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입법·행정 모두에서 난항인 장애인등록제
[이고은, 유하영, 김지수 기자]
▲ 통일되지 않은 장애등급판정기준에 혼란스러워하는 장애인의 모습 |
ⓒ 김지수, 이고은 |
현실과 법 사이 큰 괴리감 역시 장애인복지법이 삐거덕거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취재팀과의 인터뷰에 응해준 환자 모두 2021년 시행령 개정을 크게 실감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서로 대표 서상수 변호사는 지난 8월 서면인터뷰를 통해 "장애와 관련해 상담하다 보면 장애인의 현실과 제도 사이 괴리가 큰 경우가 많다"라며 "현재로선 법이 이러한 괴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이를 위한 법적 시스템이 미비해 해결이 어렵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국정감사 발언과 시행규칙 고시가 상충한 사례가 있다. 장애등급판정기준(보건복지부 고시 제2015-188호)에서는 지체장애를 규정하며 "감각손실 또는 통증에 의한 장애는 포함하지 아니한다'"라고 명시한 바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제354회 국정감사에서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를 지체장애로 등록할 수 있다고 답변해 혼란을 주었다.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해당 고시에 따라 CRPS 환자의 장애인등록 신청을 취소한 적도 있다. 서 변호사는 "해당 고시를 굳이 신설한 것으로 볼 때 장애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취지라고 해석해 볼 수 있고 그렇다면 통증장애에 대한 장벽을 비정상적으로 높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전없는 국회
▲ 장애인권리보장법안 입법 제안 내용 모두 국회 본회의에 발조차 들이밀지 못한 입법안들이다. |
ⓒ 이고은, 김지수 |
일각에선 현행 장애인등록제를 유지하자는 입장이 있어 입법이 순조롭지 않다. 인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선우 교수는 8월 9일 진행된 전화 인터뷰에서 "장애인등록제 폐지 시 복지 대상 선정에 대한 새로운 기준 마련이 어렵고, 누구에게나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면 법령이 불안정해진다는 것이 반대 입장의 골자"라고 설명했다.
다른 하나의 입법 계류 요소로는 예산이 있다. 현재 등록장애인이 받는 혜택의 대상자가 확대되면 장애인복지에 소요되는 예산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7월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장애인지원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장애인단체는 장애인활동지원, 탈시설 시범사업, 이동권 보장 등을 비롯해 장애시민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장애인권리예산 증액 1조 3044억 원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2023년 예산에 반영된 것은 106억 8400만 원으로 기존 요구안의 0.8%에 불과했습니다."
"겉보기엔 번지르르하지만 실상은 아냐"
각종 환우 단체는 국가가 현행법령을 개선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의견을 내비친다.
"정부에서는 현재의 장애인정기준을 확대하거나 변경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한 한국기면병환우협회 대표, 7월 25일 대면 인터뷰)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 보건복지부 |
정부가 지난 3월 공표한 제6차 장애인종합계획에는 현행 장애 개념을 '의학적 장애 모델(2023년)'에서 '사회적 장애 모델(2027년 목표)'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나 계획 실현을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은 마련돼 있지 않다. 더욱이 대통령 임기 5년을 고려했을 때 4년이 소요되는 장기 정책 계획을 막연히 기다려야 하는 환자들은 피가 마를 수밖에 없다.
의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지난해 장애인 권리입법을 주요 입법과제로 지정했음에도 작년 정기국회는 물론 올해까지도 아무런 진전이 없다. 지난 7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5주년을 맞아 최혜영 민주당 의원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추진한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장애인등록제 개선에 대한 조항은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장애인정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려면
조윤화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지난 8월 9일 전화 인터뷰에서 당장 환자들에게 복지 울타리를 마련해줄 수 있는 즉각적 해결책이 필요한 때라며 '예외적 장애인정의 절차화'를 주장했다. 예외적 장애인정은 사회적 장애 정의에 따른 인정 대상자의 확대와 이에 대한 판정 및 심사 기준 마련을 골자로 한다. 현행 장애인복지법 판정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대상자들의 상황을 고려해 한시적으로나마 인정하기 위함이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지급자 중심이 아닌 수급자 중심의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취재팀이 인터뷰한 모든 환자는 현재 한국이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 불만을 표했다. 한국과 달리 해외는 신청자 중심의 서비스 지급이 보편적이다. 프랑스와 호주는 장애인등록 없이 개인 맞춤형 수당 및 서비스별 기준을 통해 일상·학업·고용 등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독일의 경우 장애인등록제를 시행 중이기는 하나, 법적 장애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당사자의 욕구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장애등록심사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의 통합을 언급했다. 현재 장애인등록을 위해서는 장애유형과 장애정도를 심사하는 '장애등록심사'와 더불어, 해당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 관련 심사를 이중·삼중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등록을 했는데 장애인 활동 지원이 필요하다면 이와 관련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연이어 받아야 한다. 이를 두고 장 의원은 "현 체계를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 조사로 개편한다면 심사 탈락 또는 불만족스러운 급여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등 별도의 절차가 필요 없어, 행정비용 낭비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과 정기영 교수는 지난 8월 서면 인터뷰에서 "환자들이 기준에서 배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각 장애의 본질 이해가 필수적"이라며 "장애정도심사와 기준 마련 시 의료진의 제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평등은 등록, 미등록을 가리지 않는다
취재팀이 "장애인등록, 다시 시도할 의향이 있으신가요?"라고 묻자 환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인터뷰에 응한 동 주민센터 직원은 복잡한 장애인등록 과정을, 변호사는 의료적 기준에 치중한 장애인정기준을, 의료진은 입법 과정의 의료적 논의 미비를, 국회의원은 개개인을 고려한 장애서비스 제공 체계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장애인등록제의 신호탄은 울렸으나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에 머무는 실정. 모두의 행복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복지인 만큼 헌법상 행복과 존엄은 등록과 미등록을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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