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승낙 못받아서"...톱10 항공사 향한 험난한 길[기업&이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인수합병(M&A)을 앞두고 마일리지 제도 개편 이슈가 떠들썩했던 올해 봄. 인천~프랑크푸르트 비수기 일반석 왕복 티켓을 아시아나 7만마일 소진으로 예약했던 김한길(48세)씨는 합병 이슈가 내년으로 넘어가자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마일리지 소진 후 피인수 기업인 아시아나 대신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는 신용카드로 갈아탈 생각이었지만, 합병이 쉽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자 기존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계속 쌓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기 때문이다.
◆합병 추진만 3년째…소비자들도 우왕좌왕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부터 소비자들은 항공사 마일리지를 사이에 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애써 모은 마일리지가 양사 합병으로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일찌감치 아시아나에서 대한항공으로 마일리지 적립 대상을 바꾼 소비자들이 많다. 아직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쌓고 있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합병이 마일리지를 적립하거나 사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며 '개악'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합병이 더 미뤄지거나 아예 불발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3분기 기준 각각 2조4700억원, 9500억원에 달하는 마일리지 미사용액이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이달 31일을 기점으로 10년이 지난 마일리지를 소멸 조치하면서 급하게 마일리지 사용처를 찾아야 하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들끓고 있다. 연초 양사 합병과 마일리지 제도 개편 이슈가 맞물리면서 마일리지로 구매할 수 있는 항공권에 대한 경쟁이 심해졌고, 경쟁에 밀려 티켓을 구매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뒤늦게 사용처들을 찾고 있지만 마트, 영화관, 리조트 이용권 등을 구매하는 것도 이용자들이 몰려 쉽지 않거나 마일리지 소진 가치가 제각각이어서 불만이 크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지연 까닭은
차라리 이럴 바엔 합병 추진이 미뤄지거나 되지 않기를 바라는 소비자들의 심리와는 반대로 합병 이슈를 3년째 끌어안고 있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은 지금의 느린 진행이 답답할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끌어안으면 자산 40조원을 보유한 세계 10위권 초대형 항공사로 몸집을 키울 수 있게 된다. 초대형 항공사가 되면 글로벌 항공업계에 한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노선 효율화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입장에서는 3분기 말 기준 부채만 약 13조원(연결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2000%를 넘어 자금수혈이 시급하다. 대한항공이 1조5000억원 자금을 수혈하면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은 500% 안팎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산업은행도 합병이 성사돼야만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한 3조6000억원 수준의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기업결합 대상자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공적자금을 투입한 산업은행까지 합병을 유일한 탈출구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초대형 항공사의 탄생은 독과점 우려와도 맞닿아 있어 경쟁당국의 승인이 쉽지 않다. 대한항공은 지난 27일 금융감독원을 통해 1조5000억원 규모 아시아나항공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율을 63.9%로 확대한다는 내용의 '타법인 주식 및 출자증권 취득결정' 공시 내 취득예정일자를 기존 2023년 12월31일에서 2024년 3월31일로 정정했다. 취득 예정일까지 유럽집행위원회(EC)로부터 거래에 대한 기업결합 승인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2020년 11월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결정 첫 공시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12차례나 정정공시를 내며 주식 취득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을 심사하고 있는 EC는 2024년 2월14일까지 결론 내리겠다고 밝힌 상황. EC는 지난 5월 양사가 합병할 경우 유럽 노선에서 여객 및 화물 운송 경쟁이 위축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고 기업결합 심사를 중단했다. 기업결합 승인이 시급했던 대한항공은 지난달 3일 EC에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분리 매각 계획 등이 포함된 시정조치안을 제출하며 EC의 우려를 해소하는 노력을 했다. 대한항공이 내년 2월 EC의 승인을 받는 데 성공할 경우 기업 결합 승인 대상 14개국 가운데 미국과 일본 경쟁 당국의 승인 정도만 장애물로 남게 된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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