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한동훈-MZ세대 이준석의 ‘비유정치’…처칠-잡스의 경쟁?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등판하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탈당하면서 여권이 요동치고 있다. 보수 진영의 분열이 현실화한 가운데, 한 위원장과 이 전 대표 모두 비유를 활용한 메시지를 쏟아내면서 ‘비유 정치’가 주목받고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 26일 취임 수락 연설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주당을 겨냥하며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심이다(Fear is a reaction. Courage is a decision)”라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발언을 차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침략에 맞서 영국 국민의 용기를 북돋은 처칠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려 한 셈이다. 한 위원장은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그 뒤에 숨어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운동권 특권세력과 싸울 것이다. 호남에서, 영남에서, 충청에서, 강원에서, 제주에서, 경기에서, 서울에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용기와 헌신으로 반드시 이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처칠의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다(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명연설을 인용한 것이다.
한 위원장은 노래 가사를 통해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취임사 말미에 가수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환상 속의 그대’ 가사를 인용하며 “여러분, 동료 시민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라고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1970년대생 한 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민주당의 ‘586 기득권’ 청산을 강조한 만큼 “X세대 대표 가수인 서태지로 상징되는 본인의 정체성을 강조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비대위원 임명 뒤 첫 회의를 주재한 29일에도 한 위원장은 농구에서 쓰이는 ‘피벗 플레이’(주축 발을 단단하게 바닥에 붙이고 반대 발을 이용해 방향 전환을 하는 기술)을 거론하며 “공동의 선(善)이라는 명분과 원칙에서 떼지 않겠다는 약속, 피벗 플레이 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의 등판 이튿날인 지난 27일 국민의힘을 탈당하며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준석 전 대표도 다양한 수사를 동원했다. 그는 탈당사에서 “앞으로 저만의 NeXTSTEP을 걷겠다”며 가칭 ‘개혁신당’ 창당 각오를 다졌는데 ‘NeXT’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뒤 세운 회사다. 그리고 그곳에서 개발한 컴퓨터 운영체제(OS)의 이름이 바로 ‘NeXTSTEP’이다. 나중에 NeXT는 애플에 합쳐졌고, 잡스는 다시 애플에 복귀했다. 국민의힘 초대 대표로서 지난해 3·9 대선과 6·1 지방선거를 지휘해 승리했음에도 당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빗대는 동시에 국민의힘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됐다.
이 전 대표는 그 외에도 다양한 비유를 꺼냈다. JTBC 드라마 ‘재벌 집 막내아들’을 거론하며 “새우가 고래를 이기는 방법을 진도준(극중 주인공)이 이야기한다. ‘새우 몸집을 키우는 거죠.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지 않을 만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새우 편 아닐까요?’”라는 대사를 인용했다.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를 고래에, 자신이 추진하는 신당을 새우에 각각 빗댄 것이다. “젊은 세대가 정치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당내의 시대착오적 관성과 강하게 맞서야 할 필요도 있었다”며 소회를 밝힌 이 전 대표는 “보름달은 항상 지고, 초승달은 항상 차오른다”며 본인을 초승달에 비유하기도 했다. 2021년 6월 국민의힘 첫 전당대회에서 ‘0선 30대 대표’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이 전 대표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이 전 대표는 29일 페이스북에 “제갈량이 살던 방향으로 살고 싶냐, 동탁과 여포같이 살고 싶냐 묻는다면 저는 주저없이 제갈량의 삶을 동경하겠다. 어차피 여포는 동탁 찌른다. 그것도 아주 황당한 사건으로”라며 소설 ‘삼국지’를 거론했다. 소설 속 여포는 동탁의 양아들이자 호위무사였지만 결국 동탁을 살해하는데, 여권에선 “윤 대통령을 동탁에, 한 위원장을 여포에 비유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전 대표는 그러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제대로 공부해보면 아테네를 시기해서 스파르타가 그리스 내에서 패싸움 벌이다가 마케도니아 좋은 일 시켜주는 결론이 난다”며 “이재명 대표를 알렉산더 만들고 싶은 게 아니면 역사 공부 똑바로 해야 될 것”이라고 적었다.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이던 지난 8월 해외 출장길에 빨간색 표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들고 나타나 화제를 모았었다.
정치권에선 1973년생 한동훈 위원장과 1985년생 이준석 전 대표의 경쟁을 ‘X세대’와 ‘MZ세대’의 충돌로 보기도 한다.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은 “둘 다 스마트한 이미지가 있고, X세대와 MZ세대로 대표되는 젊은층을 대변한다는 의미도 있다”며 “선거가 다가올수록 두 사람의 경쟁이 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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