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 이순신에게 반한 10년, 그걸 찍었더니 중년男들도 눈물
‘이순신 3부작’ 완성한 김한민 감독
무명 병사들 통해 전쟁 참상 묘사
‘노량’은 북으로 시작해 북으로 끝난다. 이순신 장군은 총칼이 아닌 북채를 들고 이 거대한 전쟁을 진두지휘한다. ‘완전한 항복’을 키워드 삼아 전쟁의 참화 한가운데 선 장군의 고독한 숙명을 길어낸 김한민 감독은 집념의 사나이다. 2014년 1760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명량’으로 시작해 지난해 ‘한산’을 거쳐 10년 만에 완성한 이순신 3부작에 그의 뚝심이 오롯하다. 팬데믹까지 헤쳐나가야 했던 ‘장군과의 10년 전쟁’은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도망가는 적을 끝까지 쫓으며 북을 울렸던 장군의 명분을 바로 세우는 사명과도 같았다. 김 감독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다”고 표현했다.
“다른 걸 돌아볼 여유도 없었어요. ‘노량’은 2021년 1월부터 6월까지 정말 기적같이 찍었죠. 남들은 코로나를 잊었지만 저는 못 잊어요. 촬영 현장의 아슬아슬함이 아직도 눈에 밟힙니다. 그럼에도 3부작을 완성한 데는 관객들의 사랑과 성원이 결정적이었어요. 장군의 대의가 저를 속편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해줬고요.”
Q : 10년 동안 장군이 꿈에 몇 번은 나왔겠죠.
A : “한번도 안 나오셨는데, 당신에게 거슬리지 않았기에 안 나타나신 거라 생각해요. 제게도 ‘노량’을 만들고 100분의 해전을 묘사한 대의가 있는데, 그 지점이 장군의 대의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걸 관객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합니다.”
Q : 김한민에게 이순신이란 뭘까요.
A : “결국 우리나라와 민족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화현(化現)의 현신(現身)’이랄까요. 전쟁을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면 역사적인 비극과 원한이 되풀이된다는 걸 장군의 죽음을 통해서 화두로 삼고 싶었어요. 갈등과 분열이 극심해진 시대에 장군처럼 대의를 가진 존재가 중심적 역할을 해줘야 우리가 뭉칠 수 있다는 생각도 갈수록 커지고요.”
Q : 이순신 뿐 아니라 세 나라 장수의 비중이 비슷해서 ‘국뽕영화’가 아닌 새로운 감각의 ‘K전쟁영화’로 보입니다.
A : “세 나라가 팽팽해야 장군의 엣지 있는 결기가 드러날 거라 봤어요. 왜 싸우냐며 뒷다리를 잡는 명 도독 진린과 정치적 야욕에 불타는 왜군 장수 시마즈가 장군과 팽팽하게 맞서니 전쟁이 치열해질 수밖에요. 세 장수 김윤석·백윤식·정재영과 허준호씨까지 주연배우 4인방은 신의 캐스팅이었어요. 비중을 딱 그렇게 가질 수 있는 네 분이 오셨는데, 이 환상적인 캐스팅을 장군이 도와주셨다 생각해요.”
Q : 영화가 북으로 시작해 북으로 끝납니다.
A : “북소리를 좋아해요. 남자들이라면 북소리가 가져오는 북돋움을 알거예요. 장군의 의지를 소리로 상징화해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죠. 죽음을 무릅쓰고 북을 쳐나갔던 건 전쟁의 완전한 종결,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장군의 외침이었다 생각해요.”
김한민은 딱 ‘노량’ 같은 사람이었다. 호방한 상남자인 듯, 예민한 예술가적 감각도 번뜩였다. 개봉 직전까지 손 떼지 못했던 사운드 작업을 스스로 오케스트라 지휘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과연 베일 듯 날선 카리스마를 가진 지휘자였다. 명장면으로 꼽히는 백병전 롱테이크 해석에 대해서도 감독의 의도대로 봐 달라고 까칠하게 주문했다.
“그 촬영이 가장 어려웠어요. 돈과 에너지를 투자해 어렵게 찍는 데는 이유가 있죠. 명의 병사부터 시작해서 조선, 왜군 병사로 이어지는 이름없는 인간들을 통해 전쟁의 처참한 상황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 끝에 고독하게 서 계시는 장군이란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사명감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그 의미를 단순한 반전(反戰)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장군의 대의를 너무 작게 보는 거예요. 죽은 동료 장수들과 아들의 환영을 보면서도 완전한 종결을 위해 다시 북채를 들 수밖에 없었다는 게 중요하죠. 절대적 고독과 사명 가운데 놓인 장군을 보며 중년남자들이 눈물을 많이 흘리더군요. 장군은 상남자였고, 저도 치열하게 찍었습니다.”
‘장군의 대의’와 ‘완전한 종결’. 인터뷰 내내 그가 줄기차게 반복한 말이다. 다른 얘길 하면 화를 낼 것 같았다. 고향인 전남 순천의 왜성이 임진왜란 때 세워졌으며 그게 일제 침략전쟁으로 되풀이됐다는 어린 날의 두려움이 줄곧 그의 화두였던 모양이다. 요컨대 끝장을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일제강점기 같은 비극이 되풀이됐다는 주장이다. “전쟁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고, 영토 할양 같은 전쟁배상을 포함해 종결의 의식이 있잖아요. 우린 그걸 못했어요. 종결까지 가기 위해 적들을 크게 응징할 필요가 있었고, 당시 우리가 강력하게 주장했다면 도쿠가와 막부는 수용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입장이었는데 말이죠.”
Q : 항복 받았다면 일제 침략이 없었을까요.
A : “없었겠죠. 에필로그에 ‘왜란이 아니라 전쟁이었다’는 광해(이제훈)의 대사도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장군의 대의를 따르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전쟁으로 규정해야 일본에 책임을 지울 수 있는데, 실제론 그걸 못했기에 정한론으로 이어졌죠. 이런 주제의식을 사람들이 잘 수용 못하고 장군이 단순히 도망가는 적들을 응징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흔들어놓고 싶어요. 10년을 매달려 깨달은 장군의 그 뜻을 광해를 빌려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 분조(分朝)를 이뤄서까지 열심히 싸웠던 광해의 입을 빌린다면 장군의 대의가 작아지지 않고 계승될 수 있을 테니까.”
Q : 전세계 25개 업체 800여 명이 참여한 CG작업은 어떻게 가능했나요.
A : “하나의 컨소시엄을 이뤄서 사전 시각화로 설계한 해전 장면들을 각 업체가 작업하고 총괄 수퍼바이저가 톤을 맞춘 것이죠. 이런 퀄리티가 나오기까지 치밀한 설계와 리얼리티를 살릴 디테일한 작업을 하느라 검증에 검증의 반복이었어요. ‘300: 제국의 부활’의 살라미스 해전을 동네 물장난 수준으로 만들었다는 평들이 나오던데, 굉장히 자부심을 느낍니다.”
환상적 캐스팅, 장군이 도와준 듯
‘노량’의 넘사벽 스케일과 스펙터클은 김한민의 근원을 궁금하게 한다. 1999년 단편영화로 입봉한 그는 첫 상업영화 ‘극락도살인사건’(2007)부터 흥행에 성공해 ‘최종병기 활’(2011)로 입지를 굳혔는데, 다른 감독의 연출부를 한 적도 없고 특별히 영향받은 사람도 없단다. 남성적인 에너지와 디테일한 밀도감을 가진 역사물을 좋아하고, 결이 까칠하면서도 날이 살아있는 연출 방식을 추구할 뿐이란다.
Q : 남다른 스케일은 기질 탓인가요.
A : “영화를 거듭할수록 메시지를 생각하게 돼요. 크게 찍어야 한다는 기계적 강박이 아니라 주제적 맥락에서 ‘이 영화는 클 수밖에 없다’ ‘전쟁 묘사를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되죠.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보다 거시적이고 집단적인 맥락의 메시지를 선호하는 편이긴 해요.”
Q : 역사물에 대한 천착은 계속되나요.
A : “원래 역사를 좋아해요.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거든요. 역사적 인물들도 우리와 똑같은 뇌구조와 판단력, 상황적 관계성을 갖고 움직였다고 보면 역사가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지고 재미있죠. 그 사람이 이런 판단을 하기까지 어떤 고뇌가 있었고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들여다보면 현재의 우리를 성찰하게 되고, 그래서 역사물을 자꾸 하게 되요. 다른 축의 영화도 하겠지만, 역사물은 제 영화세계의 한 축이 분명히 될 겁니다. 역사 속에 우리가 복기해야 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Q : 차기작인 8부작 드라마 ‘7년 전쟁’의 주인공은 이덕형(한음)이라면서요.
A : “임진왜란을 정치외교사적 입장으로 파악하기에 드라마 형식이 적절하고, 실제로 발로 뛴 분이 이덕형이었어요. 30대 젊은 나이에 대제학을 지내고 나중에 병조판서까지 되는데, 명나라에 원군을 청하러 다녀왔고, 심유경과 고니시 유키나가의 강화협상에 조선의 의지를 반영하려 애쓰면서 이순신과도 계속 소통했거든요. 여러 전략적 판단을 하고 발품을 많이 팔았던 분이니 주인공으로 적절하다고 봤어요. 지금 대본이 나오고 있고 플랫폼이 결정되면 내년에 촬영을 하겠죠.”
‘노량’이 1760만이라는 ‘명량’의 기록을 깰 수 있을까. OTT 콘텐트도 1.5배속으로 돌려보며 장편영화의 종말까지 상상하는 시대에 ‘명량’의 기록은 어쩌면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감독은 “그렇기 때문에 영화관이 존재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영상을 처리하는 방식이 있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해 영화를 제대로 보고 싶은 욕구도 강하게 존재합니다. 지금은 과도기일 뿐, 곧 두 이벤트를 맞이하는 태도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정착될 거라고 봐요. 그런 지점에서 ‘노량’은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할 작품으로 기능하겠죠. 작은 핸드폰으로 대충 볼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다시 보고 싶은 욕구가 분명히 들게 만들었으니까요.”
12월 31일은 음력 11월 19일, 노량해전이 펼쳐진 역사적인 날이다. 김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돌며 이날을 기념한다니, 주말 극장가 훈풍도 계속될 것 같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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