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0%대'였지만... 이 예능 덕에 즐거웠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23년 나를 가장 즐겁게 한 '최고의 예능'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양형석 기자]
현재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예능PD는 단연 나영석 PD다. 지난 1월 tvN을 떠나 이명한PD가 대표로 있는 CJ ENM의 산하레이블 '에그이즈커밍'으로 이적한 나영석PD는 2월 <그림형제>를 시작으로 <서진이네>, <뿅뿅 지구오락실> 시즌2,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등을 연출하면서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여기에 <나영석의 나불나불>과 <이서진의 뉴욕뉴욕2> 등 유튜브 콘텐츠에서는 연출을 넘어 MC 역할까지 하고 있다.
한편 나영석 PD가 예능 <1박2일>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부터 라이벌로 불리던 레전드 예능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지난해 1월 MBC를 퇴사하고 콘텐츠 제작사 'TEO'를 설립했다. TEO에서는 작년 이효리를 전면에 내세웠던 <서울 체크인>과 <캐나다 체크인>을 제작했고 올해도 <지구마불 세계여행>과 <댄스가수 유랑단>, <데블스 플랜>, <살롱드립> 등 매체와 유튜브를 오가며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 <혜미리예채파>는 낮은 시청률에도 OTT를 중심으로 방영기간 내내 높은 화제성을 기록했다. |
ⓒ <혜미리예채파> 홈페이지 |
젊은 여성 출연자들의 리얼 버라이어티
사실 젊은 여성스타들이 중심이 된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과거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나르샤, 소녀시대의 써니, 유리, 카라의 고 구하라, 포미닛의 현아, 티아라의 효민, 시크릿의 한선화 등이 출연했던 KBS의 <청춘불패>였다. 하지만 <혜미리예채파>는 <청춘불패>의 김태우나 김신영처럼 '진행 및 정리'를 위한 예능형 멤버 없이 오직 젊은 여성스타 6명으로만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갔다.
걸그룹 걸스데이 출신의 혜리는 그나마 6명의 멤버들 중 기성 예능에 가장 익숙한 멤버였다. 사실 혜리 역시 예능 프로그램에서 막내 포지션을 맡는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혜미리예채파>에서는 '맏언니'로서 동생들을 이끌면서 '예능 베테랑'의 면모를 선보였다.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미연도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고정출연은 처음이었는데 나이는 둘째지만 귀여운 말투와 행동으로 무대에서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매력을 뽐냈다.
댄스 트레이너이자 안무가 리정은 2021년 여성 댄서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YGX의 리더로 참가해 5위를 기록하며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사실 대중적으로는 가장 알려지지 않았던 리정이 리얼 버라이어티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리정은 여섯 멤버들 사이에 잘 녹아들면서 프로그램에 빠르게 적응했고 <혜미리예채파>의 '새로운 발견'이 됐다.
<혜미리예채파>의 멤버가 발표됐을 때 아이즈원을 응원했던 팬들은 아이즈원 활동종료 후 솔로가수와 걸그룹 르세라핌 멤버로 각자의 길을 걸었던 예나와 채원의 만남에 큰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예나는 솔로 데뷔 후 꾸준히 예능활동을 이어간 반면에 채원은 데뷔 준비로 한 동안 예능활동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나와 채원은 아이즈원 시절의 룸메이트답게 '톰과 제리' 같은 케미를 보여주면서 프로그램의 웃음을 담당했다.
<혜미리예채파>의 히든카드는 단연 파트리샤였다. <혜미리예채파> 출연 전까진 콩고 출신 방송인 조나단의 여동생으로 유명했던 파트리샤는 <혜미리예채파>를 통해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을 마음껏 발산했다. 특히 파트리샤는 예능인과 일반인 사이에 있는 어중간한(?) 신분을 활용해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퀴즈를 풀면서 제작진이 '여러분들의 커리어를 걸라'고 제안하면 파트리샤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그럼 전 뭘 걸어야 하죠?"라고 물었다.
▲ 댄스 트레이너이자 안무가 리정은 자신이 만든 블랙핑크의 안무를 기억하지 못해 은퇴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
ⓒ ENA 화면캡처 |
<혜미리예채파>는 강원도 춘천 외곽에 위치한 시골에서 촬영을 했지만 시골이라는 장소를 부각시키는 요소는 거의 없었다. 실제 대부분의 촬영이 집 안과 그 주변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사실 서울의 작은 스튜디오나 집을 빌려 촬영했어도 큰 무리가 없었다. <혜미리예채파>는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6명의 멤버가 각종 게임을 통해 텅 빈 집에 살림살이를 채워 가면서 나누는 케미와 시너지로 즐거움을 이끌어내는데 초점을 맞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2023년까지 방송됐던 예능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낮은 평균연령을 자랑했던 <혜미리예채파>는 방영기간 내내 한 번도 시청률 1%를 넘기지 못했다. 단순히 시청률로만 보면 실패한 프로그램에 가까웠지만 <혜미리예채파>는 높은 화제성과 OTT에서 높은 시청순위를 기록하며 젊은 대중들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여성중심예능이라는 트렌드를 더욱 트렌디하게 만든 TEO와 이태경PD의 색다른 도전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셈이다.
사실 <혜미리예채파>에서 멤버들이 도전하는 게임들은 멀리는 <무한도전>과 <1박2일>, 가까이는 <뿅뿅 지구오락실>을 통해 이미 시청자들에게 선보였던 게임들이 많았다. 특히 <혜미리예채파>는 젊은 여성들로 구성돼 있고 K-POP 요소를 첨가한 게임을 했다는 점에서 <뿅뿅 지구오락실>과 자주 비교됐고 실제 시청층이 겹치기도 했다. 심지어 <뿅뿅 지구오락실>의 안유진과 <혜미리예채파>의 예나, 채원은 아이즈원 멤버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흔히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에서는 AI나 미리 녹음된 성우의 목소리를 통해 게임진행을 하거나 공지사항 등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혜미리예채파>에서는 프리랜서 성우 강새봄이 녹화에 직접 참여해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면서 출연자들에게 각종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게임을 진행하며 현장감을 더했다. 녹화 후반부에는 채원을 비롯한 일부 출연자들이 강새봄 성우의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소소한 웃음을 주기도 했다.
녹화장소는 한적한 시골이었지만 각종 물건구입과 주문 등은 '키오스크'로 불리는 최첨단(?) 무인주문기계를 활용했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집에서 살기 시작한 멤버들은 제작진이 주는 각종 퀘스트를 수행해 캐시를 모으고 키오스크를 통해 직접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을 주문했다. 처음엔 키오스크에 신기해 하던 멤버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노련하게 키오스크를 활용해 살림살이를 채우는 장면을 보는 것도 <혜미리예채파>의 재미요소 중 하나였다.
'멤버 교체 없는' 시즌2 제작 가능할까
지난 3월 12일 첫 방송된 <혜미리예채파>는 5월 28일 12회 방송을 끝으로 첫 번째 시즌이 마무리됐다. <혜미리예채파>는 한창 눈이 쌓여 있던 겨울에 미리 녹화해 봄에 방송을 시작한 '사전제작예능'이었다. 제작진은 마지막회에서 넌지시 시즌2 제작 가능성을 내비쳤고 혜리를 비롯한 짓궂은 멤버들은 당시 앨범 발매가 임박했던 르세라핌의 채원을 언급하며 "채원이 빠지면 (이름에 '채'가 들어가는 잇지의) 채령이가 들어오면 되겠다"라며 채원을 놀렸다.
사실 제작진과 출연진의 바람과 달리 <혜미리예채파> 시즌2는 아직 제작 여부가 불투명하다. 미연과 채원은 이제 국내보다 해외 스케줄이 더 많은 글로벌 인기 걸그룹의 멤버이고 혜리는 TEO에서 제작하는 넷플릭스 예능 <미스터리 수사단>에 출연할 예정이다. 나머지 멤버들 역시 각자의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심지어 <혜미리예채파>를 연출한 이태경 PD조차 아직 시즌제 예능을 연출했던 경험이 없다.
▲ <혜미리예채파>는 시즌 2를 기약하며 한 장의 기념사진을 남기고 웃으면서 종영했다. |
ⓒ ENA 화면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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