 미 의회는 여러모로 미국 정치사에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올 한해 미연방의회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정리하면서 미국정치의 흐름과 과제를 짚어봤다.

정당 리더쉽

하원 다수당을 공화당이 차지했다. 민주당의 상징 같은 정치인인 낸시 펠로시 의원(전 하원의장)은 하원 원내대표 자리를 하킴 제프리스 의원에게 넘겼다. 공화당은 하원 의장(Speaker) 선출을 위해 15번이나 투표를 했다. 보수성향 의원모임인 프리덤 코커스에 속한 이른바 극우 강경파 의원들 때문이었다. 캐빈 메카시의원이 의장으로 뽑혔다.

리더쉽 교체와 함께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던 유권자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표면적인 리더쉽만 바뀌었을 뿐 당을 실제 이끌어가는 주요 정치인은 그대로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공화당은 극우 강경파 의원들에 끌려 다녔다.

낸시 펠로시 의원은 하원의장 은퇴와 함께 의원직도 내려놓는 불문율을 따르지 않고 의원직을 유지했다. 그녀는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1살 연상이다. 의장직 사임 후에도 의회 본관에 사무실을 유지하다 지난달 새로 선출된 마이크 존슨(공화) 의장에게 쫓겨 나는 수모를 겪었다.

세 문단 위에선 캐빈 메카시 의원이 의장이라고 했는데, 바로 앞 문장에선 마이크 존슨이라고 바뀐 걸 눈치채셨는가? 공화당은 의장 선출부터 삐걱거렸다. 118회기 첫 의장을 맡은 메카시 의원은 대화와 타협을 우선시했다. 지난 6월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향을 놓고 양당과 대립할 때 극적인 합의안을 도출해 연방정부 디폴트 사태를 막았다.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이 불만을 표출했다. 같은 당 멧 게이츠 의원이 의장 해임안을 발의해 가결됐다. 미국 연방의회 234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후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공화당은 분열을 거듭했다. 21일 동안 의장 자리를 비워뒀다. 가까스로 마이크 존슨을 선택했지만, 그가 당 내 분열을 봉합하고 아직 합의되지 않은 2024년 예산안을 성공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상 첫 하원의장 퇴진 결의로 교체된 마이크 존슨 의원의 의장 선출을 알리는 미 하원 홈페이지 사진. 미 하원 자료

중국 때리기

중국 소셜미디어인 틱톡을 규제하기 위한 청문회가 3월에 열렸다. 공화당 주도로 중국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특위는 중국과 관련된 경제, 기술, 안보 이슈를 조사하고 정책을 권고하기 만들어진 초당적인 협의체다. 중국특위는 WTO 최혜국 대우 박탈과 중국산 구형 반도체 규제 등 무려 130건의 대중국 대책을 제안했다. 지난 달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만났지만 의회는 중국과 싸우라고 촉구하고 있다.

두 개의 전쟁에서 발 빼는 미국

1년 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했을 때, 연방의회는 상하원 합동으로 그의 연설을 경청하고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올 9월 젤레스키가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의회연설이 없었다. 케빈 메카시 당시 의장은 언론용 사진 촬영조차 거부했다. 한 공화당 상원의원은 “우크라이나에는 안보 이익이 없고 우리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달에도 젤렌스키가 미국을 방문했지만 의회는 우크라이나 지원금을 통과시키지 않은 채 휴회에 들어갔다. 백악관은 의회가 예산을 승인하지 않으면 이달 말 군사장비 송출이 마지막 우크라이나 지원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민주당은 당초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이스라엘 지원과 묶어 통과시키려 했다. 공화당은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빼고 이스라엘 지원 예산만 통과시키자고 주장했다. 결국 아무 것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미국 내 경제 정치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 커뮤니티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이스라엘 지원에는 의회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겠지만, 미국 내 반(反)이스라엘 여론도 심상치 않다. 정확히는 이스라엘에 반대한다기 보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에 미국민의 세금을 쓰는 게 못마땅하다는 유권자들이 많다.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가급적 발을 빼려는 준비로 비친다.

하킴 제프리스(오른쪽)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낸시 펠로시(가운데) 전 하원 의장,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있다. 하킴 제프리스 제공

수준 이하 정치인들

케빈 메카시 의장 퇴진에 선봉장 역할을 한 멧 게이츠 의원(공화당)은 음주운전과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하원 윤리위 조사를 받는다. 극우 트럼프 지지자인 그는 “매카시 의원 아니면 대안이 누구냐?”는 언론의 질문에 대안은 없지만 매카시만 아니면 된다고 인터뷰할 정도로 막무가내다.

이달 1일 하원은 조지 산토스(공화당) 의원 퇴출 결의를 했다. 하원 역사상 6번째 퇴출이다. 7명의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공화당에서도 100명이 넘는 의원들이 찬성했다. 산토스 전 의원은 유대인 커뮤니티의 힘이 큰 뉴욕 롱아일랜드 지역에서 선거 운동을 하면서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학력과 경력도 꾸몄다. 선거자금을 개인 여행과 보톡스 시술에 쓰는 등 23가지 연방법을 위반했다. 퇴줄 후 뉴욕 연방 검찰은 13가지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118회기 전반기 미국 의회에선 1만7000건이 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 중 최종 통과된 법안은 단 22개(결의안 및 통합법안 제외). 그나마 8개 법안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법제화되지 못했다. 법 제정이라는 본 역할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를 자극하는 극단적 선동에 더 열을 올렸다.

워싱턴 정치가 대한민국 정치와 비슷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타협과 대화를 말하는 정치인들은 사라지고 대립과 자기 이익만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이슈를 이끌어간다. 유권자들은 한편에서는 실망하지만, 반대쪽에선 열광하고 응원의 찬가를 부른다.

정치인만의 책임은 아니다. 의회가 중국 때리기에 집중하는 이유도,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외면하는 이유도, 수준 이하의 정치인이 많아지는 이유도, 소수 강경파 때문에 의장이 물러나는 이유도 결국을 이런 정치인에게 열광하고 뽑아준 유권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회 문제는 결국 유권자의 문제다.


송원석
1980년생.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와 뜻하지 않았던 이민자가 되었다. 신학, 경영학, 비영리경영학 등을 전공하고 30대에 우연히 접하게 된 미연방의회를 향한 한국계 미국 시민들의 시민활동에 이끌려 지금은 워싱턴 DC에 자리한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연방의회를 드나들며 축적한 경험과 지식으로 소수계인 한인사회의 권익을 옹호하고, 모국인 한국과 자국인 미국의 관계증진에 바탕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지금도 워싱턴 DC '캐피톨 힐'을 누비고 다닌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한미관계, 미국의 사회, 정치, 외교를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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