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농사짓지 마시고 배당금 받으세요"...똘똘한 효자 나왔다
지난 28일 경북 문경시 영순면 의곡2리 마을회관. 주민 1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마을회관 벽면에는 ‘혁신농업타운 2023년 소득배당금 전달식’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올 한 해 영순들녘에서 공동영농으로 얻은 소득을 마을 주민에게 배당하는 행사였다.
주민 중 권준(77)씨가 대표로 나서 소득배당금 통지서를 받았다. 홍의식 늘봄영농법인 대표가 권씨에게 전달한 통지서를 보니 약 2㏊ 규모 농지로 공동영농에 참여한 권씨는 올해 소득배당금 1740만원을 받았다.
빌린 농지서 번 소득으로 10억 배당
권씨를 비롯한 주민 80명은 배당금으로 총 9억9800만원을 받게 됐다. 1인당 1247만5000원이다. 1㏊당 소독은 900만원으로, 농가가 직접 벼농사를 지을 때보다 훨씬 많다. 늘봄영농법인은 이번에 소규모 농가 30곳에 2억7000만원을 우선 지급한 뒤 나머지는 수확한 콩 판매가 마무리되는 내년 1월 중에 마저 지급할 예정이다.
배당금을 받은 주민들은 ‘경북도 혁신농업타운’ 1호 사업지구로 선정된 경북 문경시 영순들녘 일대 110만㏊ 규모의 공동영농에 참여했다. 소득배당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혁신농업타운은 농가가 법인에 땅을 제공하고 연말에 배당금을 받는 주주형 공동영농 형태다. 첨단화·규모화·기술혁신을 통한 농가 소득 증가가 목적이다. 고령의 농민이 고된 농작업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소득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농지를 내놓은 농가는 연말 배당금 지급과 별도로 일당을 받고 농사를 지을 수도 있다. 농기계 작업은 30만원, 단순 농작업도 9만원을 일당으로 준다.
‘규모의 경제’로 농지 수확량 높여
개인이 농사를 지을 때보다 공동영농 형태가 소득이 높은 것은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주로 1년에 벼 하나만 재배하던 농지에 소득이 높은 작목을 선정해 이모작을 하고, 인접한 농지를 하나로 묶어 대규모로 경작하는 방식으로 수확량을 늘린다. 하절기에는 벼를 5㏊만 심고 나머지 105㏊에 콩을 재배한다. 추수한 뒤에는 양파와 감자를 심는다.
이번에 배당금을 받은 홍기웅(79)씨는 “50년 벼농사를 지었다. 해마다 쌀값은 불안하고 근력도 부족해 막막했는데 젊은 세대들이 들녘을 이어받고 소득은 오히려 늘어나니 고맙다”고 소감을 전했다.
“소득모델 체계화해 타지역 확대”
홍의식 늘봄영농법인 대표는 “사업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고 특히 집중호우 등으로 작황이 부진했지만, 농가 소득을 높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며 “반신반의하면서도 동참해 주고 법인을 믿어 준 참여농가에 감사하고 소득으로 보답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올해 초에 ‘2023년 최우선 과제는 농업대전환이다’며 각오를 다졌는데, 연말에 의미 있는 결과를 거두게 돼 기쁘다”며 “문경 영순들녘의 사례처럼 농업·농촌의 판을 바꿔 경북 전역에서 농업대전환이 이뤄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경=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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