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로만 이동할 수 있는데... 장애등급이 안 나옵니다"
[이고은, 유하영, 김지수 기자]
▲ 휠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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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휠체어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상세 불명의 척수 병증을 진단받고 입원해 2년의 재활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은커녕 다른 통증까지 더해졌다. 그럼에도 병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장애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몇 차례 재판정 요구도 해봤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장애 인정을 받은 등록장애인만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기에 A씨는 이 병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만 한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된 2019년 7월 이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장애인등록 심사에 대한 이의신청은 1만 9299건이다. A씨뿐만 아니라 장애를 가진 많은 사람이 장애인등록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 2021년 OECD 국가의 장애출현율과 인구대비 등록장애인 비율 장애출현율은 전체 인구에서 등록장애인 수와 추정 장애인 수가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 |
ⓒ 이고은 |
2021년 OECD 국가의 평균 장애출현율은 24.3%이다. 그중 한국은 5.39%로 31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실제로 등록된 장애인 비율은 5.2%에 그친다. 2010년 이후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이긴 하나 5%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핀란드 28.5% ▲오스트리아 29.6% ▲덴마크 33.4% ▲네덜란드 29.9%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장애출현율이 10%를 넘기지 못한 국가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정말 한국의 장애인 비율이 낮은 것일까.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담긴 '12만 명'이라는 국내 미등록 장애인 추정 수는 장애가 있음에도 장애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음을 나타낸다. 더군다나 이 수치는 당시 장애범주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보건복지부 고시 장애정도판정기준에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장애인정을 받을 수 없다. 김남희 변호사는 한국장애인개발원 뉴스레터에서 한국의 지나치게 낮은 장애출현율이 까다롭고 비합리적인 장애인정 기준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애의 본질을 이해할 만큼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각 장애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기준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광운대학교 신훈 행정학 박사 역시 지난 7월 5일 기자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장애출현율 저조의 원인으로 장애인등록제를 꼽았다.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비교한 결과 장애인등록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많지 않았다. 미국·일본·프랑스·호주 등에는 장애인등록제가 없다. 장애인복지 대상을 의료적 기준에 따라 분류한 등록장애인에 한정하는 한국과 달리, 해당 국가들은 제도별 기준을 달리해 근로능력평가·직무적격성평가·경제적 기준·의학적 기준 등으로 복지혜택을 부여한다.
미국과 영국은 능력과 근로의 제한이, EU와 캐나다는 일상생활에서의 제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복지혜택의 대상이 된다. 한국처럼 수치화된 기준에 국한하지 않고, 필요 대상의 일상을 관찰해 맞춤형 혜택을 주는 것이다. 결국 장애출현율은 각 국가가 장애를 어떻게 정의하고 이에 대한 복지를 어떻게 시행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셈이다.
소송해야 장애인이 될 수 있는 나라
▲ 보건복지부에서 명시하고 있는 장애분류표를 인포그래픽으로 나타낸 것 |
ⓒ 이고은 |
현재 한국은 장애유형을 크게 정신적 장애와 신체적 장애로 구분한다. 세부 분류는 지체·언어·심장·지적·정신장애 등 총 15가지다. 문제는 이것에 포함되지 않으면 장애가 있어도 장애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장애인정을 받지 못하면 장애에 대한 어떠한 복지혜택도 누릴 수 없다.
B씨처럼 국가가 지정한 장애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야만 장애 인정에 대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조차 장애인정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소송 과정에서 경제적·시간적 비용과 병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까지 감내하며 외로운 싸움을 견뎌야 한다.
B씨의 소송에 대한 판결과 각종 환우 단체의 지속적인 호소는 2021년 4월 장애인정 범주의 확대로 이어졌다. 당시 추가된 질병은 ▲복시(겹 보임) ▲기질성 정신장애 ▲강박장애 ▲투렛장애 ▲기면증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간신증후군 ▲정맥류 출혈 ▲백반증 등 총 11가지이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서류 100장을 들고 와야 할 때도"... 복잡한 장애인등록 절차
장애인등록을 하기 위해선 각종 서류들을 양손 무겁게 챙겨야 한다. 익명을 요청한 서울 모 자치구의 동 주민센터 직원 C씨는 지난 8월 1일 전화인터뷰에서 장애인등록을 위해 환자가 100페이지 넘는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저는 의사가 아니다 보니 진료 기록을 볼 줄도 모르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 역시 어떤 서류가 어디에 필요한지 헷갈려 할 정도"라며 서류를 직접 준비해야 하는 환자들의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공감했다.
준비할 서류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장애인등록을 위해서라면 일정 기간 이상 병원에 내원했거나 약물을 처방받은 진료 기록지가 필요하다. 해당 구비서류를 준비하지 못하면 국민연금공단지사에서는 심사 접수조차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들에게도 사정이 있다. C씨에 따르면 만성질환인 청각장애나 지체장애의 경우 장기 치료 혹은 지속적인 약물 복용의 경우가 적기 때문에 서류 구비조차 어려운 환자들이 종종 있다. 금전적인 어려움과 거동의 불편함 등으로 병원을 방문하지 못하는 환자들도 존재한다.
신청자가 지속적 치료 이후 의사로부터 받은 장애 진단서와 각종 서류를 구비해 동 주민센터에 접수하면, 동 주민센터는 해당 서류를 국민연금공단으로 보내 심사를 요청하게 된다. 국민연금공단이 심사 후 다시 동 주민센터에 결과를 통보하고 이 결과가 신청인에게 통지되기까지 약 한 달이 걸린다.
▲ 김나영(가명·28)씨의 장애인복지카드(장애인등록증) 7월 18일 취재원과의 인터뷰에서 김씨는 장애인등록증을 보여주며 이 한 장을 얻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토로했다. |
ⓒ 이고은 |
한국의 장애평가기준은 의료적 기준을 전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같은 환자라도 의사의 재량에 따라 장애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김씨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보는 듯한 불안감과 환청에 괴로워한다. 정말 극심할 때는 신체화 증상이 나타나서 쓰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가 자신의 병을 제대로 이해해 주지 못해 처방을 받거나 진단을 받을 수 없었다. 김씨는 장애로 인한 일상의 어려움이 있지만 다리를 절뚝거리는 등 표면상의 어려움이 없어 장애인등록을 거절당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본고는 장애인등록제 실황에 대한 심층 취재물이며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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