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드기·김치 하이볼, 이게 먹히네…세계를 홀린 K칵테일
외국인 사로잡는 한국 술
먹고 마시기는 실과 바늘의 관계. K푸드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 술에 대한 관심 또한 커졌고 ‘K칵테일’의 위상 또한 높아졌다.
지난 7월 홍콩에서 개최된 ‘2023년 아시아 50 베스트 바’ 시상식에서 바 문화 강국인 싱가포르는 50위 안에 총 11개의 바가 선정됐다. 서울의 바는 ‘제스트(5위)’ ‘참바(13위)’ ‘르챔버(25위)’ ‘앨리스(28위)’ ‘사우스사이드 팔러(37위)’ ‘소코’(46위) 등 6곳이 50위 안에 들었다. 역대 최다 기록이고, 대부분의 바들이 지난해보다 더 상승한 기록이다. ‘아시아 50 베스트 바’ 순위는 바텐더, 바 오너, 드링크 작가, 칵테일 애호가 등 아시아 지역의 업계 전문가 260명의 투표를 기반으로 평가된다. 현재 한국의 바가 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얘기다.
‘제스트’의 바텐더이자 공동대표인 김도형씨는 “코로나를 거치면서 바텐더와 고객 모두 성장했다”며 “3~4년 전 싱글 몰트 위스키 바, 스피크이지바(1920~30년 미국 금주법 시대에 생긴 비밀스러운 형태의 바) 등의 유행으로 바 문턱이 낮아졌고, 여행을 못하는 고객들은 혼자 칵테일을 공부하면서 믹솔로지(Mixology·다양한 술과 음료를 입맛대로 섞어 마시는 칵테일 기술)에 빠지고, 수준이 높아진 고객을 상대로 바텐더들은 새로운 칵테일 개발에 더 몰두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세대 바텐더들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고민하면서 ‘다른 나라에 없는 것=한국적인 것’이라는 답을 얻었다”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굳이 자신의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와 칵테일에 관심 가질 이유가 없으니, 그들이 첫 눈에 ‘와우!(WOW!)’ 감탄할 수 있도록 한국 술과 재료를 이용한 칵테일 개발이 늘었고 이를 중심으로 바 컨셉트도 달라졌다”고 했다.
제스트에선 3년 전 오픈 때부터 공동대표인 4명의 바텐더가 계절별로 진을 직접 만든다. 봄에는 매실·한라봉·토종 박하, 여름엔 참외·레몬 버베나, 가을엔 사과·타임, 겨울엔 딸기·세이지를 이용한다. 새해부터는 상품성 없다고 버려지는 못난이 과일들도 이용할 계획이다. 이는 제스트가 추구하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컨셉트의 연장선이다. 제스트에선 향을 위해 껍질만 긁어내고 버려지는 과일을 모아 즙을 짠 후 또 다른 칵테일을 만드는 데 쓴다. 알루미늄 캔과 플라스틱 병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탄산수·토닉워터·콜라까지 바에서 제공하는 모든 탄산음료를 직접 제조한다.
도심 생태계 복원을 돕기 위해 도시 양봉에서 얻은 꿀을 사용해 ‘시티 비즈 니스(City Bee’s Knees)’ 칵테일도 개발했다. 김 대표는 “한 잔의 칵테일을 마심으로써 꿀벌 개체수를 늘리고, 꽃의 발화율도 높여서 서울이 더 푸르러질 수 있도록 상생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은 국내외 젊은이들의 공통된 관심사로 제스트의 철학에 공감하는 고객들이 점점 늘고 있다.
지난해 3월 포시즌스 호텔은 기존 호텔 내 보칼리노 와인 바를 리브랜딩하면서 한국식 컨템포러리 바 ‘오울(OUL)’을 오픈했다. 호텔 관계자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는 외국인 고객들을 위해 서울의 다이내믹한 밤 문화를 독창적으로 표현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함께 토론한 외국인 스태프들과 식음 디렉터가 “한국에는 고급 증류식 전통 소주를 비롯해 진·보드카·럼 등 다양한 술이 많고, 주류문화 자체가 매력적이라 이걸 럭셔리 호텔만의 세련된 스타일로 표현하면 외국인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다”며 K스타일 바와 칵테일 개발을 강력 추천했다고 한다. ‘오울’은 서울의 영문 스펠링 ‘SEOUL’과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OWL)’의 발음을 조합해 잠들지 않는 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표현한 것이다.
오울의 칵테일은 한국 각 지역 특산품 및 제철 식재료가 적절히 믹스된 모던 코리안 스타일이다. 예를 들어 칵테일 ‘식혜’는 국내 수제 소주인 토끼 소주 베이스에 차이 티, 호박 코디얼, 정제 우유를 곁들였다. ‘김치 하이볼’은 국내 수제 소주에 청고추 향을 입혔다. 오울의 유승정 바텐더는 “처음에는 김치 국물을 직접 사용했더니 음료 안에서 숙성이 돼 호불호가 갈렸다”며 “소주에 고춧가루를 넣고 차처럼 우려서 배 주스와 레몬 즙을 더해 동치미처럼 톡 쏘는 맛을 표현했더니 외국인들도 좋아한다”고 했다.
쫀드기, 바나나우유, 미숫가루 등을 조합해 우리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도 담았다. 유 바텐더는 “술집 안주로만 생각했던 ‘화채’가 설탕을 탄 오미자물이나 꿀물에 과일·꽃잎 등을 넣고 실백을 띄운 전통음료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국내 MZ세대도 흥미로워 한다”고 했다.
전통주 양조장도 세대가 바뀌면서 모던화 요구에 적극 호응하고 있는 추세다. 과거 장인들은 유명세만으로 충분했지만, 양조장을 물려받은 2세들은 글로벌화 등 브랜드 가치를 키우는 데도 열심이다. 바텐더들 역시 전통주를 활용해 오리지널 칵테일을 만들기에 적극적이다. 지난 8월 한남동에 바 ‘휘슬 버드’를 오픈한 이성하 바텐더는 오마자·복분자 원액과 화요 41도 증류식 소주, 레몬글라스, 구연산, 사과산, 오렌지 블로섬 워터를 섞은 칵테일 ‘합주’를 만들었는데 국내외 고객 모두에게 호응이 좋다고 한다.
전통주 유통 사업을 하는 부국상사의 김보성 대표는 지난 10월 가로수길에 전통주 전문 바 ‘텐 웰즈’를 오픈했다. 380여 종의 전통주를 보유한 곳으로 국내에선 처음 시도되는 컨셉트다. 이곳에선 다양한 전통주 베이스의 칵테일은 물론 배우 김보성의 ‘의리남’ 소주, 배우이자 가수인 김민종의 ‘하늘아래서’ 소주 등 김 대표가 그동안 연예인들과 협업한 소주를 베이스로 한 다양한 칵테일도 즐길 수 있다. 김 대표는 “전통주 활용을 넘어 배우·아티스트들 그리고 그들의 팬들과 함께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 공간을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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