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만난 한국 이주노동운동의 역사를 쓴 사람들

서선영 2023. 12. 3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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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존재선언]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 투쟁 20주년 기념 리유니온 행사 현장

[서선영 기자]

# 20231220-20231221 네팔, 카트만두

이곳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 깐티파스(Kantipath) 도로변에 위치한 옐로 파고다 호텔 5층 가네시 홀. 한국에서, 방글라데시에서 그리고 네팔에서 짧게는 1시간, 길게는 이틀에 걸쳐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온 사람들이 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해 명동성당에서 380일간 농성을 했던 이주노동운동의 주역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투쟁하고 지지해온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농성투쟁 20주년 기념 리유니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20주년 리유니온 행사가 네팔 카트만두에서 시작되었다.
ⓒ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아카이브 모임
 
우리가 만나다니, 꿈 같은 일이야
20년이다. 눈을 감았다 떠보니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났는가.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주름은 깊어졌지만, 서로에게 "옛날이랑 똑같다"를 연발하며 뜨겁게 포옹한다. 한국에서 노동하며 함께 투쟁했던 우리가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그런데 그런 꿈 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말이다.
 
 20년 전 농성 투쟁에 함께 했던 동지들이 재회했다. 검-라주 만남(좌), 자히드-해미니 만남(우)
ⓒ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아카이브 모임
  
 마숨과 서머르의 만남
ⓒ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아카이브 모임
 
사랑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12월 21일 오후 2시,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20주년 기념 리유니온 행사가 시작되었다. 행사의 사회를 맡은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섹 알 마문 수석 부위원장이 "동지들 사랑합니다"라는 애틋한 고백으로 행사를 열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섹 알 마문 수석부위원장이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좌) 당시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농성단 단장을 맡았던 서머르 타파.(우)
ⓒ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아카이브 모임
 
당시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대표로 농성단 단장을 맡았던 서머르 타파는 20년만의 리유니온을 위해 카트만두에 모인 동지들에게 따뜻한 환영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농성 시작 3개월 만에 연행되어 동지들과 끝까지 함께 투쟁하지 못해 늘 미안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서머르 타파의 연행에 항의하는 단식단에 참여했던 마숨은 "당신은 농성이 끝날 때까지 우리의 대표였어요"라며 서머르 타파에 대한 모두의 마음을 전달했다.    

감사패 전달 "여러분이 한국 이주노동운동의 역사"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2003-2004 농성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강제추방의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넘어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희생하고 저항했던 사람들, 그리하여 한국 이주노동운동의 역사를 쓴 사람들의 기여가 20년 만에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2003-2004 농성투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은 출입국 관리소 앞 집회에서 연행되어, 보호소 내 단식 투쟁을 했던 굽타.
ⓒ 이나라
 
"여러분은 부당한 정책에 저항했고, 수많은 연대를 이끌어냈습니다. 한국사회와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역사적이고 정의로운 투쟁에 동참해주신 귀하에게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담아 이 명패를 드립니다." (감사패 내용 일부 발췌)
건네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뜻 깊은 이 감사패는 명동성당 이주농성투쟁을 기억하기 위해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20주년 기념위원회(민주노총,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이주노동자평등권연대,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명동농성기록단)에서 제작했다.
 
 감사패를 들고 힘차게 투쟁을 외치는 참가자들
ⓒ 이나라
 
농성 참여자들의 이야기 "내 생애 최고의 날들이었어요."

감사패 전달 이후, '나에게 명동 농성은?'이라는 주제로 농성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20대와 30대를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살며 경험한 웃픈 일화부터 농성에 참여하기까지의 과정, 농성 중 본국에 있는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까지 밤을 새도 모자랄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 중에서 20년전 농성은 "내 생애 최고의 날들"이었다고 한다. 저항했기에 아름다웠던 청춘, 한국의 학생들과 노동자 연대의 힘, 모두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일들을 기억하며 크게 웃고, 또 함께 눈물 짓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농성 활동을 회고하는 하르카(좌), 농성당시 사진을 들고 있는 삼수(우)
ⓒ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아카이브 모임
   
 20년 전 사진을 보고 있는 자히드. 농성 당시 입던 조끼를 가져와 입고 있다.(좌) 농성 당시 사진을 배경으로 선 소부르(우)
ⓒ 이나라
 
 
 리유니온 행사 참가자들이 힘차게 투쟁을 외치고 있다
ⓒ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아카이브 모임
 
#20231224-20231225 방글라데시, 다카
네팔에서 개최된 리유니온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농성단 대표 서머르 타파와 준비팀은 방글라데시 다카로 갔다. 12월 24일 저녁 7시에 시작된 행사는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조합원, 명동성당 농성단원 그리고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조합원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여 년간 한국 이주노동운동에 참여했던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작은 리유니온을 만들었다.   
 
 감사패 전달(비두와 서머르) (좌) 농성 당시 사진을 들고 있는 아누아르(우)
ⓒ 고진달래/이윤주
   
 방글라데시 리유니온 행사에 함께 하는 참가자들
ⓒ 고진달래
   
 방글라데시에서도 이어진 리유니온 행사
ⓒ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아카이브 모임
 
계속된다,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투쟁도!

"동지들, 사랑합니다"로 시작된 리유니온 행사는 네팔 카투만두와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5박 6일 동안 70여 명이 참가해 감동의 대장정을 만들어냈다. 20년 만에 만난 사람들은 처절했지만, 아름다웠던 저항의 기억을 함께 나누며 눈물 흘렸고, 밤새 이야기 꽃을 피웠고, 뜨거운 포옹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 투쟁의 성과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꾸며 사는 삶, 한국의 단체들과 지속된 연대 사업을 공유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20주년 기념 리유니온 행사가 알려준 것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투쟁도 말이다.
 
 행사 결의문과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지원 방안을 논의 중인 참가자들
ⓒ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아카이브 모임
   
 2003년 농성단 멤버들이 2023년 이주노조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아카이브 모임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쓰신 서선영님은 당시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 사무국장으로 농성에 참여했으며, 현재 충북대 사회학과에 재직하며 명동성당 미등록이주노동자 농성투쟁 아카이브 모임에서 활동중입니다. 이 기사는 <노동과 세계>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1월 15일부터 12월 17일까지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투쟁 20주년 기념 전시회가 서울 강북노동자복지관에서 열렸습니다. 전시가 끝났지만 VR을 통해 전시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https://chronotope.co.kr:45380/archive/chrono_detail.jsp?s_seq=123&year=2023 *전시와 20주년 리유니온 행사 개최를 위해 소셜펀치 모금도 하고 있으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https://www.socialfunch.org/undocumented200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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